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지난 11일 발표 예정이던 산업통상자원부 사무관 인사가 사흘 연기된 후 발표됐다. 2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인사 규모가 크다 보니 조율하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특히 원전국을 비롯한 에너지 관련 부서의 지원자가 거의 없던 터라 인사 담당자들이 마지막까지 진땀을 뺐다고 한다. 업무 공백을 우려한 선배들이 “원전국에 오면 유학을 보장해주겠다” “오자마자 휴직해도 되니 일단 와달라”며 후배 사무관들을 얼렀다는 얘기도 들린다.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에 대한 수사 여파가 인사에 미친 영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원전 조기 폐쇄에 관여한 원전국 소속 공무원들이 구속되다 보니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눈앞에 닥친 ‘미션’도 부담스럽다. 원전국은 내년 2월 발전 사업 허가가 만료되는 신한울 3·4호기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 사무관들 사이에서는 “허가를 취소하든 연장하든 문제가 될 수 있다” “국정 과제를 맡는 부서는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탓하기도 어렵다. 국정 과제와 연관된 업무일수록 청와대 등 윗선의 지시는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원전 좀 빨리 꺼야 하지 않겠느냐”는 두루뭉술한 지시가 떨어지면 시점을 구체화하고 시행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일선 공무원 몫이다. 공무원이 원칙에 맞춰 마련한 이행 계획을 보고하면 “이런 식으로밖에 일 못 하냐”는 질책이 돌아온다. 몇 차례 퇴짜 맞은 보고서를 고치는 사이 점차 무리수를 두게 된다. 훗날 책임 소재를 가릴 때면 두루뭉술한 지시를 내린 윗선은 살아남고 윗선의 마음을 알아서 헤아리던 공무원은 범법자가 된다. 지난달 25일 산업부를 찾은 정세균 국무총리는 “후배들이 위축되지 않고 어깨 펴고 자기 책무를 다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나나 장관이나 선배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국정 과제는 국가의 미래를 다루는 정책이다. 소명 의식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절실하다. 하지만 이렇게 윗선에서 책임을 떠미는 행태라면 앞으로도 떠난 사람 빈자리를 메우는 일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ub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