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지수나 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BBIG) 관련 상장지수펀드(ETF)가 국내 증시에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원자재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ETF는 올해 들어 한 종도 상장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이 올해 이례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원자재 관련 파생상품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데다 주식 관련 ETF에 비해 흥행을 이끌기가 쉽지 않아 자산운용사들도 관련 상품 출시를 꺼리는 모습이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현재까지 국내 증시에 상장한 ETF는 총 36종이다. 이 중 원유·금속·농산물 등을 기초자산으로 삼고 있는 ETF는 하나도 없다. 원자재 관련 ETF 중 가장 마지막으로 출시된 상품은 지난해 9월 KB자산운용이 출시한 ‘KBSTAR 팔라듐선물(H)’과 ‘KBSTAR 팔라듐선물인버스(H)’다.
최근 자산운용사들이 나스닥100·항셍테크 등 해외 기술주 지수 기반 ETF를 적극적으로 출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근에는 한국거래소와 에프앤가이드 등 지수개발업체들이 BBIG 관련 지수를 내놓으면서 미래에셋자산운용·KB자산운용·한국투자신탁운용 등 주요 자산운용사들이 잇달아 이들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출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미국에 비해 원자재 ETF가 다양하지 않다. 미국에는 금·은·구리·원유뿐 아니라 커피·코코아·면화·백금 관련 ETF도 상장돼 있다. 그럼에도 올해 원자재 ETF 상장이 부진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원자재 선물시장이 출렁인 것과 관계가 있다. 특히 WTI 가격이 불안정한 가운데 삼성자산운용이 KODEX WTI원유선물(H) 편입 비중을 바꾸면서 투자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한 바 있어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원자재 상품 출시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산운용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자재별 특성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으면 (WTI 사태 때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만큼 원자재 상품 출시에 조심스러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을 조사하고 유동성공급자(LP)를 발굴하는 데 드는 시간에 비해 수요가 많지 않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새 ETF를 출시하기 위해 1~2년 정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지수·테마형 ETF에 비해 ‘흥행성’이 떨어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해석이다. 가령 KB자산운용이 지난 4일 출시한 KBSTAR 미국나스닥100(0368590) ETF의 순자산은 248억6,400만원인데 지난해 9월 시장에 나온 KBSTAR 팔라듐선물(H)은 61억3,500만원 수준이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커피 관련 ETF 출시도 생각을 해봤는데 시장에서 생각보다 인기가 없을 것 같아 상장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