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 브레이크 없는 확장재정 정책에 재정건전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여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정부와 여권은 오히려 재정을 풀어야 소비가 살고 생산증대로 이어져 경제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변한다. 이는 “국가채무를 늘려서라도 재정을 풀어야 재정건전성이 좋아진다”는 이른바 재정선순환론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여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양호하다는 점은 확장재정을 엄호하는 단골 논리로 등장한다. 빚을 내 돈을 풀어 쓸 만큼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채무와 급격히 증가하는 재정부담을 감내할 수 있느냐다. 경제·재정 전문가들은 “숫자만 단순 비교해서 볼 것이 아니라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잠재적 지출 요인을 안고 있는 점을 감안해 재정을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의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저출산으로 경제활동을 담당하는 생산연령인구는 오는 2030년까지 향후 10년간 무려 341만명(9.1%)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반대로 부양해야 할 노인인구는 급증한다. 기초연금 등의 복지지출 단가를 굳이 올리지 않더라도 복지 대상 인구 자체의 급증으로 지출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채무비율이 224.2%(2018년 기준)까지 치솟은 일본의 재정운용 결과를 두고 “인구구조 변화 등의 구조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유럽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채무비율이 양호하다는 주장도 반쪽에 가깝다. 국가채무비율이 70% 수준인 독일의 경우 지난 1972년 고령사회에 진입했는데, 당시 채무비율은 14.1%에 불과할 정도로 양호했다. 우리나라는 고령사회에 진입한 2017년 채무비율이 이미 40.1%(D2 기준)에 이른다.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에 도달하는 데 걸린 기간도 프랑스 143년, 독일 77년, 일본 35년이지만 우리나라는 25년에 불과할 정도로 인구구조 변화 속도가 빠르다.
미국·일본의 채무비율이 비교되지만 이 역시 글로벌 경제지형에서 우리나라의 입지를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들 국가는 기축통화국으로, 자국 통화를 기반으로 한 발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채무 증가에 따른 인플레이션 부담이 크지 않다. 달러와 엔화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받쳐주기 때문에 낮은 금리로 국채를 찍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또 대외의존도가 높은 개방경제 구조여서 국내외 환경 변화에 따라 수출입 변동성이 크고 이에 따라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국가신용등급과 경상수지는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예의 주시하는 신용등급 결정 요인이기도 하다. 재정학회장을 지낸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가 굉장히 안이하게 무작정 재정의 역할만 강조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기축통화국도, 준(準)기축통화국도 아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재정운용 계획으로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문학적 비용이 필요한 통일도 간과할 수 없는 잠재적 지출 요인이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국가채무비율의 마지노선을 유럽연합(EU)보다 낮은 40%로 설정한 것은 통일비용 발생으로 인한 재정충격을 완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1990년 40% 수준이던 독일의 국가채무비율은 통일 이후 6년 만에 60% 수준으로 수직 상승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하지만 쓰임새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 재정 모험국으로 불리는 유럽 4국(스웨덴·덴마크·네덜란드·오스트리아)은 올 6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코로나19 대응 재정지출도 필요한 곳에 아껴써야 한다”는 공동 기고문을 실었다. EU 집행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5,000억유로의 ‘긴급회복펀드’가 결국은 납세자가 갚아야 할 돈인 만큼 펀드를 대출로 전환해 가장 심각하게 타격을 받은 곳에 한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지금이라도 지출제어와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독일처럼 재정건전성 회복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위기 이후 독일의 채무비율은 2012년 90.4%까지 치솟았다가 이후 지속적인 재정개혁으로 지난해 69.3%까지 낮아졌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국가채무비율 한도 설정과 균형 재정준칙 법제화 등 재정지출 감축 노력을 기울이며 독일이 택한 길을 좇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한재영기자 박효정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