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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디자이너’ 박승희 "어릴 적 꿈 이룬 삶...선수 때는 몰랐던 제 모습에 저도 놀라요"[이사람]

올림픽 메달 5개 딴 쇼트트랙 여신

세 번의 올림픽 후 미련 없이 은퇴

번아웃 찾아와 훌쩍 떠난 영국서

새로운 가방 디자인 아이디어 얻어

시제품 만들고 브랜드까지 '뚝딱'

디자인 도맡고 택배까지 직접 싸

선수 시절 보다 체중 6㎏나 줄어

좋아하는 일 행복하게 하는 마음

제가 만든 브랜드에 늘 담겼으면

박승희가 자신이 디자인한 가방들 앞에서 꽃병을 안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승현기자박승희가 자신이 디자인한 가방들 앞에서 꽃병을 안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승현기자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을 한 달쯤 앞두고 만났던 스피드스케이팅(빙속) 국가 대표 박승희(28)는 “평창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면 어릴 때부터 꿈꿨던 의상 디자이너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랬던 박승희가 진짜 디자이너로 돌아왔다. 본인이 직접 디자인하는 가방 브랜드 ‘멜로페’를 지난 9월 론칭한 디자이너이자 회사 대표인 박승희를 최근 그의 서울 후암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작은 공간의 한쪽은 예쁘게 진열한 제품들이, 또 다른 한쪽은 양껏 쌓아 놓은 제품들이 차지한 가운데 박승희는 컴퓨터 화면 속 일정과 각종 그래프, 디자인 시안 등을 열심히 확인하고 있었다.

새 일을 즐겁게 해내고 있느냐고 묻자 박승희는 “정말 재밌게 하고 있다. 어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아직 그렇게 심각하게 어려웠던 적은 없다”고 밝은 표정으로 답했다. 사업이 잘되느냐는 물음에는 “잘된다는 것의 기준이 애매모호해 잘 모르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잘나가는 아이템은 품절도 된다”는 말에서는 대표로서의 자신감도 묻어 나왔다.


박승희는 한 번 나가기도 어려운 올림픽을 세 번이나 경험하고 5개의 메달을 모은 한국 빙상의 대표 스타 중 한 명이다. 열 여덟이던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동메달 2개, 2014 소치 올림픽에서 금 2, 동메달 1개를 땄다. 평창 대회를 앞두고는 쇼트트랙에서 빙속으로 전향해 한국 빙상 최초로 올림픽 두 종목 출전 기록을 남겼다.

세 차례 올림픽 무대에 선 뒤 박승희는 미련 없이 빙판을 떠났다. 어릴 적부터 꿈꿔 왔고, 17년 선수 생활 동안에도 취미로 놓지 않았던 패션 디자인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에스모드 서울’이라는 글로벌 패션 스쿨의 한 달 과정 클래스에 들어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수업을 듣고 다음날 새벽까지 과제에 매달리는 생활을 했다. “과제가 난리 나게 많아서” 하루 1~2시간 자고 학교 가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박승희는 “그런 경험이 처음이라 오히려 재밌었다. 운동할 때는 잠 못 자면 정말 큰일이었는데 이쪽은 상관없더라”며 웃었다.

옷이 아니라 가방을 만들게 된 데는 계획에 없던 영국 여행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쇼트트랙 하다가 빙속으로 가고, 또 디자인을 한다고 하니 ‘어떻게 저렇게 쉽게 다른 길로 뛰어들지?’ 하시겠지만 저도 고민이 깊었나 봐요. 막상 사업을 시작하려니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무척 크게 밀려오더라고요. 그쪽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 시작도 하기 전에 자신감이 확확 떨어지고 혹시 모를 안 좋은 시선들에 지레 겁도 먹고…. 그때 번 아웃 증후군(심신이 탈진한 상태)이 크게 왔어요. 자존감이 떨어져서 부정적인 말만 하게 될 정도로요.”


