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세수 최대폭 감소에 고심 깊은 내년 예산…‘건정재정’ ‘약자복지’ 투트랙

◆내년 예산안 656.9조 의결

☞18.2조 늘려 지출증가율 2.8%…20년來 최저 수준

보조금 등 23조 지출 구조조정

세수부족에 재정준칙 상한 웃돌아

취약층 복지는 7.5% 확대하기로

성장·경기대응 뒷받침 한계 지적도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4년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운용계획’과 관련된 사전 상세 브리핑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기재부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4년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운용계획’과 관련된 사전 상세 브리핑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기재부




정부가 29일 국무회의를 열어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2.8%(18조 2000억 원) 늘린 656조 9000억 원으로 확정했다. 총지출 통계를 작성한 2005년 예산안 이후 20년래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보조금 사업과 연구개발(R&D)에서 23조 원을 덜어내 2년 연속 20조 원 넘는 강력한 ‘긴축’을 이어갔다.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데는 폭증한 국가채무 탓이 컸다. 문재인 정부 기간에 늘어난 국가채무는 416조 원으로 이전 두 정부(이명박·박근혜)에서 증가한 것(351조 원)보다 많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00조 원 이상의 누적된 국가채무로 재정 상황은 여전히 어렵다”며 “예산 증가율을 0%로 동결하는 것까지 검토했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재정 정상화 노력으로 내년 국가채무는 201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61조 8000억 원 늘어나는 데 그친다. 지출 구조 조정으로 확보한 예산은 생계와 의료, 장애인·노인 지원 등 보건·복지·고용에 가장 많은 242조 900억 원이 쓰인다. 올해보다 7.5% 늘어난 수준으로 총지출 증가율(2.8%)을 크게 웃돈다. 추 부총리는 “민생을 고려해 약자 복지에 파격적으로 무게를 실었다”고 설명했다. 마약 및 묻지 마 범죄, 전세사기 등 민생 침해 범죄를 비롯해 수해 예방 등 안전 시스템 강화 예산에도 올해보다 6.1% 증가한 24조 3000억 원이 배정됐다.

다만 50조 원에 가까운 세수 부족은 재정 운용의 복병이다. 정부는 내년 국세수입도 33조 1000억 원 감소해 재정적자(관리재정수지)는 92조 원(3.9%)으로 올해의 58조 2000억 원(2.6%)보다 악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 여당이 재정준칙에서 고수한 관리재정수지 3%를 넘어서는 액수로 9월 초 세수가 재추계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 국세감면율은 법정한도(14.0%)를 넘겨 16.3%(77조 1000억 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감면율이 법정한도를 넘긴 것은 2008·2009·2019·2020년 네 차례였다.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는 “세수 추계의 정확성을 떨어뜨리는 부문별 감세보다 경제 선순환을 일으키는 법인세 감면 등 세수 확충에 유리한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날 의결된 내년 예산안은 다음 달 1일 국회에 제출된다.



정부 씀씀이 바짝 줄인다지만…
세수 급감에 나랏빚 1200조 눈앞


한국 경제에 낀 먹구름이 내년도 예산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정부는 내년도 국세수입으로 367조 4000억 원을 전망했는데 올해 세입예산(400조 5000억 원)은 물론 지난해(395조 9393억 원)보다도 뒷걸음질 친 수치다.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이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음에도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이 더 악화된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반도체가 불황의 긴 터널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만큼 내년도 세수가 예측치보다 더 적게 걷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내년에 77조 원이 넘는 세금을 깎아주며 감세 드라이브를 이어갈 예정이다. 국세 감면율 역시 16.3%로 법정 한도인 14.0%를 2.3%포인트 상회한다. 세금을 깎아주며 투자를 유도하고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도지만 재정 건전성을 위해 허리띠를 강하게 졸라매는 만큼 세수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29일 기획재정부는 2024년도 예산안과 함께 발표한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내년도 총수입을 올해 625조 7000억 원보다 13조 6000억 원 감소한 612조 1000억 원으로 잡았다. 세외수입과 기금수입이 각각 27조 9000억 원, 216조 8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2조 9000억 원, 16조 5000억 원씩 늘어나지만 수입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국세수입이 33조 1000억 원이나 줄어들어서다.

구체적으로 보면 내년도 법인세수는 77조 6649억 원으로 올해 104조 9969억 원에서 26.0%(27조 3320억 원)나 감축될 것으로 추산됐다. 중국 경제 불안과 반도체 경기 회복 부진, 이에 따른 더딘 수출 개선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올해 기업 실적이 크게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과 같은 맥락이다.

반도체 부진에 내년 국세수입 367조
국가채무 61조 늘어 1196조 예상


주식·부동산 등 자산 시장 불황에 양도소득세가 올해 세입예산보다 무려 24.6%나 감소될 것으로 예측되면서 소득세 역시 6조 원 이상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 내수 침체에 부가가치세와 관세 역시 각각 1조 8000억 원씩 줄어든다. 상속증여세와 종합부동산세 수입도 큰 폭으로 쪼그라든다. 감소율은 14.4%, 28.1%로 올 7월 내놓은 감세 정책의 영향을 받았다. 정부는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며 앞서 혼인신고 전후 각 2년간 이뤄진 결혼 자금 증여에 대한 공제 한도를 5000만 원에서 1억 5000만 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부족한 재정은 고스란히 나랏빚으로 돌아온다. 고강도 긴축에도 수입인 세수가 크게 줄어들며 국가채무가 올해 1134조 4000억 원에서 내년 1196조 2000억 원으로 61조 8000억 원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역시 50.4%에서 51.0%로 소폭 상승한다. 국가채무는 2025년 1273조 3000억 원, 2026년 1346조 7000억 원, 2027년 1417조 6000억 원으로 계속해서 불어난다.

