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정비사업이 이끌 서울 대도시권 개조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서울 도심 '아파트 공화국' 오명에도

가장 선호하는 주거형태로 자리잡아

도심 정비 억제로 통근 불편 등 속출

재건축 늘려 도시구조 효율화 꾀해야




국제 외환위기가 한창일 무렵인 지난 1998년 필자는 부랴부랴 귀국해 서울연구원에 들어갔다. 남산에 연구원이 있었던 시절인데 점심 후 선배 연구원들과 남산 샛길로 가벼운 등산을 즐겼다. 그 산책길로 올라가 정자에 다다르면 아차산 쪽 탁 트인 서울 전망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항상 들어야 했던 선배들의 넋두리는 ‘저놈의 나 홀로 아파트 때문에 서울이 망쳐진다’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서울 도심 지역 내 고층 재개발 아파트가 많지 않았던 관계로 단독주택 지역 중간에 들어서는 아파트 몇 채들은 경관적으로 소위 ‘갑툭튀’였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 주거 지역들이 다 나 홀로 아파트가 아닌 이미 ‘다 같이 아파트’인 상황이 됐다. 어차피 그렇게 변하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재개발을 억제하는 데 노심초사하기보다는 좀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노력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에는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짧은 단어에 담긴 비판적인 뉘앙스처럼 부정적인 논란이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이 현실이다. 한 국회의원이 다세대 빌라가 아파트만큼 좋다고 홍보한다고 사람들의 선호가 바뀌지 않는다. 사실 고층 아파트는 일조나 조망 그리고 프라이버시 같은 주거 쾌적성(amenity)을 2차원적으로 한정해 소비하는 다세대주택과 달리 3차원적으로 확대해 누리고 대지는 집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고밀 주거 형태다. 서울 대도시권이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를 선택하지 않고 필리핀 마닐라나 멕시코 멕시코시티와 같이 저층 주거로 2,000만 인구의 도시로 확산했었더라면 어땠을까는 상상하기도 싫은 가정이다.


필자가 서울 대도시권의 공간 구조를 주기적으로 분석하며 느끼는 문제점은 도시 외곽 신규 택지개발지구는 인구밀도가 높게 형성돼 확대되고 서울시 내 주거 지역의 인구밀도는 오히려 감소해왔다는 것이다. 이는 아파트라는 고층 고밀의 주거 형태가 도심에서는 정비 사업들에 대한 비판적 논란으로 억제되고 도시 외곽의 택지 개발에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에 벌어진 부작용이다. 그 결과 자족적인 신도시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목표로 적지 않게 개발된 외곽 택지개발지구 30~40층 아파트에 입주한 많은 가장들이 매일 3~4시간의 통근 시간을 허비하면서 서울 강남이나 구도심으로 출퇴근하며 살아야 하는 도시가 돼버렸다. 이는 2010년대 서울 대도시권의 출퇴근 시간이 급격히 늘었다는 관련 통계에서도 확인되는 것으로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낭비적인 통근’이 확대돼 생산성을 낮추는 비효율적인 도시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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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어쩔 수 없었던 현상이라기보다는 우리가 고용 중심지 주변에서 발생하는 가격 상승이라는 시장 압력이 충분히 축적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정비 사업을 억제한 결과다. 현 정부에서도 재건축과 관련해 상징적 단지가 돼버린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15년 전 노무현 정부 시기 시장 압력을 수용해 가격 상승기에 재건축이 되도록 놓아두었더라면 서울 강남으로 3~4시간씩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있는 가구가 3,000~4,000가구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조만간 닥쳐올 인구 축소기에 서울 대도시권을 어떻게 관리해서 대도시 간의 경쟁으로 변모한 국가 경쟁력을 잘 유지할 수 있는가가 미시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때 재건축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을 공공이 얼마나 가져오느냐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고민일 수 있다. 결국 재건축이 안 되면 개발이익 환수도 없고 도시 구조의 효율화도 불가능하다. 성장 여력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좀 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정비 사업과 관련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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