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음성 인식 기술을 활용해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을 받는 조사 방식이 본격 도입된다. 수사관이 직접 조서를 작성할 필요가 없고 대화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로부터 풍부한 진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경찰청에 따르면 이날부터 서울 31곳을 포함한 전국 59개 경찰서에서 AI 음성 인식 기술을 활용한 성폭력 피해 조서 작성 시스템이 도입된다. AI 활용 조서는 피해자 음성을 인식해 자동으로 진술 조서를 작성하는 개념이다. 피해자가 동의한 경우에만 실시한다. 수사관이 질문을 하면 피해자는 AI 기기에 장착된 마이크에 대고 대답을 한다.
대화 내용은 자동으로 컴퓨터 화면에 텍스트로 기록된다. AI 기기는 피해자의 동작까지 포착해 텍스트로 변환한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손을 들고 진술하면 ‘손을 들었다’고 기록한다. 수사관이 따로 품을 들여 진술 내용을 입력할 필요가 없고 곧바로 질문을 이어나갈 수 있어 피해자로부터 풍부한 진술을 들을 수 있다. 경찰은 지난 7월 입찰 과정을 밟아 4억 1,4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AI 음성 인식 전문 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전에는 수사관들이 성폭력 피해자 진술을 듣고 컴퓨터에 입력하느라 정신이 없어 피해자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며 “AI를 활용하면 조서 작성 부담이 줄고 다양한 질문을 통해 피해자와 수사관이 래포(rapport·정서적 친밀감)를 형성해 풍부한 피해 진술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도입한 AI 프로그램에는 피해자의 진술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추가 질문을 자동으로 수사관에게 제공하는 기능도 있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추행’이라는 말을 진술하면 AI가 추가로 해야 할 추천 질문 목록과 관련된 대법원 판례 등을 화면 옆쪽에 제시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성범죄의 경우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한 번으로 조사를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관련 질문 리스트가 옆면에 뜨기 때문에 질문을 빼먹고 하지 않아 추가 조사를 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피해자 진술이 제대로 텍스트로 변환되는지 확인하고 인식률을 높이기 위해 올 7월부터 최근까지 테스트를 실시했다. 초기에는 사투리를 텍스트로 변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현재는 인식률을 90%까지 끌어올렸다. 경찰은 음성 녹음과 사후 대조를 통해 지속적으로 오류를 수정해 AI 조서의 완성도를 높일 방침이다. 이어 추가 예산을 확보해 내년에는 전국 147개 경찰서, 오는 2022년에는 전국 255개 서에 확대 도입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