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은행을 위한 변명

홍준석 금융부장

당국, 영업점 폐쇄·통폐합에 제동

속내는 일자리 감소 우려 때문일것

생존위한 혁신에 비용 절감은 필연

대안 찾되 글로벌 흐름 놓쳐선 안돼

홍준석



얼마 전 종로3가에 있는 A은행에 들렀다가 이전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발길을 되돌린 적이 있다. 한달 전쯤에는 종각역 부근의 B은행 지점이 없어지기도 했다. 불편하기는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얼마나 손님이 없으면 지점을 폐쇄했을까 하는 답답함이 더 컸다. 장사가 잘되면 가게를 키우고 안 되면 접는 것이 세상 이치인데 은행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금융당국은 생각이 좀 다른 것 같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과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주 연이어 은행들의 영업점 폐쇄 및 통폐합에 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윤 원장은 “금융소비자의 편의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경고했고 손 부위원장은 “방향은 맞지만 속도가 문제”라면서 지점 축소의 속도 조절을 당부했다. 심지어 금감원은 점포 폐쇄 전수조사에 착수하며 은행들을 강력하게 압박했다. 명분은 소비자 권리를 내세웠지만 속내는 ‘일자리 정부’에서 사라져가는 양질의 일자리를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여하튼 은행 점포 수를 직접적으로 통제할 권한이 없는 당국이 서둘러 개입할 정도로 최근 영업점 폐쇄가 많아지기는 했다. 국내 은행 지점은 지난 2012년 7,681개에서 2016년 7,086개 2018년 6,752개 2019년 6,710개에서 올 3월에는 6,652개로 확 줄었다. 특히 올 들어 상반기까지 4대 시중은행에서만 126개의 지점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 전체 폐쇄점포 수인 88개보다 많다.


시중은행들은 “비효율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실제 은행들은 초저금리 여파로 대표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이 올 1·4분기 1.46%로 추락했다. 역대 최저치다. 여기에 디지털 전환이라는 경영명제와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영업 확산으로 인해 수익성이 나쁜 점포는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분위기다. 돈을 못 버니 몸집이라도 줄여가는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앤드컴퍼니 한국사무소의 김수호 파트너가 4월 서경 금융전략포럼에서 한 주장도 이와 맞닿아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금융사가 5~15%가량의 매출 성장을 위해서는 비용 절감이 10%가량 필요하다. 비용 절감 없이는 투자 재원의 마련조차 어렵고 성장을 넘어 생존 자체가 어렵다.” 현재로서는 저비용·고효율만이 살길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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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킨지앤드컴퍼니 본사가 지난해 10월에 내놓은 보고서는 더 노골적이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은행 5곳 가운데 3곳은 수익이 비용에 미치지 못하고 획기적인 혁신을 이루지 못할 경우 전체의 3분의1가량이 머지않은 시기에 소멸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였다. 요즘처럼 전방위적 경영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은행은 비용을 줄여서라도 투자자가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자기자본 가치를 유지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비즈니스 혁신에 나서라는 조언이다.

결국 당국이 막아서도 은행들의 영업점 축소는 생존전략 차원에서라도 계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물론 대안은 필요하다. 논의 중인 은행권 공동의 현금자동인출기(ATM)를 서둘러 도입하고 은행권의 공동점포 운영도 모색해볼 수 있다. 6월에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이 글로벌 동맹을 맺은 점 역시 이 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양 사는 아마 국내서도 비용 절감과 규모의 경제에 대한 깜짝 결과물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유휴인력에 대한 정교한 활용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대표적인 혁신 모델로 은행권이 사활을 건 인공지능(AI) 사업 역시 갈수록 일자리 논쟁을 야기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 저자인 실비아 나사르 컬럼비아대 교수는 “(경제위기 속에서) 되돌아갈 길은 없다. 우리의 경제적 환경을 통제해야 하는가, 통제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놓고 논쟁할 사람은 이제 없다.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가를 놓고 논쟁할 뿐”이라고 했다. 지금이야말로 은행들이 과감하게 나설 때다. /홍준석 금융부장 jshong@sedaily.com

홍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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