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규제 3법·노동법 국회 통과…외면 당한 기업 요구

[브레이크 없는 巨與의 입법 독주]

'3%룰' 일부 완화했지만 '다중대표소송제도' 신설

'ILO 3법' 처리…해고·실직자 노조 가입 가능해져

경총 "시행시기 1년유예" 전경련 "투기자본에 유리"

‘파업 때 대체 근로 허용’ 등 대항권은 모조리 외면

경영계 “복직 투쟁 거세질 텐데...막을 방법 없어”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의원들이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공수처법 개정안 입법 강행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권욱기자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의원들이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공수처법 개정안 입법 강행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권욱기자



더불어민주당이 경영계의 간곡한 호소를 외면한 채 끝내 기업의 경영 활동을 옥죌 수 있는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등 ‘기업 규제 3법’을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노동권 강화를 골자로 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을 위한 3법(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그동안 기업 규제 3법과 ‘ILO 3법’에 반대했던 국민의힘은 이들 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신청도 하지 않아 사실상 민주당의 입법 독주에 길을 열어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어 정부안에 비해 일부 완화한 ‘3% 룰’을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상장회사가 감사위원 중 최소 1명을 이사와 별도로 선출하도록 하고, 이때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의 합산 의결권을 3%로 제한하도록 했다. 다만 사외 이사인 감사를 선임할 때는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3% 의결권을 인정하도록 했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주주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다중 대표소송 제도’도 신설됐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공정위의 전속 고발권을 유지하는 대신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확대했다. 일반 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보유도 허용했다. 금융그룹감독법안은 ‘금융 복합기업 집단의 감독에 관한 법률’로 이름을 바꿔 의결했다. 제정안은 금융사를 2개 이상 운영하면서 자산 규모가 5조 원을 넘는 삼성·현대차 등 대기업에 속하는 6대 복합 금융회사들을 감독 대상으로 지정해 건전성을 관리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ILO 3법도 모두 통과됐다. 노조법 개정안은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기업별 노조의 경우 임원·대의원은 사업에 종사하는 조합원 중에서 선출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처럼 거대 여당의 입법 독주에 경제계는 긴급 호소문을 통해 기업 경영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모든 경영계가 공동으로 끈질기게 요청한 사항들이 거의 반영되지 않아 경영계는 다시 한 번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한다”며 시행 시기 1년 이상 유예를 요청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기업 규제 3법 통과로 기업 경영 환경이 해외 투기 자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만들어졌다”며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을 촉구했다.




재계 절규엔 귀 닫고 勞 요구만 들어줘...노사갈등 불씨 더 키웠다




“노사 관계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 노사 균형도 못 맞추고 분쟁의 불씨만 안겼다.”

노동 전문가인 김희성 강원대 로스쿨 교수는 노동조합법 등 노동 쟁점 법안들이 국회를 잇따라 통과하자 이같이 밝혔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가뜩이나 기울어진 노사 관계의 운동장이 거여(巨與)의 주도로 더욱 기울어지면서 앞으로 노사 관계의 시계가 더욱 불확실해졌다는 얘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9일 새벽 사실상 단독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열고 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초 정부가 제출한 노조법 개정안이 아닌 민주당이 수정한 위원장 대안들이다.


이 과정에서 사업장에 종사하지 않는 노조 조합원(해직·실직자 조합원)이 사업장 내에서 노조 활동을 할 경우 노사 합의를 거치도록 하는 조항과 생산 시설을 일부·전부 점거하는 쟁의행위의 금지 조항이 삭제됐다. 모두 양대 노총이 삭제를 강하게 요구했던 내용이다. 반면 경영계가 대항권을 위해 주장했던 ‘파업 시 대체 근로 투입 허용’ 및 ‘노조 부당노동행위 신설’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노조법 개정안을 두고 전문가들은 “노사 관계의 미래를 보지 않고 노동계 요구대로만 따라갔다”며 “노사 관계의 비전이 안 보인다”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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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있던 사용자 보호 장치조차 빠져=국회 환노위가 9일 오전 2시 45분께 통과시키고 본회의를 통해 입법된 노조법 개정안은 정부 제출안의 수정안으로 환노위 민주당 간사인 안호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 반영됐다. 노조법 개정안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단결의 자유) 비준을 위한 것으로 정부가 제출한 법안에는 노사 관계의 균형을 위해 사용자단체가 요구한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국회 심의를 거치며 두 가지가 삭제 또는 변경됐다.

우선 노조법 5조의 ‘종사 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이 사업 또는 사업장 내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할 때 사업장 출입 및 시설 사용에 관한 사업장 내부 규칙 또는 노사 간 합의된 절차를 준수하라’는 내용이 삭제됐다. 해직자·실직자의 경우는 회사 근로자라고 볼 수 없는 만큼 원칙적으로 기업의 출입이 불가하다. 다만 노조 조합원의 지위를 가진다면 이를 정하는 것은 노사 합의를 거치라는 얘기다.

하지만 대신 ‘사용자의 효율적인 사업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노조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이 들어갔다. ‘효율적인 사업 운영’의 정의가 애매하다. 비종사자 조합원이 어떤 ‘공간’과 어떤 ‘시간’에서 노조 활동을 하면 효율적인 사업 운영을 저해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노사가 이견을 보이게 되면 결국 법원이 판결로 정해야 한다.

노조법 42조의 ‘생산 및 그 밖의 주요 업무에 관련되는 시설에서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형태의 쟁의행위 금지’에서 ‘전부 또는 일부’도 삭제됐다. 대신 쟁의행위의 기본 원칙을 규정한 37조에 ‘노동조합은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해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로 쟁의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대법원 판례는 생산 시설에 대한 점거는 원천 금지하고 그 밖의 시설에서의 점거도 사용자의 물권에 해당하지만 부분적으로 허용한 것”이라며 “정부 개정안은 주요 업무 시설에서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쟁의행위를 금지해 판례의 취지를 명확히 해준 셈인데 이를 빼버리면 주요 업무·생산 시설에 대해서도 일부 점거가 가능하다는 논리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해직자·실직자 노조 가입’도 부담되는데…재계 요구는 ‘모르쇠’=수정안의 기초가 된 안 의원 안은 양대 노총과의 협의를 거친 내용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논란 속에서 노조법 개정이 민주당 제출안 중심으로 짜인 것은 정부 개정안이 집권당의 눈에 보기에도 얼마나 황당한 수준이었는지를 입증한다”고 평가한 데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재계가 요구했던 ‘파업 시 대체근로 투입 허용, 노조의 부당노동행위 신설’은 전혀 수용되지 않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은 경영계 요청 사항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부안보다 더 노동계의 입장만을 반영한 것”이라며 “편향된 법안이 통과된 것에 대해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경영계는 해직·실직자의 사업장 노조 가입으로 기업의 노무관리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금도 민주노총의 강성 산별노조 산하에 있는 기업별 노조의 경우 임금·단체 협상 과정에서 ‘노조 활동을 하다가 해직된 모 조합원을 복직시켜달라’고 주장하는데 ‘복직 투쟁’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소기업의 노무관리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지금은 노총과 산별노조가 중소기업 노조의 밖에서 자문을 하는 정도라면 노조법 개정안 통과 이후 ‘노동 운동가’가 기업 노조에서 활동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노조법 개정안에 대한 부담은 현장에 있는 기업들의 몫으로 남겨 놓았다는 지적이다. /임지훈·변재현·송종호·박한신기자 jjhlim@sedaily.com

임지훈·송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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