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이 한국인일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탈북민은 철저히 이방인 일뿐입니다.”
김용화(70·사진) 탈북난민인권연합 회장은 격앙돼 있었다. 27일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먼저 할 얘기가 있다”며 가슴에 담았던 말들을 쏟아냈다. 한번 터진 불만은 봇물이 됐다. 단체를 만든 후 직원 한 명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던 통일부 산하 탈북민 지원기관에 대한 비판부터 현실과 괴리된 탈북민 정책까지 한도 끝도 없이 흘러 나왔다.그동안 쌓였던 설움과 불만이 한꺼번에 터진 듯 했다.
1988년 북한을 탈출한 김 회장은 1995년 한국에 왔지만 간첩으로 몰려 옥살이를 하고 일본으로 밀항을 하는 등 갖은 고생을 하다 2000년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도움으로 한국 국적을 얻었다. 그 때 김 추기경의 한마디는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당시 김 추기경이 ‘당신에게 조국이 없는 것이 아니다. 분단의 비극일 뿐이다. 받은 만큼 돌려주라’고 하더군요.” 이후 ‘탈북민의 아버지’ ‘멘토’로 불리며 탈북민을 위한 외길 인생을 걷기 시작했다. 탈북민들이 가장 많이 찾아가는 곳도 정부가 아니라 서울 강동구 천중로의 한 건물 지하에 자리 잡은 허름한 그의 사무실이다. 이날도 사무실은 20여 명의 탈북민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탈북민을 멸시하고 얕잡아보는 현실이다. 얼마 전 사무실을 찾아왔던 80대의 행동은 그를 분노케 했다. 김 회장은 “노인의 첫 마디가 30대 탈북 여성을 소개해 달라는 것”며 “탈북민들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런 말을 여기 와서 하나 하는 생각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고 토로했다. 뿐만 아니다.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삐딱하게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에도 한숨이 나온다. 그는 “탈북민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아버지가 간첩 아니냐’ ‘싸움 잘하냐. 한번 싸워보자’ 라는 말을 듣고 왕따 당하곤 한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사시를 뜨고 바라보기 일쑤”라며 “이러다 보니 탈북민이라고 하지 않고 중국에서 왔다거나 고향이 강원도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탈북민이 우리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힘들 수 없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도움을 받을 곳도 마땅치 않다. 통일부 산하에 탈북민 지원을 위한 ‘남북하나재단’이 있기는 지금까지 직원 얼굴 한번, 전화 한 통 온 적이 없다는 게 김 회장의 주장이다. 탈북민에게 주어지는 정착지원금 제도에 대한 개선도 촉구했다. 김 회장은 “정착지원을 위해 약 3,000만 원 정도를 지원하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받으려면 ‘하나원’을 나온 뒤 6개월 내에 4대 보험이 적용되는 기업에서 2년 이상 일해야 한다”며 “이런 조건이 가능한 탈북민은 100명 중 2명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탈북민에 대한 심리 상담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단체의 총무직을 맡고 있는 김희정 씨는 “탈북민들은 문 앞에서 가족을 잃거나 총살을 당하는 등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이 많다”며 “전문 상담사를 두고 이들에게 심리 상담 지원을 해 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의 소망은 거창하지 않다. 그저 탈북민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달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우리가 정치하기 위해 북한을 탈출한 것은 아니다” 라며 “탈북자들을 같이 안고 가야 할 내 이웃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