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은 물론 멀리 있는 하늘과 바다, 빛과 집들 모두가 균등하고 평등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은 약 70만 그루의 자작나무가 끝없이 펼쳐지며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화가 이장우(34)는 겨울부터 봄, 가을까지 관통하며 세 번이나 원대리를 찾아가 희고 곧은 나무들이 공존하는 각 계절의 풍경들을 그림에 담았다. 이들을 포함한 30여 점의 유화가 서울 강남구 슈페리어갤러리에 걸렸다. 이장우 개인전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를 위해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박미연 독립큐레이터의 말처럼 이장우 그림에 등장하는 대상들은 “근경, 중경, 원경의 차이가 무색하게 어우러져 그림 안에서 자유롭게” 존재한다. 저 멀리 숲 안쪽에 눈 맞으며 선 자작나무 한 그루까지도 선명한 이유다. 원대리의 봄 풍경은 흰빛 자작나무뿐만 아니라 이를 에워싼 초록빛 잎들도 똑같이 환영받는다. 가을 풍경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자작나무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되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잎의 재잘거림도 같은 크기의 목소리를 내며 조화를 이룬다.
바로 요맘때의 모습인 ‘홍천 갈대숲’은 파도처럼 일렁이며 펼쳐진 갈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것 없이 같은 무게로 춤을 춘다. ‘속초 앞바다’의 청명한 풍광도 같은 맥락이다. 파란 하늘과 짙푸른 바다가 공평하게 맞닿았다. 눈여겨볼 것은 속초항의 주택들인데, 파랑·초록·주황 분홍의 지붕과 벽들이 마치 사람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듯 선명하게 제 색을 낸다. 장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 등 인상주의 화가들을 좋아하고 그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나, 이장우 작가의 경우는 자신이 다녀온 곳의 풍경만을 그리는 태도의 측면에서 인상파와 비슷할 뿐 멀리 높이 있는 것도 가까이 낮게 있는 것과 다르지 않게 그리는 독특한 시선은 특별함으로 읽힌다.
후기 인상파 같은 점묘 기법을 이용해 두툼하게 이룬 표면에서는 망설임 없는 붓질의 열정과 꾸준한 시간을 들인 성실이 엿보인다. 작가는 아침 9시부터 매일 거의 10시간씩 주 5일 그림만 그린다. 대단한 집중력이다. 단조로운 색조의 작품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서면 수십 가지로 변주된 색의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이는 특히 가을 단풍의 묘사, ‘평창동’ 등 서울의 야경을 다룬 작품에서 더 두드러진다.
화가의 수식어로 ‘자폐증’과 ‘장애 극복’이 따라다닌다. 그저 그림만으로 만났다면 전혀 의식하지 못했을 사실이다. 4살 무렵 아이의 그 같은 증상을 인지한 부모가 그림을 배워보게 한 것은 7살 때의 일이다. 기막힌 재능을 보였다거나 거창한 포부를 안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세상을 향해 마음 닫은 아이가 삶과 소통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찾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전부였다. 놀라운 일이 시작됐다. 자폐증이나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이 특정 분야에서 고도의 능력을 발휘하는 서번트 증후군처럼 그림에 대한 놀라운 집중력을 보인 것이다. 국내에서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 없고, 어머니와 함께 떠난 미국 유학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고 돌아와 지난 2017년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이번 전시가 8번째 개인전인 것만 보더라도 단숨에 큰 관심을 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기념전, 홍천미술관에서 열린 강원국제예술제 특별전 등에 참여했다. 이번 전시는 16일부터 28일까지.
/글·사진=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