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재차 역설한 가운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같은 자리에서 북한을 전혀 언급하지 않아 국제사회와 대북 전략에 엇박자가 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의 취임 후 이번이 처음이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각종 이슈에 밀려 북한에 대한 종전 관계국들의 관심이 급격히 식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의 화상 연설에서 재임 중 처음으로 북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언급 없이 코로나19 대유행, 환경, 경제, 외교 정책 등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데 7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년간 유엔총회 연설 때마다 북한 문제를 꾸준히 거론해 왔다. 북미 간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던 2017년 9월 연설 때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로켓맨’으로 칭하고 “완전한 파괴”를 언급하며 대북 압박에 나섰다. 그러다 6·12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후인 2018년 9월 연설 때에는 “전쟁의 망령을 대담하고 새로운 평화의 추구로 대체하기 위해 북한과 대화하고 있다”며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지난해 연설에서는 김정은에게 북한이 엄청난 잠재력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잠재력 실현을 위해 북한은 비핵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언급을 피한 건 11월 대선을 앞두고 북한 문제가 호재로 작용하긴 어려울 것이란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두 번의 정상회담, 판문점 회동 등 김정은과 이미 3차례나 만난 상태에서 진전된 비핵화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다 다음 달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북한이 미국 본토를 위협할 신형 무기를 선보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북한이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기 위해 다음 달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 등 도발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중동 등 다른 나라와의 외교 관계보다 북한의 중요도가 떨어지는 점도 ‘패싱’의 배경으로 지적했다.
시 주석 역시 한반도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시 주석은 최근 미중 갈등을 의식한 듯 “국가 간에 차이점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중국은 세계 최대의 개발도상국으로서 평화적이고 개방적이고 패권이나 세력확장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종전선언’을 다시 끄집어낸 문 대통령의 연설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발언들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보장하고 나아가 세계질서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면서 “그 시작은 평화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한반도 ‘종전선언’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종전선언’을 통해 화해와 번영의 시대로 전진할 수 있도록 유엔과 국제사회도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며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2년 전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호소했으나 지난해 북미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종전선언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또 북한을 포함해 중국과 일본·몽골·한국이 함께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도 국제사회에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