선수 시절에도 겪은 적 없는, 살면서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결국 “한국에 있고 싶지 않아서” 박승희는 훌쩍 영국으로 떠났다. 지난해 4월부터 반년간 영국 남부 해안 도시 브라이턴의 현지 노부부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고 한다. 눈을 뜨면 느껴지는 공기부터 달랐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타지에 떨어져서 살아본 경험이 처음이었다”는 박승희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없이 오로지 저한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석 달간 아무 계획 없이 머리를 하얗게 비우니 새로운 계획이 스스로 찾아 들어왔다. 재미 삼아 가방 디자인 도안들을 쓱쓱 그려 봤더니 꽤 괜찮은 그림들이 나온 것이다. 현지 디자인들을 부지런히 눈과 머리에 담아 한국으로 돌아온 박승희는 공방을 다니며 이것저것 시제품을 만들어 본 뒤 브랜드를 뚝딱 탄생시켰다. 날개와 지붕을 형상화한 디자인이 특징인 가죽 제품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최근에는 새로운 소재의 제품도 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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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책상에서 업무를 보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박승희. /오승현기자사무실 책상에서 업무를 보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박승희. /오승현기자


멜로페의 직원은 단둘, 대표 박승희와 그의 친언니인 박승주 이사다. 박승희가 생산과 디자인 업무를 전담하고 7개월 된 아기의 엄마인 언니는 세무와 홈페이지 관리 등을 맡았다. 박승희는 사무실 업무를 보고 공장 샘플실 세 곳을 돌고 미팅을 하고 택배를 직접 싼다. 선수 시절보다 체중이 6㎏이나 줄어 다소 야위어 보이는 그는 “여기저기 돌려면 운전만 하루 3시간씩 하는 날도 많다. 쉬는 날에는 밀린 일을 한다”면서도 즐거워 보였다. 선수 시절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일상. 그 속에서 박승희는 선수 때는 몰랐던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한다고 한다. “저는 제가 수더분하고 털털한 성격인 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이 일을 하고 보니 모든 일을 마지막에는 제가 다 일일이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더라고요. 사서 고생하는 느낌이랄까.” 그는 “선수 때처럼 눈에 보이는 경쟁은 없지만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 자체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 고객으로부터 제품에 대한 구체적인 반응을 들을 때가 가장 흥미롭다고 했다.

은퇴 이후 박승희는 한 번도 스케이트를 신어 본 적 없다. 운동에 관련된 일을 계속 하겠거니 싶었던 사람들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생활이다. “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사람들을 빼면 운동 쪽에 남을 것이라고 예상한 분들이 99%였어요. 현실적으로 생각했다면 아마 그게 정답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런 고정관념대로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걸 깨고 싶었죠.” ‘운동선수도 저렇게 할 수가 있구나’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는 그는 “어떻게 보면 힘든 길을 택한 건데 후배들 응원이 큰 힘이 됐다”고 돌아봤다. “선수 때부터 보면 저처럼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하는 동료들이 제법 있었어요. 전례가 거의 없다 보니 마음만 가지고 있었던 거죠. ‘부럽다’ ‘언니처럼 하고 싶다’는 후배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지금도 활력소가 되고 있어요.”

박승희는 평창 올림픽 한 달 전쯤 이렇게 말했다. “하고 싶은 것에 망설이지 않고 도전했던 선수로 동료들과 팬들에게 기억되고 싶다”고. 마지막 올림픽을 치른 뒤에는 생애 첫 팬미팅을 준비해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디자이너 박승희의 앞에 놓인 도전은 ‘행복 전파’다. “얼마 전 저희 엄마보다 연배가 있어 보이는 여성분이 저희 가방을 멘 사진을 보내주시면서 행복해하신 게 잊히지 않아요.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행복하게 하고 있는 제 마음을 조금이나마 전해드릴 수 있는 그런 브랜드로 가꿔 나가고 싶어요.”




She is

△1992년 수원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쇼트트랙 1,000·1,500m 동메달 △2014년 소치 올림픽 쇼트트랙 1,000m·3,000m 계주 금메달, 500m 동메달 △2014년 스피드스케이팅 전향 △2015년 대한체육회 체육상 체육대상 △2018년 평창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000m 16위로 은퇴 △2020년 체육발전유공 청룡장 △2020년 가방 브랜드 론칭

양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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