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요 기업들이 잇따라 채권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지고 있는데다 글로벌 주요 지수에서도 제외되면서 글로벌 시장을 두고 경쟁하던 한국 기업들의 반사이익과 함께 국내 증시의 외국인 수급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18일 금융 투자 업계에 따르면 지난 10월부터 이날까지 중국 국영기업 중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를 상환하지 못하거나 만기 연장에 실패해 디폴트를 선언한 기업이 25곳에 이른다. 산둥루이그룹·칭화유니그룹 등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졌던 기업들이 자금난에 빠지자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던 한국 기업들이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판단에 주가 역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실제로 이날 섬유기업인 효성티앤씨는 전거래일 대비 6.55%(1만 3,500원) 상승한 21만 9,5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효성티앤씨의 주가는 이달 15일부터 4거래일 연속 상승해 이 기간 15%가 넘게 올랐다. 효성티앤씨의 최근의 오름세는 세계 3위권 스판덱스 업체 ‘라이크라’를 보유한 산둥루이그룹의 디폴트 선언에 따른 반사이익이라는 분석이다. 산둥루이는 이달 15일 10억 위안(약 1,68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에 빠졌다. 이동욱 키움증권 연구원은 “효성티앤씨는 산둥루이와 산둥루이가 인수한 세계 3위 스판덱스 업체인 라이크라의 재무적 위기를 기회 삼아 최근 터키·인도·브라질 공장의 신증설을 통해 기저귀 등 차별화 제품들의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달 중순 발생한 중국 칭화유니그룹의 디폴트는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도체 업황 개선이 기대되는 가운데 중국 ‘반도체 굴기’의 상징으로 꼽히는 칭화유니그룹이 지난달 16일 회사채 만기 연장에 실패하며 부도 위기에 놓이자 국내 반도체 기업을 향한 외국인 투자가의 러브콜이 거세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11월 중순까지 줄곧 9만 원 이하를 유지하던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칭화유니의 디폴트 소식이 알려진 16일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약 일주일 뒤 10만 원 선을 돌파했다. 칭화유니그룹의 자금난은 반도체 기업들의 내년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리라는 의견이 많다. 김주연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칭화유니그룹의 재정 위기 등이 불거지며 중국의 내년도 반도체 장비 투자는 올해 대비 7.2%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며 “반면 한국 기업들은 시설 투자 규모가 20.4% 늘어날 것으로 추정돼 해외 투자가들의 주목을 좀 더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세계 주요 지수 산출 기관들이 미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기업을 지수에서 제외하기로 한 결정도 한국 기업들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SMIC를 비롯해 하이크비전·중국위성·중국철도건설 등 7개 중국 기업을 모든 주가지수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MSCI는 오는 30일까지 최종 제외 목록을 발표해 내년 1월 5일 장 마감 이후 지수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 S&P다우존스인다이시스(S&P DJI)와 나스닥, 영국 FTSE도 각종 주식 지수 구성 종목에서 중국 기업들을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송승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MSCI 신흥국(EM)지수 내 중국 기업들이 제외되고 한국 시장의 비중이 높아지면 한국 기업들의 지수 신규 편입을 기대할 수 있다”며 “HMM·녹십자 등의 편입 가능성이 높은데 이들이 지수에 편입될 경우 각각 수천억 원 규모의 패시브 자금 유입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디폴트로 인한 중국 신용 리스크의 부각과 블랙리스트 기업들의 지수 제외 등의 악재로 인해 외국인 투자가들의 자금이 중국 대신 한국 증시 전반으로 흘러들어오리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실제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운용하는 ‘아이셰어스 MSCI 중국 ETF’에는 11월부터 이달 8일까지 자금 유입이 전혀 없었지만 ‘아이셰어스 MSCI 한국 ETF’에는 같은 기간 총 6억 5,040만 달러(약 7,147억 원)가 신규 유입됐다. 허인환 KB증권 연구원은 “신흥국에 투자하는 동시에 중국 리스크를 헤지(위험 회피)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며 “미국의 대중국 제재가 한국 증시의 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