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들이 미중 갈등 고조로 인해 미국보다는 홍콩이나 중국 상하이로 추가 상장 장소를 택하고 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이 인용한 시장조사업체 리피니티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이후 뉴욕증권거래소(NYSE)나 나스닥 증시에 상장됐던 중국 기업 8곳이 홍콩 증시에 추가 상장해 256억달러(약 30조원)를 조달했다. 시가총액 1조 달러에 달하는 중국 최대 전자 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 산하 금융그룹인 앤트그룹과 중국내 KFC 체인을 운용하는 최대 레스토랑 운영업체인 얌차이나홀딩스가 대표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맞물려 올해 여름 미중갈등이 격화하면서 중국 기업의 자금 이전 속도가 빨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WSJ은 미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을 압박하는 주된 요인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꼽는다. 중국 기업을 겨냥한 미 당국의 규제 수위가 높아지면서 알리바바마저 상장 폐지 위협에 놓인 상황이다. 미 정책 입안자들은 규제당국이 중국 기업의 회계를 더욱 면밀히 조사할 수 없다면 이들을 퇴출시킬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조지 매그너스 옥스퍼드대학 중국 센터 연구원은 “(중국 기업의) 미국 상장 폐지 전망은 느리지만 현재진행형인 미국과 중국간 금융전쟁의 일환”이라면서 “이는 정치가 두 나라의 금융시스템을 어떻게 분리하는지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도 자국 기업들이 홍콩이나 상하이에 상장하려는 움직임은 긍정적이다. 홍콩과 상하이를 주요 금융 허브로 육성해 더 많은 국제 자본을 유치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 정부는 증권 거래소와 증권사는 물론 투자 은행에도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터커 하이필드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아시아태평양 자본시장 공동 대표는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올해나 내년 더 많은 중국 기술기업들이 미국이 아닌 홍콩에 상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홍콩에 본사를 둔 금융 리서치·자금 관리회사 기드칼의 애널리스트인 토마스 개틀리는 “(미중 갈등의) 최대 승자는 홍콩과 상하이 금융 부문일 것”이라며 “중국 본토 투자자들에게도 좋은 결과”라고 분석했다. WSJ은 지난해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상하이증권거래소 과학혁신판(중국명 커촹반)에 180개의 기업이 상장했으며 이들의 주식 가치는 1,060억달러에 달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