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카자흐 철권통치 휘청…美·EU·남미까지 물가폭등에 '녹다운'

[정권 흔드는 '팬데믹 인플레']

공급난·유동성과잉에 인플레 심화

카자흐 사태로 우라늄·유가 급등

토카예프 대통령, 시위대 발포 명령

유혈사태 속 美·러 새 격전지 될듯

바이든 레임덕 위기·중간선거 비상

'각자도생' 유럽은 국제위상 약화

남미 대선서도 정권교체 변수로

6일(현지 시간) 카자흐스탄 동남부 최대 도시 알마티 시청 건물이 물가 상승에 분노한 시위대의 방화로 불길에 휩싸여 있다. /타스 연합뉴스6일(현지 시간) 카자흐스탄 동남부 최대 도시 알마티 시청 건물이 물가 상승에 분노한 시위대의 방화로 불길에 휩싸여 있다. /타스 연합뉴스




7일(현지 시간)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성명을 통해 “(군대를 향해) 시위대에 경고 없이 사살하라”고 발표했다. 친러 성향의 토카예프 정부가 구소련 독립 이후 30년간 이어온 철권통치가 시위대의 반발로 붕괴 위기에 몰리자 극단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인테르팍스통신은 이날 시위 가담자 26명이 사살됐고 3,000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경찰관도 18명이 사망하는 등 인명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카자흐스탄 사태가 최악의 유혈 사태로 치달으면서 서구권 반발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카자흐스탄이 러시아와 미·서구권 간에 새로운 격전지가 되는 것은 물론 앞으로 사태 진행 방향도 예측하기 더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카자흐스탄의 유혈 시위는 고물가로 들끓는 전 세계 민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앞서 물가상승률이 9%에 육박한 상황에서 카자흐스탄 정부가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상한제를 폐지한 게 이번 시위 도화선이 됐다.

결국 내각은 총사퇴했다. 3년 차에 접어든 코로나19 사태는 유례없는 공급난과 유동성 과잉으로 연결돼 고물가를 초래하고 있다. 체감물가가 높아지자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허덕이던 민심이 폭발하고 있고 이는 각국 정권의 명운을 쥐락펴락하는 데서 더 나가 국제 정세까지 뒤흔드는 양상이다. 러시아가 카자흐스탄 시위 진압을 위해 즉시 군 병력을 투입하는 등 적극적인 개입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블룸버그통신은 “카자흐스탄의 체제 붕괴는 구소련의 인근 국가로 번질 수 있다”며 “이 경우 중앙아시아 내 러시아의 영향력 축소는 시간문제”라고 전했다. 가뜩이나 우크라이나 영토를 둘러싸고 서구권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러시아 입장에서 카자흐스탄의 시위가 길어지는 것은 큰 부담이다.




한때 합리적인 지도자로 인정받았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36%(2021년 12월 기준)를 넘자 지지 기반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이미 민심은 바닥이다. 터키의 대표적 여론조사 기관 콘다가 올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터키인 38%가 나라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HSBC의 이브라힘 악소이 애널리스트는 “터키의 물가상승률이 4월 이후 약 42%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해 그의 추락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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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선진국들도 인플레이션 리스크에 노출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지지율은 고작 재임 1년 만에 40% 초반대로 추락했는데 고물가가 원흉으로 꼽힌다. 급기야 바이든 대통령은 가격 담합을 이유로 기업 팔 비틀기에 나섰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고물가 원인을 잘못 짚었다”며 “이대로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상·하원과 주지사 모두 공화당이 장악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외신들은 중간 평가 성격인 11월 선거에서 바이든 정권이 패할 경우 민주당의 경제외교 정책의 힘이 급격히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브렛 스티븐스는 “통제되지 않는 인플레이션은 결국 나라를 혼란으로 내몬다”며 “특히 미국이 확연한 긴축으로 돌아선 상황이라 각국 정부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인플레이션의 끝은 리세션(경기침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엄청난 유동성, 공급난에 따른 고물가, 전력난 등에 따른 자국 우선주의 경향, 인력난·구인난 등으로 임금 인상, 패권 경쟁 등에 따른 무역 왜곡 등이 맞물려 있다.

이미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고물가 위험에 처한 유럽은 각자도생에 나섰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원자력발전소 재가동으로 에너지 정책 방향을 선회했다. 반면 독일은 탈원전 기조를 유지하며 재생에너지 생산 시설을 늘리고 있다. 이 같은 의견 차이는 유럽연합(EU) 결집력 약화로 이어져 국제사회에서 유럽의 위상 약화로 연결되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특히 물가 불안으로 인한 개별 국가의 조치가 또다시 물가를 부추기는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는 게 문제다. 가령 전 세계 우라늄 생산의 40%를 차지하는 카자흐스탄의 갑작스런 혼란이 원자재 값 급등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미 국제유가는 슬금슬금 올라 배럴당 80달러 인근까지 치솟았다. 글로벌 에너지 조사 기관 라이스타드의 애널리스트 루이스 딕슨은 “카자흐스탄이 세계 경제의 ‘블랙스완(Black Swan·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올 예기치 못한 사건이나 사고)’이 될 수 있다”며 “당장 유가가 불안하다”고 분석했다. 7일 태국 정부가 돼지고기 수출을 3개월간 금지하기로 한 점, 앞서 인도네시아가 1월 한 달간 석탄 수출을 막은 점 등은 자국 우선주의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앞으로 희토류 등의 자원이 무기화될 가능성도 있어 물가 왜곡이 수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남미도 올해 대선이 줄줄이 있다. 지난해 말 칠레에 이어 5월 콜롬비아, 10월에는 브라질에서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는데 인플레이션 대응이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소비자물가상승률이 50%를 넘고 브라질도 10%를 웃돌고 있다.

백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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