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지쳐만 가던 때에 아름다운 선물을 받았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공연이다.”
규모는 줄어들었지만, 인류애를 향한 ‘합창의 울림’은 어느 때보다 강렬하고 가슴 벅찼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20일 유튜브와 네이버 TV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한 ‘마르쿠스 슈텐츠의 베토벤 합창’ 공연은 웅장한 선율과 인류애를 향한 화합의 노래로 고단했던 한 해 시름을 위로했다. 서울시향이 이날 선보인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은 사실 연말 클래식 공연계의 단골 레퍼토리다. 자유와 화합, 인류애를 담은 작품의 메시지와 합창단까지 어우러진 대규모 편성의 웅장함이 세밑 분위기를 북돋우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확산으로 대편성 무대는커녕 공연이 줄줄이 취소된 올 연말, 해마다 ‘합창’을 송년 레퍼토리로 선보여 온 서울시향은 편성 규모를 줄이고 전원 코로나 검사를 받는 수고를 감수하며 공연을 성사시켰다. 지난해 서울시향의 ‘합창’ 무대에는 합창단원 124명, 솔로이스트 4명, 현악 연주자 60명, 관·타악 연주자 24명 등 200명 이상이 무대에 올랐다. 올해는 합창단을 24명으로 줄이고 솔로이스트 4명,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를 포함해 총 64명으로 인원을 제한했다. 특히 베토벤 원보에 19명이 등장하는 관악기 연주자는 절반 미만인 8명으로 대폭 줄었다. 당초 롯데콘서트홀에서 대면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19 재확산 속에 무관중 온라인 중계로 전환됐다.
마스크를 낀 채 포디움에 오른 마르쿠스 슈텐츠 서울시향 수석 객원 지휘자는 벅찬 표정으로 오케스트라를 둘러본 뒤 합창의 세계로 관객을 안내했다. 극대화된 크레센도 효과가 백미인 1악장과 단조에서 장조로의 급변이 인상적인 2악장, 그리고 코랄 풍 멜로디로 완성한 서정적인 3악장까지. 최소화한 인원에도 불구하고 원곡의 웅장함을 오롯이 살려냈다.
9번 교향곡의 백미인 마지막 4악장 ‘환희의 송가’는 익숙한 그 멜로디 만으로 랜선 너머 전율을 느끼게 했다.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詩)에 베토벤이 곡을 붙여 만든 4악장은 오케스트라와 네 명의 솔로이스트, 합창단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지는 절정부로 유명하다. 소프라노 박혜상·테너 박승주·메조 소프라노 이아경·베이스 박종민·국립합창단은 가림막을 경계로 마스크를 쓴 채 최선·최상의 화음을 선사했다. ‘관습이 엄하게 갈라놓았던 것, 그대의 마법이 다시 묶어, 모든 인간은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 머무는 곳,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어느 때보다 고됐던 한해였기에 희망찬 가사는 더 가슴 벅찬 위로로 다가왔다.
관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온라인으로나마 세밑 분위기를 즐기려는 이들의 접속이 이어지며 동시 시청자는 5,700명(유튜브 기준)을 넘어섰다. 이들은 실시간 채팅창을 통해 “편성이 줄었지만, 감동은 배로 얻었다”, “현장에서 박수를 보낼 수 없는 게 안타깝다”며 각고의 노력 끝에 무대를 올린 오케스트라와 출연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특히 성악가와 합창단이 마스크를 쓴 채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내년에는 꼭 마스크 없이 노래했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움 섞인 찬사를 보냈다.
공연의 울림은 노심초사 무대를 준비해 온 단원과 스태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더 컸다. 서울시향은 이날의 안전한 공연을 위해 앞서 모든 출연자와 스태프들이 미리 코로나 19 검사를 받았다. 출장 검사팀이 서울시향을 방문해 단체로 검사를 진행했고, 해당일에 참여하지 못한 관계자는 각 구청을 방문해 개별검사를 받았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비대면이어도 안전한 공연을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동참했다”며 “검사 결과 전원 음성이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