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하며 중국 내 한국 기업들의 공급망 붕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사태가 장기화하며 물류가 멈춰 설 경우 국내 기업들이 ‘원자재 대란’을 겪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LG화학(051910)은 3일 ‘2019년 4·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신종 코로나와 관련해 대내외 대응 방안 검토와 조치를 취하는 가운데 석유화학 공장은 장치공장 특성상 가동률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며 “서플라이 체인 붕괴에 대비하고 있고 중국에서는 물류 상황이 어려운 만큼 영향이 다소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LG화학은 자동차와 정보기술(IT) 제품의 외장재로 쓰이는 고부가합성수지(ABS)를 중국 닝보공장에서 80만톤, 화난에서 30만톤을 생산하고 있다.
국내 화학 기업들은 중국에서 물류가 마비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 원재료를 조달하더라도 공장까지 옮기지 못하면 가동에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첨단소재 공장의 경우 한국에서 일부 재료를 조달하는데 물류가 마비되면 재료가 있어도 소싱이 안 될 수 있다”며 “사태가 장기화하면 부품이나 재료 수급이 매출에 차질을 주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원재료를 조달해 제품을 생산한다 해도 물류 업체 없이는 고객사까지 인도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일부 업체들은 최악의 경우 직원들이 직접 운송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스플레이 업계도 중국 물류 마비로 부품 등 자재 수급에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주 말 난징에 위치한 액정표시장치(LCD) 공장 가동을 멈춘 LG디스플레이는 광저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공장의 가동 지속도 불투명하다고 보고 있다. 광저우시가 있는 광둥성까지도 신종 코로나가 급격히 번지며 교통 통제 등으로 생산을 지속하기가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LG디스플레이 광저우 공장은 올 1·4분기 내 대형 OLED 패널 양산 준비를 마칠 계획이었다.
광둥성 내 둥관 지역에 모듈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디스플레이도 생산에 차질을 빚으며 가동률이 대폭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우한과 가까운 쑤저우뿐 아니라 톈진 등에서도 공장을 운영 중으로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공장이 최소 1주일에서 최대 한 달 치의 부품 재고를 갖고 있어 부품 수급이 끊기면 공장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면서 “LCD와 OLED 패널의 출하량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BOE 등 현지 업체들의 공장 가동에도 차질이 발생하며 LCD 패널 가격이 일시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디스플레이 전문 시장조사업체 DSCC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현금원가까지 하락한 LCD 패널가가 올 들어 상승 국면에 접어든 상황”이라며 “공급과잉의 진원지로 꼽힌 중국의 패널 생산이 단기 중단될 경우 가격 상승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춘제 연휴 시작부터 9일까지 확정된 조업 중단 기간만 3주이고, 농민공이 복귀하는 데 1주일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 4주의 생산 일정 차질이 확정적”이라며 “우한이 자동차·정보기술(IT)·기계 산업의 핵심 지역임을 감안하면 제조업 전반에 공급 차질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