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시기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지금까지 인류학·고고학·화석학 등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약 200만년 전부터 인류의 활동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0만년 전 인류는 200~300만명 정도였다는 설이 있고 그 이후 작지 않은 부침이 있었지만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매우 느린 속도로 꾸준히 증가했다.
인구가 급속히 팽창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다. 그렇다고 인류의 생물학적인 진화가 빠르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지금부터 1만년 전의 인간과 현재의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얼마나 다를까를 생각해보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지난 1만년 사이 인간은 생물학적인 진화와는 다르게 문화적으로 매우 빠르게 진화했다.
그 가운데에는 경제와 통상의 진화가 있었다. 약 1만년 전 정착과 농업이 인간의 생업으로 자리하면서 계급과 직업의 분화가 시작됐다. 그리고 직업의 분화와 특화에 따라 개인 사이의 거래뿐만 아니라 집단과 사회, 국가 간의 거래가 필연적인 것이 됐다. 지구상에 수많은 국가와 제국이 명멸했지만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통상을 장려한 경우에는 흥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단명했다고 할 수 있다.
자고로 거래와 통상은 인간의 물질적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기본원리다. 애덤 스미스가 생산성 향상의 근본으로 분업을 설파한 것도 그와 같은 인식에 다름이 아니다. 특히 산업혁명에 의해 생산이 다양화되기 시작한 후 무역과 통상은 국부의 원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쇄국(鎖國)’이 국민의 살림을 얼마나 피폐하게 하는가는 역사를 들어 얘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경제학의 역사에서 가장 천재적인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라는 ‘비교우위’의 원리를 제시한 것은 지난 1817년이다. 그러나 비교우위론에 기초한 자유무역이 국제질서로 자리 잡은 것은 20세기, 그것도 2차 세계대전 이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전의 무역에서는 다분히 자국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면서 상대방 교역국에는 해가 되는 소위 ‘이웃 빈곤화 정책(beggar thy neighbor policy)’이 대세였다.
그 과정에서 무분별한 평가절하가 나타나고 나라 사이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와중에 국제무역과 금융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서 회의가 열린 때는 1944년 7월이다. 그 결과 설립된 것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다. 이 같이 성립된 전후의 국제경제와 통상의 질서는 다분히 미국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국가로 탄생한 미국이 세계경제의 선도국이 된 것은 20세기로 들어서면서부터다. 그리고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경제를 포함한 세계질서가 급격히 미국 중심으로 재편됐다. 그 과정에서 자유무역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조류였다. 한때 미국의 총생산이 세계 총생산의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으니 그것도 자유무역을 통해 달성한 성공이었다.
20세기 미국은 매우 너그러운 나라였다. 일본과 우리나라를 포함해 많은 나라들이 미국과의 무역을 통해 경제를 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상대방 국가의 반칙을 어느 정도는 눈감아주는 아량을 베풀었다. 자유무역은 20세기 세계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었으며 그 선두에 미국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미국의 산업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빠르게 재편됐다. 그리고 세계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비중은 이제 25% 정도로 축소됐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이다. 이론적으로나 실제에 있어 미국인들은 근본적으로 보호무역을 싫어한다. 태생부터 자유에 국기를 두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 아닌가. 그러나 20세기의 경험은 자유무역 때문에 지나친 희생이 따랐다고 볼 수밖에 없도록 한 것 같다. 특히 중국의 등장과 부상은 미국의 입장에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세계 각국의 자국 중심 무역관행에 대한 이의가 없을 수 없겠지만 대통령이 누가 되든 미국이 자유무역의 원칙을 포기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자유무역의 원칙을 포기하는 순간부터 미국의 시대는 저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시대는 언제까지일까. 중국의 추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미국과 같은 유연한 체제를 갖추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는 여전히 미국의 시대일 것으로 감히 예측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