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교통사고 예방, 제도보다 문화가 더 중요하다

김태규 권익위 부위원장

교통사고 사망자 34.8%가 보행자

OECD 평균 19.3% 훌쩍 뛰어넘어

올 10월부터 '일시정지 의무' 강화

제도 더해 배려하는 안전의식 중요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권익위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권익위




지난해 12월 인천 부평구의 한 교차로에서 25톤 화물차가 우회전하는 과정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생을 치어 숨지게 하는 사고가 있었다. 올해 7월에도 평택시의 한 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보행 신호를 무시하고 주행하던 굴착기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생을 치어 숨지게 했다. 이렇듯 소중한 생명을 잃는 사고를 언론에서 자주 듣게 되는데 이를 접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심정이야 굳이 길게 형언할 필요가 없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는 총 2916명이며 이 중 보행 사망자가 1009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34.8%를 차지한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3분의 1 이상이 보행자였다는 것인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인 19.3%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또 이런 보행 사망자 중 약 23.8%에 해당하는 242명은 횡단보도에서 사고를 당했다. 길을 걸으며 수도 없이 마주치는 횡단보도이지만 보행자들이 아무 걱정 없이 안심하고 건널 수 있는 환경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정부는 횡단보도 보행자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올 10월 12일부터 횡단보도 앞에서 차량의 일시 정지 의무를 강화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기존 도로교통법 제27조 제1항은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에만 일시 정지해야 했으나 개정법은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거나 통행하려고 하는 때’에도 일시 정지하도록 의무를 강화했다. 이에 더해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없더라도 보행자의 통행 여부와 관계없이 반드시 일시 정지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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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횡단보도 위 사망 사고가 개선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회피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 어린이, 노인 등의 안전을 더욱 강화하려는 의도에서다. ‘횡단하려고 하는 때’라고 규정해 보행자의 의중을 살피라는 다소 모호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으나 교통안전 제도를 개선해 교통 약자의 희생을 줄이겠다는 강한 정책적 의지로 선해해 운용의 묘를 살릴 필요가 있다.

제도를 바꾸고 규제를 강화할 때 거기에는 행위 주체의 자율성에 대한 실망감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도로교통법 개정을 통해 규제를 강화한 것도 그간 교통 참여자들이 횡단보도 위 보행자 보호에 소홀했다는 실망감의 발로일 수 있다.

미국에서는 횡단보도 앞에 ‘STOP(멈춤)’ 표지가 있으면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가리지 않고 일단 정지해야 하고 교통 참여자들도 이를 잘 지키고 있다. 교통이라는 개념이 우리보다 빨리 자리 잡아 보행자 보호에 더 각별하다고 볼 수 있는데 어떻든 허투루 보기는 어려운 대목이다. 보행자가 차량의 움직임을 경계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보행자를 위한 횡단보도인데 오히려 그 앞에서 움찔거린다. 횡단보도에서도 차량 우선인 셈이다.

국민권익위원회 경찰옴부즈만이 지난 한 해 동안 처리한 교통 관련 민원은 1000여 건에 달한다. 횡단보도, 신호등, 과속 단속 카메라 등 교통 시설에 관한 민원, 교통법규 위반, 교통사고 조사에 대한 불만 등 내용도 다양하다. 이번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강화된 단속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운전자가 늘어날 것이고 바뀐 제도에 따라 엄격히 적용해달라는 민원도 많아질 것이다.

앞으로 정부는 법질서 확립과 안전 확보를 위해 강화된 규정에 따라 법 집행에 소홀함이 없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그런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를 배려하는 성숙한 교통 문화를 만들겠다는 교통 참여자의 인식이다. 이런 성숙한 교통 인식이 쌓여가면 결국 새로운 교통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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