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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상관없이 위험자산 70% 제한…稅혜택도 일반계좌보다 낮아 [디폴트옵션이 깨운 퇴직연금]

<하>획일적 규제에 갇힌 연금 운용

해외 상장된 ETF 편입 제한 등

상품별 위험따라 투자한도 묶여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쏠림 초래

최근 5년 수익률 1.9% '쥐꼬리'

연금 수령기엔 세금부담 낮추고

다양한 테마상품 상장길 터줘야





직장인 A 씨는 미국에 상장된 상장지수펀드(ETF)를 주식 계좌에서 거래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다양한 테마·구조의 상품이 많이 상장돼 있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A 씨는 연금 계좌에서도 이러한 해외 상장 ETF를 거래하고 싶어 금융기관에 문의했지만 편입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퇴직연금이 포지티브(열거주의) 방식의 규제를 적용받으면서 편입 가능한 상품의 범위가 제한된 탓이다.



퇴직연금의 ‘쥐꼬리 수익률’을 일깨우기 위해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상품들이 이달 판매를 개시한 가운데 전반적인 퇴직연금 운용과 관련한 낡은 규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연금 계좌에서 투자할 수 있는 위험자산의 한도를 나이나 소득에 상관없이 최대 70%로 묶고 투자 가능 상품 역시 제한적이어서 연금 운용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가 가속하면서 연금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금융사들이 더 좋은 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새 판’을 짜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연금 계좌에 비과세 혜택을 제공해 중산층의 노후 소득 확충 및 저소득 계층의 납입 유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성호(앞줄 왼쪽부터) 하나은행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윤종원 기업은행장,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 홍원학 삼성화재 사장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퇴직연금사업자 간담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박성호(앞줄 왼쪽부터) 하나은행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윤종원 기업은행장,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회장, 홍원학 삼성화재 사장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퇴직연금사업자 간담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퇴직연금의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1.96%에 그쳤다. 지난 10년간 연환산 퇴직연금 수익률은 2.39%에 그친다. 반면 해외의 경우 20년 이상 수익률이 연평균 7%대에 달한다.



국내 퇴직연금이 수익률을 높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편입 가능한 상품의 범위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해외에 상장된 ETF를 담을 수 없는 것이 대표적이다. 상품별 편입 비중에 별다른 규제를 두지 않고 있는 해외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상품별 위험도를 따져 퇴직연금 내 투자 한도를 일일이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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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규제 체계는 원리금보장형 상품 쏠림으로 귀결되고 있다. 금투협 관계자는 “국내 퇴직연금제도는 원금 보장에 중점을 두고 다층적인 자산운용 규제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며 “투자 가능 대상을 원리금 보장형과 위험자산으로 분류하고 위험자산에 대해서는 적립금의 70%로 제한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총 적립액 295조 6000억 원 가운데 원리금보장형 투자 비율은 86.4%에 달했다. 원리금 중심 포트폴리오는 낮은 수익률로 연결된다.

세제상 일반 계좌와 연금 계좌 간 역차별이 발생하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국내 주식형 펀드와 ETF는 퇴직연금 계좌보다는 오히려 일반 계좌에서 투자하는 것이 세제상으로 더 유리하다. 예컨대 국내 주식형 펀드와 ETF를 적립식으로 꾸준하게 투자해 운용수익이 발생할 경우 앞으로 연금을 받을 때 운용수익에 대해 연금소득세(3.3~5.5%)를 납부해야 한다. 일반 계좌에서 투자할 경우에는 매매 차익에 대해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데 연금 계좌에서는 연금소득세를 내야 하는 것이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중도 인출이 불가능하고 장기간 돈이 묶이는 제약 조건이 있는데 운용할 수 있는 상품마저 제한적이어서 가입자의 노후 자산 증식에 대한 자발적 동기부여가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라며 “대중적 수요가 높은 자산을 퇴직연금 계좌에 적극 편입할 수 있도록 하고 일반 계좌에서 투자하는 것에 비해 강화된 세제 혜택이 부여돼야 한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세제 혜택이 중산층 이상에만 효과가 있어 저소득층에게는 실질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도 논쟁거리다. 은퇴 이후 연금 수령기에는 세금 부담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행 연금저축 계좌와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는 납입 당시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지만 연금 수령기에는 소득세를 부과하는 형태이다. 세액공제 혜택도 납입 가능 금액 중 일부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있다. 연간 납입 한도는 1800만 원이지만, 세액공제는 최대 900만 원까지만 가능하다.

세액공제 혜택은 소득이 일정 수준을 웃돌며 납부할 세금이 있는 가입자에게만 의미가 있는 제도이다. 저소득층 근로자에 있어서는 세액공제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한계점이 있다. 실제 전체 근로자의 약 37%가 면세점 이하의 소득으로 실질적인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중산층도 세액공제 혜택이 주어지는 금액 이상을 납부할 유인이 없어 노후 준비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태열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제적격 개인연금에 적용되는 세액공제는 중산층 이상에는 소득공제를 부분적으로 적용하는 효과를 줘 가입 유인을 약화시키고, 조세 부담이 적은 저소득층에는 실질적인 세제 혜택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연금저축 계좌와 IRP 계좌에 납입 가능한 연간 1800만 원에 대해 가입자가 세액공제 혜택과 비과세 혜택을 선택해 가입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다만 고소득자를 위한 혜택이 되지 않도록 소득 수준에 따라 납입 금액에 한도를 규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한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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