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의 탄소 배출이 정말 내연기관차보다 적을까요. 전기차는 주행 중에 나오는 탄소는 없지만, 전력을 만들 때 탄소가 많이 생깁니다. 또 배터리를 생산할 때도 탄소가 배출 됩니다. 기준을 제대로 정립해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옵니다.”(민경덕 서울대 교수)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탄소중립’ 계획을 두고 자동차 업계에선 단순히 주행 중에 배출되는 탄소를 기준(테일 파이프 방식)으로 할 게 아니라, 전력생산부터 배터리 등 부품생산까지 고려한 정책(전 생애주기 분석·LCA)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는 전기차의 주행 중 배출 탄소를 ‘0’으로 가정하고 전기차 보조금으로 1조원 이상을 투입하고 있지만, 전력이나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를 고려하면 전기차 또한 내연기관차 못지 않게 탄소를 배출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국자동차공학회가 LCA 기준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비교해봤더니, 테슬라 모델X는 아반떼 1.6 가솔린 모델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오히려 높았다. 주행 중에 나오는 온실가스는 아반떼가 훨씬 높았지만, 전기차는 전력과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민 교수는 “전기차나 수소차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0’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지금은 차량 주행 중 나오는 배출량만 기준 삼아 규제하고 있지만, 전체 과정을 고려해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실제 일본은 2030년 LCA 기반 규제 도입을 확정했고, 유럽도 2030년 이후 LCA로 전환을 검토 중이다. 중국은 2035년 내연기관차 신규 판매를 하지 않고 하이브리드차와 신에너지차를 절반씩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실제 탄소 배출은 줄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현재 200기 가까이 건설 중인 석탄발전소에서 전력이 공급될 전망이어서다. 민 교수는 “발전원의 혁신적인 변화 없이는 탄소 배출 개선 효과가 미미하다”며 “중국의 신에너지차 드라이브는 환경 개선이 아니라 산업 육성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충식 KAIST 교수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제대로 감축 효과를 계산해야 하는데, 계산이 안되다 보니 내연기관차는 악, 전기차는 선이라는 분리주의만 횡행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일각에서 제시되는 내연기관차 퇴출은 고효율 기술 혁신의 소지를 미리 없애는 것”이라며 “미래 가능성을 말살하는 부정적인 편 가르기는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꾸준한 연구를 통해 내연기관차 또한 충분히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인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지난달 2035년 내연기관 차량 판매 금지 정책을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자동차 업계는 단순한 내연기관차 퇴출 정책이 아니라 현실적인 미래차 전환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규제보다는 연구개발 지원 자금 등 인센티브 위주의 정책으로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장은 “부품업체들이 미래차에 투자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동안은 기존 내연기관차 분야에서 수익을 확보할 수 있게 해야한다”며 “이상에 치우친 정책보다는 현실적인 미래차 전환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건용 한국자동차공학회장 또한 “2040년이 돼도 신차 판매의 절반은 내연기관차가 차지할 거라는 게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의 전망”이라며 “피나는 노력을 통해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내연기관차 부품 경쟁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