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정여울의 언어정담] 아들러 심리학으로 바라본 공자의 리더십

작가

인간은 협력 통해 더 나은 존재돼

어우러져 살면서 서로를 변화시켜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

팬데믹 함께 건너는 우리에게 필요

정여울 작가정여울 작가



인문학 강연을 할 때 가장 기쁜 시간은 독자들의 눈빛이 바뀌는 순간이다. 고민 많은 눈빛을 숨기지 못하는 독자들이 내 강연을 듣는 동안 뭔가 깨달은 느낌을 받는 순간. 강연을 들으며 ‘삶을 이렇게 바꿀 수 있겠구나’하는 희망을 가질 때, 나 또한 커다란 보람을 느낀다. 한 번의 강의만으로 독자의 눈빛이 바뀔 때도 있지만, 여러 번 만나며 서서히 힘겹게 변화하는 사람을 볼 때 더욱 뿌듯하다. 간절히 무언가를 배우고 싶지만 마음속에 ‘난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장벽이 너무 높아 자신도 모르게 자꾸 포기해버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사람의 마음’ 때문에 고민에 빠졌을 때, 내게 영감을 준 사람이 바로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다. 인간이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감으로써 더 나은 존재로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심리학이 바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이다.



나는 최근에 ‘논어’를 다시 읽으면서 공자와 제자들의 이야기가 바로 아들러 심리학과 매우 잘 어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자의 제자 중에서 아들러 심리학의 ‘협력’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증언하는 인물은 바로 ‘자로’다. 자로는 처음 공자를 만났을 때 그를 우습게 보고, 공자를 때리려고까지 했던 무뢰한이었다. 가르침 따위는 필요치 않다고 믿었던, 도무지 그 누구의 가르침에도 길들 수 없을 것같은 자로가 공자의 회유에 넘어가는 장면은 언제 읽어도 감동적이다. 공자가 자로를 처음 만났을 때 물었다. “자네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자로의 대답이 기막히다. “나는 긴 칼을 좋아한다네.” 누구라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긴 칼을 좋아한다고 단번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얼마나 많은 폭력의 기억이 숨어 있었을까. 공자는 겁먹지 않고 태연하게 말한다. 그런 것을 물은 것이 아니라고. 그대가 원래 잘하는 것에 ‘학문’을 더한다면, 아무도 그대를 따를 자가 없을 것이라고. 자로는 반신반의하며 말한다. 학문이라는 게 나에게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학문의 효과를 의심하는 자로의 반항심 짙은 표정이 저절로 상상된다. 공자는 온갖 비유를 들어 친절히 일러준다. 간언하는 신하가 없으면 임금이 실정하고, 미친 말을 몰 때는 채찍을 놓을 수 없으며, 나무는 목수의 먹줄이 닿아야 곧아지며, 사람은 타인의 비판을 들어야 비로소 성장한다고. 배움을 추구하고 질문을 중시하는 사람이 된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있겠느냐고. 자로는 여전히 잘난 척하며 이렇게 말한다. 남산의 푸른 대나무는 누군가 잡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곧으니, 그 대나무를 잘라 화살로 쓰면 가죽 과녁을 뚫어버리지 않느냐고. 그러니 굳이 학문을 배울 필요가 있느냐고. 자신이 남산의 푸른 대나무처럼 곧고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자로의 자만심이 하늘을 찌른다. 공자는 포기하지 않고 자로를 보듬는다. 그 푸른 대나무를 잘 다듬어 깃털도 달고 쇠촉도 달아 날카로이 연마한다면, 더 깊이 가죽을 뚫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제야 자로가 무릎을 꿇고 두 번 절하며 삼가 가르침을 받겠다고 선언한다. 그들은 그렇게 세상에 둘 도 없는 스승과 제자가 됐다.


사람은 정말 안 바뀐다는 생각 때문에 절망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로와 공자의 에피소드를 생각한다. 그들의 기적 같은 인연을 생각하면 미소가 번진다.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을 것 같은 거친 반항아 자로가, 공자의 너그러운 가르침으로 훌륭한 인재로 거듭난 것만이 변화는 아니다. 가르칠 제자들은 많았지만 고민을 털어 놓을 친구는 없었던 공자에게 든든한 말벗이 되어준 것도 바로 자로다. 다른 제자들이 공자를 스승으로만 바라볼 때 자로는 용감하게 스승의 잘못을 꼬집어 말할 줄도 알았고, 지혜롭지만 늘 외로운 공자의 고민을 상담해 주기도 했다.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듯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아들러 심리학은 콤플렉스를 극복해 끝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 인간의 힘, 특히 ‘협력’을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믿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끝내 서로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뜨거운 믿음.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기나긴 터널을 함께 건너는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절실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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