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A씨(78)는 칠곡경북대병원에 입원했다. 의료진은 고령의 나이와 건강 상태를 고려해 중증환자 치료에 쓰는 렘데시비르와 덱사메타손 등을 투여했다. 하지만 차도가 없었다. 오히려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의료진은 마지막 수단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GC녹십자(006280)의 혈장치료제에 대해 치료목적 사용 승인을 신청했다. 치료목적 사용 승인은 다른 치료 수단이 없거나 생명이 위험한 환자 치료를 위해 품목 허가 승인을 아직 받지 않은 임상 시험용 의약품을 치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의료진이 A씨에게 혈장치료제를 투여하자 체온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고 산소 요구도도 크게 감소했다. 약 20여 일에 걸쳐 A씨의 상태는 꾸준히 호전돼 지난달 18일 최종 음성 판정을 받고 두 달여 만에 격리 해제됐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혈장치료제를 투여받은 후 완치된 세계 첫 사례가 나왔다. 그동안 명확한 치료제가 없어 약물재창출 방식의 의약품에 의존하던 코로나19 중증 환자들에게 혈장치료제가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이재우(사진) GC녹십자 개발본부장은 6일 “혈장치료제는 체내에 있는 성분과 혈장이 원료이기 때문에 안전성이 뛰어나다”며 “GC녹십자는 수두, B형간염, 파상풍 등 다른 질병과 관련한 제재를 오랜 기간 생산하면서 혈장치료제 노하우를 축적해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혈장치료제는 코로나19에 감염됐다 회복한 환자의 혈장을 추출해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는 성분을 찾아 고농도로 농축·정제한 의약품이다. 현재 중증 코로나19 환자에게는 주로 렘데시비르를 치료제로 사용한다. 하지만 부작용 우려가 크다. 실제 지난 11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영국의학저널(BMJ)에 실린 코로나19 의약품 관련 지침에서 “렘데시비르가 환자의 생존율이나 인공호흡기 사용 시간 단축 등에 중요한 효과를 보인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환자의 증상 정도와 상관없이 사용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렘데시비르는 주요 치료제로 쓰이지만 위중증 환자 1,066명(2일 0시 기준) 중 완치 비중은 58.1%로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이유로 최근 국내외 의료 현장에서는 혈장치료제가 코로나19 중증 환자 치료를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주도로 GC녹십자, 다케다(일본), BPL(영국) 등 글로벌 상위 혈액제제 기업으로 구성된 ‘코로나19 혈장치료제 개발 얼라이언스(협의체)’가 글로벌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GC녹십자의 혈장치료제는 칠곡경북대병원, 순천향대학교부속병원, 아주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국내 주요 병원에서 치료 목적 사용 승인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승인 건수는 총 13건이다. 이 본부장은 “현재까지 투약 이후 보고된 부작용은 없다”며 “최근 A씨의 완치 사례가 식약처에 보고된데다 3차 대유행이 본격화하고 있어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GC녹십자는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이미 세 차례에 걸쳐 545리터(ℓ) 규모의 생산을 끝냈다. 코로나19 혈장치료제는 확진 후 완쾌한 사람의 혈장에서 추출해서 생산하기 때문에 혈장확보가 관건이다. 이 본부장은 “채혈 기관을 늘리고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혈장 공여가 늘어나고 있다”며 “앞으로 혈장이 모이는 대로 곧장 생산해 추가적인 치료목적사용 승인 수요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