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주 베스핀글로벌 대표는 ‘연쇄 창업자’다. 재미교포 출신인 이 대표는 1998년 미국 시카고에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인 호스트웨이를 창업했다. 정보기술(IT)붐으로 서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자 “금을 캐지 말고 금 캐는 사람들에게 청바지를 팔자”고 생각했다. 포츈지가 선정하는 500대 기업의 절반가량을 고객사로 확보할 만큼 회사는 성장했고 2013년 프루덴셜 자회사인 사모펀드(PEF)에 회사의 일부를 약 4,000억원에 매각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같은 해 공동 대표로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스파크랩을, 2015년에는 클라우드서비스 업체인 베스핀글로벌을 창업했다. 업계 선두권으로 성장한 베스핀글로벌은 지난 5월 SK텔레콤 등으로부터 90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하면서 누적 투자금액이 2,170억원까지 불었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849억원)보다 두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는 창업자로서뿐 아니라 투자자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스파크랩에서 미미박스·원티드·망고플레이트 등 다양한 스타트업에, 직접 사재로도 지금껏 15개 안팎의 회사에 투자했다.
24일 서울경제 시그널과 만난 그는 “미국에는 ‘선행을 베푸는(pay it forward)’ 문화가 있다”며 “많은 도움을 받아 성공했다면 그 도움을 준 사람이 아닌 후배들에게 되돌려줘 선순환하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 투자사를 차린 김범수 카카오 의장, 강병규 크래프톤 의장이 선례다. 국내에서 초기 투자 시장이 미개척지였던 시절, 이 대표가 스파크랩을 창업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사업 경험을 나누고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돕고 싶었다.
지난달에 이 대표는 화덕 피자를 파는 프랜차이즈 회사인 고피자에 투자했다. 클라우드 회사 대표가 피자 회사에 투자한 이유는 뭘까. 그는 “일단 맛있어서”지만 “전 세계에서 사랑 받는 음식을 고도화할 수 있는 기회를 잘 포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클라우드 서비스가 IT 인프라를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넘겼다면 고피자는 레거시 영역인 외식업에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적용했다.
고피자는 ‘피자계의 맥도날드’를 꿈꾸는 회사다. 카이스트 경영공학 석사 출신이자 맥도날드를 좋아하는 20대 자취생이었던 임재원 대표는 햄버거에 비해 피자는 ‘비싸고 크고 느리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음식을 소비자가 직접 먹기까지 허들이 많다고 느꼈다”며 “그 허들을 허물어주면 피자도 햄버거처럼 많은 사람들이 ‘더 손쉽게 먹지 않을까’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구글로 조리법을 찾아 집에서 피자를 만들었다. 27살이었던 2017년에는 여의도 도깨비 시장에서 푸드트럭을 놓고 직접 피자를 만들어 팔았다. 장사는 잘 됐고 1평짜리 공간에 고피자라는 피자집을 차렸다.
고피자는 지금까지의 피자 프랜차이즈와 달리 객단가를 1만원 정도로 확 낮춘 1인용 메뉴를 선보인다. 주문·제조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했다. 매장에서 꺼내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초벌한 도우를 납품하고 누구든 한 번에 자동으로 조리할 수 있는 화덕인 고븐(Goven)을 개발했다. 로봇이 소스를 바르고 피자를 자르기도 한다. 조만간 ‘스마트 주방’도 내놓을 예정이다. 조리 테이블 위에 있는 카메라가 도우를 인지해 토핑을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놓을지 알려주는 식이다. 이렇게 확보한 데이터를 연산 처리해 고도화하는 단계에서 베스핀글로벌과 협업할 예정이다. 누구든 동일한 제품을 첫 날부터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아르바이트생 위주라 균질한 서비스를 유지하기 힘든 애로사항을 해소했다.
매장 관리가 특히나 어려운 해외로도 발 빠르게 진출할 수 있었던 이유다. 고피자는 현재 국내(82개)뿐 아니라 싱가포르(6개)와 인도(5개), 홍콩(2개)에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피자 시장은 매년 20%씩 성장할 정도로 잠재력이 크다. 임 대표는 “싱가포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메뉴가 불고기피자일정도로 K-피자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디지털 전환을 통해 남녀노소 모두 즐기는 피자를 어디서든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고피자의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