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유력 정치인들이 입을 맞춘 듯 내년 4월 서울·부산 시장 재보궐선거를 위해 “‘반(反) 문재인 연대’를 만들자”는 말을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 소속 시장의 성추문으로 열리는 재보선이지만 야권이 각각 후보를 내면 필패(必敗)한다는 것이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멀리는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까지 모두 참여하는 반문연대로 맞서자는 주장이다.
반문연대가 결성되면 국민의힘이 아닌 제3의 인물이 야권 단일 후보가 될 수 있다. 결속이 강한 반문연대가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잠룡들 모두 ‘반문연대’…각개전투론 게임 안돼
홍준표 무소속 의원(전 자유한국당 대표)은 30일 “다시 한 번 보수 우파 진영의 빅텐트 구축을 촉구한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홍 의원은 “탄핵의 찬반을 두고 갈라지기 시작한 보수 우파들이 민주당 보다 우리끼리 더 대립하고 반목의 세월을 보낸 지가 이제 4년에 접어들고 있다”고 말하며 “하나가 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해진 것이다. 이제 탄핵은 모두 접어두고 문(재인)정권의 폭주 기관차를 막아야 할 때이다”고 했다.
29일 김태호 무소속 의원(전 경남도지사)도 김무성 전 의원이 주도하는 ‘마포포럼’ 강연에 나서 “제3당을 시사하는 게 아니라 비문과 반문의 지독한 진영 논리를 극복하고자 하는, 모든 세력이 함께하는 범야권 대(大)연대”를 말하며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 등 모두가 참여하는 새판을 짜자고 주장했다. 김 의원을 초대한 김무성 전 의원은 올해 총선 국면 때부터 “반문연대로 뭉치자”고 주창해왔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지난 22일 원희룡 제주지사,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홍준표 무소속 의원 등이 참여하는 원탁회의체를 꾸리자고 제안했다. 오 전 시장은 “국민 의견 반영 비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며 “(일반 국민 참여 비율을 높이는 것과 완전국민경선제 중에서는) 완전국민경선제가 낫다”고 말했다. 원 지사도 지난 15일 중도·보수가 하나 되는 ‘원 플러스 원’ 원희룡 모델을 제시했다. 원 지사는 “구현할 수 있기만 하면 홍 전 대표, 안 대표도 다 좋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패배→탈당·분당→대선 패배 우려
‘반문연대’목소리가 높아진 이유는 내년 4월 서울시장 선거가 사실상 차기 대통령 선거의 중간고사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4·15 총선에서 1987년 민주화 이후 선거에서 가장 큰 패배를 기록했다. 현재 민주당은 의석수가 174석, 국민의힘은 103석에 불과하다. 중도·무당층이 많은 서울과 경기도에서 참패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인구 1,000만 명의 서울(49석)에서 고작 8석을 얻었다. 1,100만 명의 경기도(59)에서는 7석이다. 수도권에서 민심을 얻지 못하면 다음 대선에서 승리는 요원하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후 중도 행보를 강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변화한 당에 대한 표심을 처음 확인하는 무대가 서울시장 선거인 셈이다. 더욱이 재보궐선거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문으로 열린다. 야권이 유리한 구도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전망이 밝지 않다. 리얼미터의 10월 4주차 집계에 따르면 민주당(36.7%)과 국민의힘(27.6%)의 지지율 격차는 매주 벌어지고 있다. 특히 서울도 민주당(35.3%)이 국민의힘(31.2%)을 앞서고 있다. 경기도(민주당 37.9%, 국민의힘 24.7%)에서는 격차가 더 크다.
국민의힘이 ‘성추행 선거’라고 부르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한다면 대권은 어려워진다는 게 게 중론이다. 특히 선거에서 대패할 경우 의원들의 집단 탈당이 이어지고 2017년 바른정당 분당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당내에서 팽배하다. 야권의 한 유력 정치인은 이를 두고 “선거에서 지면 이 당이 (온전히) 남아있을 것 같으냐”고 말했다.
잠룡은 모두 “난 대권”, 인물부족 ‘제3 지대 후보’ 땐 분열의 씨앗
‘미니 대선’으로 불리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긴 후보는 곧바로 대선주자에 이름을 올린다. 야권에서 나설 후보가 적어도 대선주자급은 돼야 한다.
문제는 ‘반문연대’를 말하는 유력 정치인이 하나같이 “나는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진영에서 확실한 서울시장 주자가 없다는 것이다.
한 차례 대선에 출마한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은 일찍이 차기 대권에만 관심을 둬 서울시장에 도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안철수 대표도 “서울시장에 관심 없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같은 광역지자체인 서울시장에 뛰어들기 어렵고 오 전 시장도 최근 “다음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부동산이 될 것”이라며 대선 직행 의사를 밝혔다.
결국 인물을 모시기 위해 국민의힘이 ‘완전국민경선’ 형태로 경선 규칙을 고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존 룰은 선거인단(전당대회 대의원·책임당원·일반당원) 투표결과 50%와 여론조사 결과 50%를 반영해 최다득표자를 후보로 뽑는다.
당내에 뚜렷한 주자가 안 보이는 상황에서 제3 지대 인사를 포함해 완전국민경선을 하면 외부 인사가 단일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안철수 대표가 직접 나서거나 민주당 출신인 금태섭 전 의원이 단일 후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다른 당 후보를 추대하는 결과가 나온다. 무엇보다 제3 지대 인물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크게 승리하면 중도진영을 중심으로 야권이 재편될 가능성도 크다. 비대위 체제 이후 당권마저 내줄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같은 당내 우려를 일축했다. “우리가 이기면 된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우리 당과 제3 지대 인물이 각각 승리하고 혁신 경쟁을 통해 단일 후보가 되면 된다”며 “여론조사에서 우리 당 인물의 경쟁력이 더 높으면 최종 후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