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경북 영덕군 ‘해맞이길.’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때아닌 ‘가을폭우’가 그치자 산 능선을 따라 늘어선 풍력발전기 24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2005년 3월 최초로 민간 상업운전에 성공한 36.9㎿ 규모의 영덕 풍력발전단지다. 오토캠핑장과 해맞이전시관·축구장까지 갖춘 영덕 풍력단지는 영덕군민 4명 중 1명이 추천하고 싶은 관광명소로 꼽히기도 했다.
올해 상업운전 16년차로 발전기 평균 수명 20년에 근접해 ‘노년기’에 접어든 영덕 풍력단지는 오는 2025년 재개발을 신청했다.
한국남부발전은 영덕 풍력단지를 성공모델로 삼아 ‘석탄 화력발전의 땅’으로 불리는 강원도 삼척의 해발 1,200m에 달하는 육백산에 총 800억원을 들여 30.2㎿ 규모의 풍력발전기 9기를 세울 계획이다. 영덕 풍력단지 건설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국내 풍력발전회사 유니슨이 시공을 맡았다. 유니슨은 2017년 남부발전과 합작해 특수목적법인(SPC)인 육백산풍력발전㈜을 설립하고 남부발전에서 추진하던 육백산 풍력발전사업 권리 전부를 인수했다. 허화도 유니슨 사장은 “육백산은 연평균 풍속이 초당 6.57m이고 고지대로 가면 초속 7m까지 나올 정도로 ‘천혜의 풍황’을 갖춰 풍력발전에 적합한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풍력단지가 들어설 곳은 울창한 나무를 일부 벌목하고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 한두 그루가 듬성듬성 서 있는 ‘인공조림’ 상태다.
육백산풍력발전㈜은 2018년 4월 사업을 ‘자진 취하’할 정도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산림청이 풍력단지 조성 예정지역의 생태자연도 등급을 2등급에서 1등급으로 높여 고시하며 개발이 전면 금지됐기 때문이다. 자연환경보전법에 따르면 생태자연도 3등급 지역은 개발이 가능하고 2등급은 사안에 따라 개발과 보전을 병행할 수 있지만 1등급은 개발이 전면 금지된다. 국유림인 육백산은 우리나라 산 가운데서는 드물게 정상에 평탄한 지대(고위평탄면)가 넓게 펼쳐져 있어 보존가치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육백산풍력발전㈜은 이후 관할인 동부지방산림청·원주지방환경청과 협의를 지속했고 산림청은 ‘국유림관리법 시행령’을 인공조림지가 육상 풍력발전사업 면적의 10% 미만인 경우 풍력발전소가 들어설 수 있다는 내용으로 개정해 현재 입법예고를 끝내고 법제처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육백산풍력발전㈜은 이달 중 육백산 풍력단지에 대한 발전사업허가 신청을 다시 제출해 재도전할 계획이다. 남부발전 측은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그린뉴딜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사업 허가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육백산 풍력단지의 경우 풍력발전사업의 최대 과제로 꼽히는 주민 수용성 역시 상당 부분 확보했다는 입장이다. 육백산 풍력단지 예정 조성지에서 1.9㎞가량 떨어진 상마읍리 이장인 정의성씨는 “육백산은 ‘명산’으로 일부 주민의 반대가 있었지만 풍력단지가 들어서도 마을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화력발전 쇠락으로 삼척시 주민의 경제상황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풍력단지가) 마을 주민에게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육백산 풍력단지는 완공 시 인근 주민을 ‘주주’로 참여시켜 수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그러나 조성 예정지 일대가 삵·하늘다람쥐 등 멸종위기종 서식지인 만큼 정부의 규제 완화 자체에 대한 비판은 여전하다. 또 당초 풍력발전기 15기를 세우기로 했다가 규제를 피하는 과정에서 최종 9기로 줄이는 등 사업 규모가 계속 축소돼 ‘환경보존 지역에 풍력발전단지를 세우면서 목표했던 발전량도 얻지 못한다’는 우려마저 상당하다. 이에 대해 유니슨 측은 “목표인 30.2㎿보다 적은 20~25㎿ 용량만 확보돼도 다른 보완책을 더해 경제성을 유지할 수 있게끔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덕=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