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유년 시절 아버지와 함께 축구장에 갔던 적이 있는데, 당시 대전에는 연고팀이 없어 중립 경기가 진행되었다. 그러다 1997년에 ‘2002 한일월드컵’ 유치를 위해 대전에 프로축구팀이 창단되면서 줄곧 따라다녔다. 김은중·이관우·최은성 선수와 같은 프랜차이즈 스타를 좋아했고, 서포터스 대표를 맡으며 축구와 지역을 잇는 역할을 했다. 축구를 매개로 지역사회가 어울리는 것에 관심이 많다.
△최근 대전 시티즌이 매각됐다. 골수팬으로서 아쉬운 점은 없나.
23년간 쫓아다녔던 팀인데 한순간 사라졌다. ‘대전 하나시티즌’으로 팀명을 바꿨지만 정확하게는 해체 후 재창단 수순을 밟았다.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다. 우선 조직 개편의 많은 권한을 대전광역시가 가지고 있었다는 부분이다. 대전광역시 체육회가 최대 주주로서 자치단체장인 시장이 권한을 갖는 것이 법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보다 아래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앞으로 어떤 축구팀이 될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었다. 소수의 팬들과 급하게 간담회를 열었는데 그것으로 민주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거쳤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팬의 대표성을 띄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형식적인 절차를 거쳤다고 생각한다.
△헐값 매각이라는 비판도 나왔는데.
시도민구단의 특징 중 하나인 열악한 재정을 개선할 수 있도록 프로스포츠산업진흥법이 만들어졌고, 홈 구장으로 사용하는 시설을 프로축구팀이 권한을 가지고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왔다. 문제는 상위법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프로축구팀에 쉽게 권한을 내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와 달리 대기업에게는 이전에 대전시티즌에 대했던 태도와는 다르게 호의적이다. 아주 헐값에 모든 권한을 내어주는 느낌이다. 23년의 역사와 대전월드컵경기장 운영권을 7억원에 넘겼다.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대목이 아닐까. 매년 수십억씩 시민들의 세금을 투입하다가 단돈 7억원에 축구팀을 넘기는 과정에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더라.
△왜 그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하나.
개인적인 생각인데 과거 대전시티즌이 너무나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가장 큰 원인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이 대거 투입되기 때문에 정치적인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축구에 대한 가치와 철학이 없는 상황에서 축구팀 주변에 월권을 행사하는 이들이 많았다. 정상적으로 팀이 돌아갈 수 없는 구조였다.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정치적 목적으로 묵인했다고 생각한다. 매각과 관련해 정보 공개 청구를 요청했는데 A4 용지 절반도 안 되는 형식적인 답변만 돌아와서 허탈했다.
△대전시티즌에 대한 정치인들과 팬들의 기대치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2002 월드컵 유치를 하면서 10개 구단 기준을 맞추기 위해 부랴부랴 팀을 만들었다. 지역에서 오랜 시간 창단 준비를 한 것도 아니고 축구 저변도 없는 상황이었다. 축구장을 채우기 위해 인력이 동원되는 경우가 허다했고, 지역 유력 인사들이 본인이 알고 있는 선수를 어떻게든 팀과 계약을 맺게 하는 등 비상식적인 행동이 반복되었다. 시의원이 선수 청탁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팬 문화도 아쉬운 점이 많았다. 팬 중 일부는 제 목소리만 내고 구단 사무국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발악하기도 했다. 각자가 원하는 모습만 바라보고 있어 팀이 원활하게 운영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대전하나시티즌에 바라는 게 있다면.
대전은 다른 도시에 비해 축구 인프라가 좋다.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실업팀·프로팀 등 연령대와 수준별로 남녀 축구팀이 모두 있는 도시는 많지 않다. 축구를 통해 지역 사회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사회적 역할에도 관심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다만 이전 사례를 살펴보면 부천SK가 제주유나이티드로, 안양LG가 FC서울로 연고를 이전한 사례가 있다. 기업 구단의 특성상 축구팀을 마케팅의 일부로 생각하기 때문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대전시와 하나금융의 관계가 느슨해지면 팀이 존속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시민구단은 한계가 뚜렷하다는 인식이 강한데 시민구단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지역에서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관점에서 축구를 바라보면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여전히 무료입장이나 단체 동원 사례를 흔히 볼 수 있고, 굿즈의 가격도 너무 낮다. 도전적으로 마케팅을 펼치지 못하는 조직 구조라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와 선순환할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구FC가 좋은 예다. 대구FC는 원도심의 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경기가 없는 날에도 경기장 주변 상점가를 활성화하고 산책 동선으로 만들어 가까이 사는 지역 주민에게 경기장을 더 친근하게 만들어주고, 지역 내의 소상공인 대표들이 모여 축구팀을 후원하며 지역에 대한 고민을 더하는 ‘엔젤 클럽’ 프로그램도 매력적이다. 프로축구팀이 지역 자원의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서포터스로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독립서점도 운영했는데 축구와 서점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나.
서점과 축구는 ‘로컬 콘텐츠’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축구만큼 지역적인 콘텐츠가 없다. 사람들이 지역에 대한 애정이 있어도 표출할 방법이 많지 않다. 그런데 축구장에 가보면 축구팬들은 지역에 대한 문화나 역사, 지역명을 응원가로 만들어 부르면서 지역과 축구팀에 대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독립서점이나 축구 모두 한국에서 비주류라는 공통점도 있다. 월드컵이나 국가대표 경기가 열릴 때 바짝 주목을 받지만 프로축구는 화려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대전은 148만명이 넘는 대도시지만 홈경기 평균 관중이 2,000명을 넘지 못한다. 독립서점도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의 강세 속에서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서점과 축구 모두 서브컬처로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입장이다.
△서점을 통해 축구 선수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국가대표까지 한 축구 선수도 은퇴 후 삶에 대한 걱정이 크다. 엘리트 스포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은 선수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갑작스러운 부상 또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은퇴와 맞물려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게 된다. 그래서 서점을 찾는 축구 선수들과 축구 자체를 인문학적 관점으로 접근하면서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사회에 대한 이야기, 축구로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는지.
대전시티즌에서 활약하던 김상필 선수(현 천안시청 소속)와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 김상필 선수는 독서를 통해 삶의 방향성을 찾고, 성장하는 데 관심이 많다. 독서량도 많고 독서에서 경험한 내용을 일상에서 실천하려고 한다. 내셔널리그 목포시청에서 뛸 때는 선수들끼리 마케팅 부서를 별도로 운영하고, 지역 고등학생들에게 힘이 되어주겠다며 등교길에 학교 앞에 찾아가 응원을 하기도 했다. 또한 생활체육 축구팀을 깜짝 방문해 선수들과 함께 축구를 하는 경험을 선물하기도 했다. 작은 일이라도 이렇게 지역과 관계를 만들어가며 함께 성장하는 거다.
△축구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축구 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이 간과하는 부분인데 구성원 각각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환경에서 보다 창의적이고 지속 가능한 삶과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 축구 선수들이 축구 이후의 삶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하는데 이 과정을 어렵게 생각하더라. 축구 산업에는 축구 선수 이외에도 수 많은 직업군이 존재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할 수 있도록 스스로 학습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을 매개로 변화를 모색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