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시작하는 순간, 지금껏 등장했던 모든 학원물이 장난처럼 느껴졌다. 청소년 성매매부터 시작되는 충격, 파격, 선정성, 그리고 밀려오는 공포에 꼼짝할 수가 없었다.
말로 싸우다 주먹 몇 번 휘두르고 “그라믄 안돼”하고 끝나는 방황하는 청춘드라마는 이제 끝. 뭔가 보여주려다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다’며 끝내는 다큐도 끝. 순식간에 빨려들어 끝까지 단숨에 정주행 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살떨리는 메시지로 뒤통수를 뻐근하게 만들어 줄 작품이 우리나라에도 나타났다.
소극적이면서 평범하게 공부 잘하는 학생 지수(김동희). 좀 특이해 보이지만 선생님은 그를 ‘성실하고 품행이 단정하며, 학업 성취도가 높다. 조용하고 차분한 행실이 타의 귀감이 되며, 웬만해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모범적인 학생’이라고 설명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밤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청소년들의 성매매를 알선하는 그는 철저한 계획으로 정체를 들키지 않는다. 위기상황마다 등장하는 이실장(최민수)이 여성들의 보디가드 역할을 하며 포주와 여성들의 직접적인 연결을 가로막는다. 엄마는 없고 아빠는 도박하는 지수가 평범하게 살기까지 필요한 9,000만원. 죄책감은 들지만 그 돈만 벌면 싹 정리하고 모두 없던 일처럼 사라지면 된다.
지수의 휴대폰을 우연히 손에 넣은 규리(박주현). 부모가 연예기획사 CEO에 본인도 핵인싸라 부러울 것 없던 그는 이 휴대폰을 보자 신고 대신 지수를 찾는다. 목돈을 손에 들고 나타난 규리는 이렇게 말한다. “동업하자.” 성매매 알선에서 걷잡을 수 없이 판이 커지는 범죄의 공포는 그의 손과 말을 통해 점차 꼬여만 간다.
성매매에 나선 민희(정다빈)의 사정은 더 절박하다. 화려한 외모, 일진 남친, 친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살아가는 것을 즐기는 그는 당장 돈이 필요하다. 가장 쉽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결국 어른과의 원조교제 뿐. 경찰에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퇴직금을 달라고 우기던 그는 그만둘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리고 스스로 위험에 빠져든다. 그리고 남친 기태(남윤수)는 조금씩 이상한 그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이들에게 범죄는 선과 악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돈이 되는지, 또 얼마나 되는지가 우선이다.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죄책감에 앞서 발각되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목돈만, 판을 키우고 자신이 뒤에서 조종하는 쾌감만, 당장 오늘의 관심만 유지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범죄는 수단일 뿐이었다. 이것은 죄인가 아닌가 구분하기도 어려워질 만큼 이들은 평범함 속에 잘못된 길에 너무 깊숙이 들어서버렸다.
모두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기회는 많았다. 그럴 때마다 욕심은 최악의 선택지를 고르게 만들었다. 삶은 OMR카드의 1번부터 5번 중 하나를 고르면 맞고 틀리는 것이 아니었다. 틀린 답은 더 큰 위기를 가져왔고, 끝내 이들의 목숨줄을 노렸다. 범죄의 크기가 커질수록 이들은 자신을 합리화했고, 변명하며, 무감각해졌다. 그리고 끝내 인간성마저 잃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수는 자신의 범행이 드러날 위기마다 ‘평범하게 살고 싶던 소망이 무너졌다’며 좌절하고 뒤로 숨어버린다. 소라껍질 안에 숨어버린 소라게처럼 이실장을 앞세워, 때로는 규리의 기지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반면 규리는 판을 키우고 지수를 방패막이로 삼아 위기를 흥미로 받아들인다. 꼬여버린 관계 속에 어설프게 키워보려던 사업은 일이 틀어지며 조폭이 기어들고, 살인으로 번지며 서서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나 공포로 시청자를 옥죄여 온다.
이들이 최악의 선택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겉면만 보는 선생님과 경찰은 교권과 공권력의 제도가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좇지 못하고 있음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렇게 살아지지가 않는다”는 규리의 말처럼 부자이든, 공부를 잘하든, 일진이든, 어떤 청소년도 성장기에 아프고 엇나갈 수 있음을 간과하는 사회를 꼬집는다. 천편일률적인 학생의 모습, 모두가 똑같이 원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 모습을 모든 청소년에게 요구할 수 있는가 질문을 던진다.
불륜드라마에나 쓰이던 ‘현실은 드라마 이상’이라는 말과 꼭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다. 넷플릭스 스타일의, 넷플릭스만이 할 수 있는 파격으로, 향후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OTT 드라마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파격적인 이야기는 18일 공개되는 ‘스위트 홈’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