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미로 컨테이너 화물을 보내는 해상운송 노선의 선박이 부족해지자 수출 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세계 10대 교역국인 우리나라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수출 물량이 늘고 있는데 운송이 어려워 수출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이 일견 어이없어 보인다. 기업의 수출 화물을 긴급 처리해줄 방도가 정말 없는지 납득이 안 되고 한국 발 선박 운임이 계속 올라 수출 기업의 경쟁력이 하락하는 것도 일반 시민은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 컨테이너 운임이 하루아침에 급등하고 적자에 시달리던 HMM(옛 현대상선)이 5년 만에 흑자로 전환해 한국 해운 산업의 위기는 끝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컨테이너 해운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다른 현실이 존재한다. 극동 아시아에서 북미나 유럽을 잇는 해상운송 노선에는 주요 항만을 주 1회 기항하는 정기 서비스들이 있다. 대형 컨테이너선이 서비스별로 적게는 6척, 많게는 18척이 투입된다. 해운 회사가 보유한 선박들은 이미 정기 서비스에 투입 중이라 특정 구간의 화물 운송 수요가 늘어난다고 선박을 추가 투입하거나 서비스를 늘리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불가능하다.
항만별로 선박 운송량을 할당하기 때문에 운임이 높은 항만에 더 많은 물동량이 배정될 수밖에 없다. 부산항보다 중국 항만에 더 많은 운송 용량이 배정되는 데는 이런 사정이 있다. 지금 같은 시기에 국적 선사의 역할은 막대하다. 한진해운 사태 당시 국적 선사가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으니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주장이 제기됐던 배경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운임 하락으로 글로벌 20대 컨테이너 선사의 8개가 합병 혹은 파산한 영향은 국내 해운 업계에도 여전하다. 한국 해운업은 세계 5~6위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국내 업체에 화물을 맡기기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일시적인 컨테이너 운임 상승이 한국 해운의 재건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정부는 해운업 재건을 위해 한국해양진흥공사를 2018년 설립했다. HMM이 초대형 친환경 선박 20척을 새로 건조하고 4월 세계 3대 해운 동맹인 ‘디 얼라이언스’에 가입하는 데 해양진흥공사의 존재는 적잖은 힘이 됐다. 중소형 선사가 노후 선박을 폐선하고 친환경 고효율 선박으로 교체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하고 있다. 선박은 고가다 보니 취득 시 발생하는 차입금에 대한 채무보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선박 보증의 범위를 확대하는 법 개정도 이뤄졌다. 그 결과 해운 기업에 대한 유동성 공급이 원활해지고 자산 취득 시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그래도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환경 규제가 급격히 강화되고 있고 해운 기업의 디지털 전환 성공 여부는 향후 기업 생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에너지와 식량을 운송하는 벌크와 탱커 업체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와 해양진흥공사는 국내 해운사가 친환경 고효율 선대를 확충하고 디지털 혁신에 적극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해운업의 재건은 아직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