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000150)그룹이 구조조정의 마침표를 쉬이 못 찍고 있다. 이달 초 발표될 것을 예상됐던 두산인프라코어(042670)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탓이다.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의 소송 우발부채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인데, 처음부터 다소 무리한 매각 추진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송변수로 인해 가격협상은 물론 소송 결과가 나온 뒤 우발채무를 누가 얼마만큼 떠안느냐의 문제를 조율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연내 매각이 불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지난달 24일 진행했던 두산인프라코어 본입찰 이후 2주가 지났지만 아직 우선협상자를 선정하지 못하고 있다. 본입찰에 인수제안서를 제출한 곳은 현대중공업지주(267250)·KDB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과 유진기업 등 두 곳이다.
치열할 것으로 예상했던 인프라코어 쟁탈전은 싱겁게 결론이 나는 듯했다. 현대중공업에 맞불을 놓을 것으로 전망했던 GS건설과 MBK파트너스,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는 불참했기 때문. 이에 따라 본입찰 이후 우선협상자 선정까지 일주일을 넘기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었다. 하지면 현재의 흐름은 예측과는 달리 돌아가고 있다.
우협 선정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DICC 소송에 따른 우발부채 문제다. 현재 인프라코어는 미래에셋자산운용·하나금융투자·IMM PE 등 DICC 재무적 투자자(FI)와 7,093억원 규모 ‘주식 매매대금 지급’ 소송 상고심에서 다투고 있다. 두산그룹 입장에선 소송 결과가 나오지 않아 우발부채의 규모를 확정해 떠안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우에 따라선 배임 문제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인수후보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주식매매계약(SPA)을 맺기가 쉽지 않다.
몸값도 걸림돌 중 하나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인프라코어의 입찰가격은 8,000억원~1조원 수준. 두산그룹이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최소 7,093억원을 주고 외부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는 DICC 지분 20%를 되사와야 한다. 여기에 지연이자 등을 더할 경우 1조원에 달하는 돈을 써야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쉽게 말해 DICC 소송에서 패할 경우 인프라코어를 팔아도 그룹으로 들어오는 현금이 ‘제로(0)’일 수 있다. DICC 소송 결과가 나온 뒤 주식매매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두산그룹은 당초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압박으로 DICC 우발부채 소송의 결론이 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주력 계열사인 인프라코어 매각에 서둘러 나선 바 있다. 하지만 결국 DICC 소송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본입찰이 흥행에 참패한 데다 이대로 무리하게 매각을 강행할 경우 되레 인프라코어를 헐값에 매각하는 꼴에 부닥치게 된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만약 두산이 패할 경우 유입되는 현금은 ‘제로’(0)나 마찬가지”라면서 “3조원의 자구안을 마련하기 두산인프라코어를 판 의미가 없어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소송의 결과를 바탕으로 외부 투자자와 합의를 한 뒤 주식매매계약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게 인수합병(M&A) 업계의 중론이다.
주식매매계약이 상고심 판결 이후로 미뤄질 경우 연내 매각을 불발된다. 통상 대법원은 선고기일을 정하면 2~3주 전에 이를 공표한다. 이번 주 내로 대법원이 선고기일 공표를 하지 않을 경우 해를 넘긴다.
인프라코어 매각 초기와 달리 두산그룹도 급할 게 없다. 산은 등 채권단으로부터 3조6,000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을 당시 약속한 연내 두산중공업(034020)에 대한 1조원의 유상증자와 자본확충 약속을 모두 이행했다. 지난 7일 유상증자를 통해 1조2,125억원의 자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또 오너 일가가 보유한 두산퓨얼셀 지분 무상증여를 통해 5,744억원의 자본을 확충했다. 클럽모우 매각을 통해 1,800억원의 현금도 확보했다. 3조원의 자구안 중 2조원 가량을 이미 달성한 셈이다.
DICC 소송 문제가 해결될 경우 관망세로 돌아섰던 GS건설과 MBK·글랜우드PE도 인수전에 가세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 후보가 본입찰에 가세하면 인프라코어의 몸값도 자연스레 오를 수밖에 없다. 두산그룹도 재무구조 개선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실제로 GS건설은 공시를 통해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추후 매각 진행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본입찰 참여 가능성을 열어놓은 바 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도 “두산인프라코어를 제 값을 받고 팔기 위해서라도 소송 등의 변수를 모두 깔끔하게 해결 한 뒤 파는 게 맞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