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임금 중심의 고용 보험 체계를 소득 중심으로 변경해 전 국민이 실업 급여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전 국민 고용 보험 로드맵’을 발표했다. 임금 근로자가 아닌 특수 고용직, 플랫폼 종사자, 자영업자도 고용 보험에 가입하게 해 현재 1,400만 명 수준인 가입자를 오는 2025년까지 2,100만 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고용보험기금 고갈 문제에 대해서는 운영해본 뒤 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자영업자 고용 보험 가입 문제도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논의한다는 입장이어서 복잡한 문제는 차기 정부로 떠넘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전 국민 고용 보험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달부터 시행 중인 예술인 고용 보험을 안착시키고 내년부터 특고, 플랫폼 노동자 등 14개 산재보험 적용 직종을 시작으로 고용 보험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산재보험 적용 대상인 보험 설계사, 택배 기사 등 소득 파악이 비교적 쉬운 직종부터 고용 보험에 가입시키겠다는 것이다.
정작 문제는 고용보험기금 적자 규모가 올해 3조 원을 웃도는 상황에서 재정 건전성 방안이 로드맵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장관은 “일정 기간 운영한 후 전문 기관을 통해 운영 성과를 평가하고 재정 추계를 실시하는 등 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한 노력을 강화하겠다”고만 밝혔다. 기존 임금 근로자가 낸 고용 보험료로 예술인·특고·자영업자 등의 실업 급여를 추가 지급해 기금이 고갈될 우려가 커진 셈이다. 소득을 파악하기 어려운 자영업자의 고용 보험 가입 문제도 현 정부의 임기가 종료된 뒤인 2023년 이후로 미뤄졌다.
정부가 23일 발표한 전 국민 고용 보험 로드맵은 지난 5월 정부가 전 국민 고용 보험 시대를 선언하면서 로드맵을 연내에 공개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10일부터 적용된 예술인 고용 보험을 시작으로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전 국민 고용 보험 가입을 구체화해 오는 2025년까지 2,100만 가입자를 달성하겠다는 게 목표다. 그러나 이날 정부가 발표한 로드맵에는 재정 건전성 문제와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 및 고용 보험 가입 문제 등의 해법은 포함되지 않았다. 결국 골치 아픈 문제는 차기 정부의 짐으로 남게 됐다.
로드맵에 따르면 정부는 10일 시행된 예술인 고용 보험을 안착시키고, 같은 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고용 보험 적용을 위한 고용보험법·보험료징수법에 따라 내년부터 특고, 플랫폼 노동자 14개 산재보험 적용 직종을 시작으로 고용 보험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예술인의 경우 계약서상 소득을 합산 적용하고 문화 예술 용역 가이드라인과 전자 계약 플랫폼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계약 형태가 제각각인 특수고용직과 플랫폼 종사자는 직종별로 묶어 고용 보험을 순차 적용한다. 또 보험 설계사 등 사업주가 매월 소득세를 원천징수하는 직종은 사업소득 간이지급명세서 제출 주기가 반기별에서 월별로 단축된다. 본인이 직접 반기별로 부가가치세를 신고하는 택배 기사 등은 계약 상대방 사업자에게 발행하는 세금계산서를 통해 소득을 파악한다.
문제는 이날 발표한 정부 로드맵에 재정 건전성에 대한 내용이 쏙 빠져 있다는 점이다. 이날 정부는 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해 차후 운영 성과를 평가해 재정 추계를 실시하겠다고 했지만, 전체 특고·자영업자가 고용 보험을 적용받는 시기는 2022년 7월이다. 현 정부 임기가 끝나고 차기 정부에서 대책을 마련하라는 얘기다. 또 특고 이직률(38.1%)은 임금 근로자(4.4%)의 8배가 넘는데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누적 적립금은 현재도 매년 적자다. 지난해 말 7조 3,532억 원 규모에서 올해 말 4조 894억 원으로 감소했는데 내년에도 3조 원대의 적자가 예상되는 등 기금이 곧 고갈된다.
아울러 자체 신고에 의존해야 해 소득 파악이 어려운 자영업자의 고용 보험 가입 문제도 차기 정부의 과제로 남겨놓았다. 로드맵에 따르면 자영업자 고용 보험 가입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논의한 뒤 2023년 도입된다. 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보통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 대화로 일컬어지는데 자영업자는 한편으로 사업자고 한편으로 근로자라 노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는 선언적인 의미로 복잡한 문제는 차기 정부에 넘겼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로드맵 외에 또 다른 형태의 노무 계약이 나오면 이를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하는 문제도 차기 정부의 짐으로 남았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현 고용 보험은 임금 근로자에 맞춘 모델”이라며 “조건이 다른 임금 근로자와 특고·자영업자의 고용보험기금을 섞으면 서로에게 재정 부담이 가중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어 “특고·자영업자 모델 등을 별도로 발전시키는 동시에 기금 계정을 임금 근로자와 분리해 이원화시키고 부족한 재정은 보험료 인상으로 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