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트럼프가 꾸미고 있는 대선악몽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팬데믹으로 투표절차 등 대혼란

전국 곳곳서 부정선거 논란 일면

트럼프, 선거조작 음모론 주장

'평화적 정권교체' 위험해질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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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주 크리스 월리스와의 인터뷰에서 오는 11월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시인했다. 놀랄 것 없다. 그는 지난 2016년 대선에 앞서 이미 이와 동일한 발언을 한 바 있다.

하지만 현 상황은 그때보다 훨씬 위험하다.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11월 선거가 조작됐다는 확신을 심어줄 만한 장치를 곳곳에 마련해 놓았다. 설사 내년 1월 트럼프가 순순히 혹은 마지못해 백악관을 떠난다 해도 그는 내전 직전의 위태로운 분열상을 자신의 정치유산으로 남겨놓을 것이다.


혹자는 조 바이든이 11월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압승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에 기대려 든다. 바이든이 일방적인 압승을 거두면 음모론이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단히 지저분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 역시 배제하기 힘들다. 올해 여론조사는 무성한 뒷말을 낳았던 2016년 대선 전망보다 더 크게 빗나갈 수 있다. 선거가 치러지는 11월에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세가 꺾이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미국 50개 주는 저마다 사회적 거리두기부터 우편투표에 이르기까지 투표와 관련한 새로운 대책들을 마련할 것이다. 놈 언스타인은 애틀랜틱지에 실린 기고문에서 “팬데믹으로 인해 크게 줄어든 투표소와 거리두기에 따른 기나긴 유권자 대기행렬, 부족한 투표관리 인력 등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11월3일의 투표는 내년 1월까지 이어지는 대참사로 끝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11월3일 밤, 일부 투표소들이 앞서 예로 들었던 지연 요인들로 인해 마감시간을 넘긴 유권자들을 돌려보내고 산더미처럼 쌓인 우편투표 개표결과를 제때 발표하지 못하는 주가 속출한다고 상상해보라. 투표 절차나 투표지와 관련해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 논란이 일고 결국 해당 지역의 관할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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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는 12월8일까지 개표 결과를 바탕으로 어느 당의 선거인단에 대표권을 부여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때까지 개표 결과가 불분명하거나 부정선거 논란이 불거진다면 어떻게 될까. ‘우발적 대통령(Accidental Presidents)’의 저자인 재러드 코언은 2020년 대선이 문제투성이였던 1876년과 2000년도 선거를 한데 합쳐놓은 오점 선거의 결정판이 될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1876년 대선의 경우 4개 주가 심각한 부정선거 의혹에 휩싸였고 결국 밀실협상을 통해 사태를 해결했다. 2000년 대선에서는 플로리다주 재검표 시비로 연방대법원이 개입했고 공화당 후보인 조지 W 부시가 대법관들의 낙점을 받아 사상 초유의 ‘법선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더구나 올해 선거는 100년 내 가장 심각한 수준인 정치적 양극화와 소셜미디어의 폭주가 한데 어우러진 상황에서 치러진다.

이 같은 시나리오에 독성이 강한 음모론까지 추가된다고 생각해보라. 공적 기관에 대한 공포와 의심을 퍼뜨려온 음모론자들은 이미 부정선거에 관한 구체적인 경고를 내보내고 있다.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가운데 11월 선거일이 다가온다면 트럼프는 기를 쓰고 부정선거 공세를 펼칠 것이다. 그는 과거에도 엄청난 숫자의 가짜 유권자들이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에도 이번 선거에서 “우편투표 용지가 부정하게 사용되지 않을 가능성은 제로”라며 “우편함은 조직적으로 털릴 것이고 투표용지는 위조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물론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미국인들은 음모론을 좋아한다. 우리는 늘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의심한다. 이런 이론들은 현실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인간은 원래 혼돈과 우연을 싫어하고 패턴과 원인 그리고 악당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싶어 한다. 비단 보수주의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J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암살에 대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해석이라든지 러시아가 2016년 선거 당시 자동개표시스템에 침입해 투표결과를 바꾸어 놓았다는 확신에서 엿볼 수 있듯 좌파 진영에도 이와 동일한 음모론 선호 성향이 존재한다. 그러나 2020년 대선후보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트럼프가 음모론의 광팬인 반면 바이든은 전혀 아니다.

전 세계에 영향을 준 미국의 가장 위대한 유산 가운데 하나는 평화적 정권 교체다. 1801년 존 애덤스가 백악관을 떠나고 토머스 제퍼슨이 뒤를 이어 대통령직에 취임했다. 라이벌 정당이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룬 근대사의 첫 번째 사례다. 트럼프는 선거조작에 관한 음모론을 퍼뜨리며 이처럼 귀중한 미국의 유산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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