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촉계약을 맺고 고정 임금이 아닌 수수료를 매월 받으며 일해도 구체적 업무지침을 받거나 정기적으로 교육을 받는 등 실질적 지휘감독을 받았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하급심이 위촉계약 이외 취업규칙이나 내규 등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봤으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전직 채권추심원 정모씨가 SCI평가정보를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정씨는 지난 2008년 12월부터 2015년 9월까지 SCI평가정보와 위촉계약을 맺고 채권추심원으로 근무하며 업무를 수행했으며, 퇴직하며 실질적 근로계약 관계였다며 퇴직금 3,2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정씨는 형식적으로는 위촉계약이나 실질적인 업무 내용을 보면 종속적 근로관계라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에서 제공받은 컴퓨터를 이용해 지시에 따라 매일 내부전산망에 실적과 채권관리 현황을 입력했다. 반면 SCI평가정보 측은 계약서상 정씨가 독립사업자임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며, 퇴직금 지급의무도 없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정씨의 손을 들어줬다. 상고심 재판부는 SCI평가정보에 대해 “각종 업무상 지시, 관리기준 설정, 실적관리, 교육 등을 함으로써 업무 내용을 정하고 업무수행에 관하여 상당한 지휘감독을 했다 보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또한 매달 15일 받은 채권 회수액에 따른 정률의 수수료와 각종 자격증수당, 장기활동수당, 매출성장수당 등이 “근로의 양과 질에 대한 대가로서 임금의 성격을 가진다”고 덧붙였다.
독립사업자란 주장에 대해서는 SCI평가정보 측이 배정한 채권의 추심과 관련해 제3자를 써서 대행을 맡길 수 없었고 내부전산관리 시스템을 쓰도록 했다는 점 등에 비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사업소득세를 납부했으며 다른 사회보장제도에서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사용자의 우월한 지위에서 임의로 정할 수 있는 사정에 불과하므로 근로자성을 쉽사리 부정할 수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앞서 1·2심은 정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봤다. 1심 재판부는 정씨에 대해 “SCI평가정보의 위임직 채권추심원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실적에 따른 수수료를 지급받았을 뿐”이라며 “회사는 정씨를 4대 보험에도 가입시키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사무실 제공, 내부시스템 접속 지시 등은 채권추심업무 가이드라인 준수와 업무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