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임상 멈추고 설비도 팔고…"내년 투자커녕 버티기도 버거워"

■생존기로 내몰린 바이오벤처

내년 침체 대비 파이프라인 축소

비싼 항암 임상 의뢰 사실상 중단

VC 요구로 인력 40% 감원하기도

"연구소 내 빨간딱지 보니 한숨만"





경기침체 공포가 바이오 벤처업계에도 불어닥치고 있다. 내년 사내 운영비 감축은 물론 임상 중단, 인력 구조조정 등 긴축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투자 위축에 따른 성장 동력 상실은 물론 버틸 여력이 부족한 바이오벤처는 폐업 위기에 놓이면서 적절한 정부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내년 경기침체에 대비한 구조조정을 현실화하고 있다. 가장 먼저 손을 대는 곳은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파이프라인이다. 지놈앤컴퍼니(314130)는 독일머크·화이자의 면역항암제 ‘바벤시오’와 병용투여한 고형암 임상 1·1b상에 대한 조기 종료를 발표했다. 서영진 지놈앤컴퍼니 대표는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등 어려운 외부환경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면밀히 검토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고 말했다. 동화약품도 정부 지원을 받아 개발 중이던 코로나19 치료제의 임상을 지난달 중단했다.



올 하반기에만 박셀바이오(323990), 메드팩토(235980), 크리스탈지노믹스(083790), 파멥신(208340) 등이 다른 임상에 들어갈 비용을 절감해 주력 파이프라인에 집중하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전임상 단계인 후보물질은 임상 진입이 무기한 연기됐다. 국내 임상수탁기관(CRO)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에 신규 임상 진입은 꿈도 못꾸는 상황"이라며 "특히 큰 비용이 드는 항암 임상의 경우에는 임상 의뢰가 사실상 사라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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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해 내년 사업계획에서 운용비를 줄이는 곳들도 있다. 최근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의 글로벌 판매 약진에도 불구하고 장기화된 적자 탈출을 위해 각 부서별 운용비용 절감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업계는 내년 사업계획에서 아예 투자 항목을 없애는 곳들도 있다. 내년에 전개될 금리, 환율은 물론 원자재 수급도 예측하기 힘들어지면서 비용을 확 줄였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내년 사업계획은 그야말로 보수적"이라며 "대기업이야 수급처나 판매처 다변화에 투입할 수 있지만 어느 것도 컨트롤할 수 없는 중소규모 회사들은 버티기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자금력이 취약한 바이오 벤처들은 인력 구조조정도 진행 중이다. 최근 대전 소재 항체기술 전문 A 기업은 초기에 투자받은 벤처캐피탈(VC)의 요구로 직원 40%를 감원하고 연구소에 있는 신약개발 장비까지 대거 처분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한 때 유망 바이오 기업으로 꼽혔는데 연구소 내 기기에 온통 빨간 딱지가 붙어있는 모습을 보니 한숨만 나왔다"고 전했다. 실제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의료·바이오 업계로 유입되는 신규 투자금은 올해 3분기까지 8979억 원으로 지난해 전체 1조 6770억 원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전체 투자 비중 역시 의료·바이오 업계는 2020년 27.8%→2021년 21.8%→2022년(1~3분기)16.3%로 급감했다. 통계청 기준 의료바이오 채용인력도 9, 10월 연속 감소했다.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는 “최근 몇 년간 투자가 늘어 신규 바이오기업은 늘어났지만 후속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기업은 줄어들다보니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현상”이라며 “업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승호 데일리파트너스 대표는 "모태펀드 예산이 줄어들어 안 그래도 위축된 바이오 투자에 성장 동력 상실이 우려된다"며 "안정적인 고용과 미래산업을 위해 다른 분야처럼 정책적 자금 지원과 기업공개(IPO) 확대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안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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