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문화가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제약업계에 ‘직장인의 꿈’으로 불리는 ‘별’을 단 여성 임원 3인방이 화제다. 주인공은 황유경 GC녹십자랩셀(144510) 세포치료 연구소장, 박명희 한미약품(128940) 마케팅사업부 전무, 이미엽 종근당(185750) 사업개발담당 이사다. 이들은 여성 임원 비율이 업계 평균 10%에 불과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 그야말로 ‘유리 천장’을 뚫고 성장한 여성 직장인들의 롤모델로 꼽힌다.
서울경제신문은 최근 강남구 역삼동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의 한 회의실에서 3인을 만났다. 가장 궁금한 질문. 어떻게 임원이 됐을까. “성실함은 기본, 전략적 사고는 필수”라는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황 소장은 GC녹십자(006280)가 기금을 출연해 설립한 목암연구소에서 살아있는 세포를 체외에서 증식해 치료제로 활용하는 세포치료제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스핀오프 방식으로 GC녹십자랩셀을 탄생시켰다. 황 소장은 “당시만 해도 세포로 치료제를 만드는 게 생소한 분야였던 만큼 ‘괜히 멋있어 보이는데 힘 빼지마’라고 말하는 선배들도 있었다”면서 “당시 그냥 열심히 연구에 몰두하기만 했다면 성공하기 어려웠겠지만 미래 방향성을 보고 서울대병원 연구팀과 협력하는 등 전략적으로 사고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 이사는 아들이 큰 수술을 받게 돼 2년간 경력 단절을 겪은 뒤에 재취업에 성공해 임원까지 올랐다. 이사는 “2년간 일을 쉬면서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면서 “감사하게도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시절 육아 핑계를 대면서 편한 부서에 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많은 부서에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았던 것 덕분”이라고 전했다. 박 전무는 화이자, MSD 등 글로벌 제약사를 거치며 다양한 부서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박 전무는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을 재밌게 했다”며 “항상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한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매출 1,000억 이상 상장 제약사의 여성 직원 비율은 29.2%다. 이들 중 여성 임원 비율은 전체의 7.8%에 불과하다. 여전히 편견이 존재하는 제약업계에서 3인방은 눈물 겨운 노력이 결국 편견을 깼다. 3인방은 모두 결혼을 했고 자녀가 있다. 20여 년 전 육아휴직이란 게 없던 시절 속에서도 육아와 일을 병행해냈다. “당시를 회상하면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이 이사는 “첫 아이 출산 때는 출산 예정일 전날까지 일하다 회사에서 양수가 터져 부장님이 차로 병원에 데려다 줬던 기억이 난다”며 “당시 유능한 여선배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대리에서 그만뒀고 가장 많이 승급한 선배가 그나마 팀장을 달고 회사를 나갔다”라고 털어놨다. 편한 길 보다는 악바리 같은 근성으로 능력을 인정 받은 것이 결국 그들이 별을 단 이유다.
제약사 입사를 꿈꾸는 여성 후배들을 위해 회사를 소개해달라고 하자 앞다퉈 이야기를 꺼냈다. 박 전무는 “한미약품은 여성 직원 비중이 업계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고(故) 임성기 회장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관없이) 능력 있는 사람이 등용돼야 한다는 뜻이 강했다”고 전했다. 실제 한미약품은 지난 2018년 전문직여성 한국연맹으로부터 제약업계 최초로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황 소장은 “비영리 재단법인 목암연구소에서 세포치료제가 사업화돼 녹십자랩셀이 탄생했듯 녹십자에서는 투자 대비 성과만을 따지지 않는 연구를 할 수 있다”며 “GC녹십자 그룹사의 경우 연구개발 분야만 놓고 보면 여성 직원이 60%에 달해 ‘과학기술 분야에는 여성이 소수다’라는 말이 체감이 안 될 정도”라고 강조했다. 이 이사는 여성 인력이 보다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약 개발 초기 단계인 리서치 분야에는 여성 인력이 많은 편이지만 정작 사업개발, 허가 등 후반 단계에는 경험 있는 인재가 부족하다”며 “앞으로 사업개발(BD)이나 허가 분야에도 여성 인력들이 많이 진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