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이후 9개월간 이어진 영국과 유럽연합(EU) 간 무역협정을 포함한 미래 관계 협상이 종착역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핵심 쟁점에 대한 이견이 여전한 가운데 양측이 6일(현지 시간) ‘마지막 협상’을 재개하기로 한 만큼 이번 주에 최종 합의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협상 타결에 실패할 경우 수출입 물품에 관세가 부과돼 사실상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하게 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지난 5일 통화에서 미래 관계 협상 진행 상황을 점검한 뒤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협상 재개 방침을 밝혔다. 영국의 한 관리는 이를 “마지막 주사위를 던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미셸 바르니에 EU 측 수석대표가 런던으로 가 데이비드 프로스트 영국 측 협상 수석대표와 일주일 가까이 대면 협상을 벌였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4일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양측 정상의 지시로 프로스트 수석대표와 바르니에 수석대표는 6일 브뤼셀에서 다시 만나 협상을 재개하며 존슨 총리와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7일 저녁 다시 대화하기로 했다. 양측 수석대표가 추가 협상에서 합의하면 7일 양측 정상이 이를 최종 확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미래 관계 협상이 타결되면 기존 EU 탈퇴 협정 협상 때와 달리 영국 의회의 승인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집권 보수당이 과반 기준을 훌쩍 넘는 의석을 확보한데다 제1야당인 노동당 역시 합의안에 반대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과 EU는 △공정 경쟁 환경(level playing field) △어업 △향후 분쟁 발생 시 해결 지배 구조 등 세 가지 쟁점에 대해 아직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공정 경쟁 환경은 영국이 EU로 물품을 수출할 때 지켜야 하는 기준 등을 다루는 핵심 분야다. 이와 관련해 EU는 영국이 자국 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늘리고 환경 기준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할 것으로 우려한다. 반면 영국은 향후 자국의 경제정책 운영에 대해 EU가 제한 조치를 두려 한다며 거부하고 있다.
어업 역시 핵심 쟁점으로 양측은 영국 수역 내에서 어획량 쿼터 배분을 놓고 이견을 나타내고 있다. 영국은 EU를 탈퇴한 만큼 새로운 어업협정에서 자국 어선의 어획 쿼터를 대폭 늘릴 것을 요구했지만 EU는 EU 선박들의 어획량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 분야에 대해 프랑스가 완강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앞서 영국은 EU와 브렉시트에 합의해 1월 말 회원국에서 탈퇴했다. 브렉시트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모든 것을 브렉시트 이전 상태와 똑같이 유지하는 전환 기간이 연말까지 설정됐다. 양측은 전환 기간 내 무역협정을 포함한 미래 관계 협상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만약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양측에는 내년부터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적용된다. 이 경우 양측을 오가는 수출입 물품에 관세가 부과되고 비관세 장벽도 생기게 된다. 이에 사실상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와 다름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U는 영국과의 무역협상에서 합의에 이를 수 없을 경우 ‘노딜’에 대비한 비상조치 마련에 착수할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영국에 미칠 경제적 충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BOE) 총재는 지난달 하원 재무위원회에 출석해 무역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데 따른 장기적 영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보다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리시 수나크 영국 재무장관은 “경제에 미치는 가장 큰 충격은 코로나19”라며 “EU와 무역협상 타결이 아직 가능하지만 대가를 치르면서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보다는 영국이 그냥 떠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