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정책

[기고] 샌드박스서 피는 뉴딜 꽃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VR·AI 활용한 산업융합 모델

디지털·그린 뉴딜 '밑거름'으로

꾸준하게 규제 혁신 심은 곳에서

새 비즈니스 기회도 생겨날 것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세계사에서 인류의 생활을 이토록 빠르고 극적으로 바꾼 일이 있었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아니었다면 몇 년에 걸쳐 일어났을 삶의 변화가 불과 몇 개월 만에 급속히 진행되는 역사의 현장을 우리는 경험하며 목격하고 있다. 경제에 드리워진 불확실성과 불안을 최소화하면서 다시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정부와 공공 부문의 역할도 그래서 재조명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 7월 ‘한국판 뉴딜’이라는 이름의 국가 발전 전략을 제시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빠르게 극복하고 산업·경제의 구조적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해 글로벌 선도 국가로 도약하려는 청사진이라 할 수 있다. 변하지 않으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시기, 디지털과 그린을 양대 축으로 삼은 한국판 뉴딜은 문명사적 대전환의 시기에 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뉴딜 선언 이전에도 새로운 변화의 여건을 만들고, 도전하는 기업들을 위해 사회적 안전망을 깔아주려는 국가의 노력은 있었다. 신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할 때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주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월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 융합 규제 샌드박스가 시행되자마자 민간에서 디지털과 그린을 화두로 해 새롭게 시도한 사업들이 연이어 심의를 통과했다.

산업 융합 규제 샌드박스의 문을 두드린 다양한 신사업 모델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 비대면 문화를 구축하는 데 꼭 필요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굴삭기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는 현장 실습을 반드시 거치도록 돼 있었지만 샌드박스를 계기로 대면 교육 대신 시뮬레이터로 실습을 대체하는 시도가 이뤄졌다.


차량으로 돌아다니며 살펴야 하는 도시가스 배관 안전 점검을 드론으로 편하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서비스도 현재 운영 중이다. QR코드를 인식하는 주차 로봇이 차량을 자동 주차해주는 스마트 주차장 모델도 실증 테스트에 들어갔다. 모두 가상현실(VR)·인공지능(AI)·드론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실증 특례 과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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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규제 샌드박스 심의위에는 친환경 저탄소를 표방하는 그린 뉴딜 관련 안건들도 많이 올라온다. 제1호 승인 과제였던 도심 내 수소 충전소 설치부터 전기 트램에 수소 연료전지를 탑재한 수소 전기 트램의 시험 운영, 소비자 참여형 스마트 그리드 체험단지 구축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10월 개최된 2020년도 4차 규제특례위원회도 전기차 폐배터리 재사용을 포함해 승인 안건 10건 중 5건이 그린 뉴딜과 관련한 사업이었다. 한국판 뉴딜 이전부터 샌드박스라는 모래밭 위에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의 씨앗은 계속 자라고 있었던 셈이다.

모래밭에 농사를 짓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지난 2년간 그 가능성을 경험했다. 샌드박스라는 모판에 실험과 모험, 도전이라는 씨앗을 심고 규제 혁신이라는 물과 영양분을 주고 새로운 비즈니스라는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여기에 올해부터는 한국판 뉴딜이라는 믿음직한 순풍도 가세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디지털 경제와 탄소 중립 사회로 빠르게 옮겨가는 과정에서 규제 샌드박스는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혁업혁득(革業革得).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 꾸준히 혁신을 심은 곳에서 비로소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겨난다. 투박하고 거친 모래밭이라도 이것저것 심으며 도전하다 보면 한국판 뉴딜이라는 생각지 못한 꽃이 분명 활짝 피리라고 확신한다. 물론 그 모래밭이 상상만 한 것을 현실로 가능하게 해주는 ‘규제 샌드박스’라면 그 꽃과 열매는 더 화려하고 튼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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