정부는 내년도 세수 펑크와 대규모 적자를 감내하는 대신 2027년까지 중기 총지출 증가율을 3.6%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총지출 증가율을 경상 성장률(4.4%), 총수입 증가율(3.7%)보다 낮게 유지하며 2027년 관리재정수지와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각각 -2.5%, 53.0%에서 묶겠다는 것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건전재정 측면에서 총지출 증가율을 0%대로 동결하는 방안까지 검토했지만 민생경제 상황, 국민 안전을 위한 재정지출 소요 등을 고려해 고심 끝에 내년 큰 폭의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감당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당장 올해 대규모 세수 펑크가 예고된 상황에서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정부가 공언한 건전재정 기조는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연말까지 지난해와 똑같은 수준의 세금을 걷는다고 해도 올해 세수는 세입예산(400조 5000억 원) 대비 44조 원 이상 부족하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기재부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기재부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기재부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기재부


정부의 감세 드라이브는 세수 부족에 대한 우려를 더 키운다. 상속증여세·종부세 감면뿐 아니라 정부가 깎아주는 세금을 뜻하는 조세지출도 크게 늘어난다. 내년도 예산안과 함께 국회에 제출되는 2024년 조세지출예산서에 따르면 내년도 국세 감면액은 77조 1144억 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관측된다. 국세 감면액과 국세수입을 더한 금액에서 국세 감면액이 차지하는 비율인 국세 감면율은 16.3%(잠정)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예정이다. 법정 한도인 14.0%보다 2.3%포인트 높다. 법정 한도는 직전 3개년 평균 감면율에 0.5%포인트를 더해 계산된다. 국세 감면율이 법정 한도를 넘긴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2009년과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던 2019·2020년 네 차례뿐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세수입 총액이 워낙 많이 줄다 보니 감면율 기여도가 80% 이상”이라고 전했다.

秋 "민생경제 고려 큰폭 적자 감내"
국세감면액 77조로 사상 최고 전망
당분간 세수부족 지속…긴축 불가피


전문가들은 당분간 세수 부족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허리띠를 더 졸라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직 물가가 잡히지 않았고 중국 등의 상황을 고려하면 세수 여건이 내년도에 더 악화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도 “당분간 세수 부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긴축 기조는 불가피하다”며 “긴축과 함께 세입 결손이 심각한 만큼 공정시장가액비율 80% 환원 등 세제 정상화를 위한 세금 정책의 연착륙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3개월 이상 부모 '맞돌봄' 땐 육아휴직 1년→1년 6개월


내년 하반기부터 육아휴직 가능 기간이 1년에서 1년 6개월로 늘어난다. 정부는 부모 모두 3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쓰는 경우에만 6개월을 추가해주기로 했다. 부모 중 어느 한쪽만 육아휴직을 쓰는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 ‘맞돌봄’을 전제로 달았다.

노인 일자리 수당은 월 최대 4만 원 증가하고 기초연금은 월 32만 3000원에서 33만 4000원으로 오른다.

29일 기획재정부는 ‘2024년 예산안’에서 저출산 극복을 위해 내년에 17조 5900억 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올해(14조 394억 원)보다 25.3% 늘었다. 육아휴직을 확대하는 사업이 대표적이다. 부모 모두 3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사용 가능 기간이 1년에서 1년 6개월(자녀 연령 8세 이하, 급여 상한액 150만 원)로 늘어난다. 육아휴직 기간이 연장된 것은 남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게 된 1995년 이후 처음이다. 정부는 내년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기존의 육아휴직 사용자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영아기 맞돌봄 특례 기간과 최대 급여액도 늘어난다. 현재는 생후 12개월 이하 아이 돌봄을 위해 부모 모두 육아휴직을 쓸 경우 최대 3개월간 급여를 월 최대 300만 원씩 주는데 이 기간을 6개월로, 급여액은 최대 450만 원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특례가 적용되는 영아 연령 역시 생후 18개월 이하로 상향된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영아기 맞돌봄 특례 도입으로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이 약 30%까지 증가했다”며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을 더욱 독려하기 위해 사업을 키웠다”고 말했다. 만 0세 아동 양육 가구에 지급되는 부모급여는 월 7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만 1세는 월 35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인상된다.

신생아 출산 가구(출산 2년 이내)의 주거 지원 사업 또한 확대된다. 신생아 출산 시 디딤돌(구매)·버팀목(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는 소득 요건을 연 7000만 원 이하에서 1억 3000억 원으로 대폭 완화하는 것이다. 주택 특별 분양과 임대에 신생아 출산 가구 우선 유형을 신설한다. 이렇게 되면 미혼 청년, 비출산 신혼부부와 경쟁하지 않게 돼 주택을 공급받기가 한층 수월해진다.

저소득층 복지는 더욱 두터워진다. 내년 생계급여(4인 가구 기준 최대 지급액)는 올해보다 21만 3283원 많은 183만 3572원까지 늘어난다.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복지 제도의 기준이 되는 기준중위소득(국민 가구소득 중간값)을 30%에서 32%로 상향 조정한 데 따른 것이다. 생계급여는 가구 소득과 기준중위소득의 차액을 정부가 현금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사회복지 예산 증가율은 총지출 증가율(2.8%)의 3배 이상인 8.7%”라며 “구조 조정한 재원을 사회복지, 중위소득 조정 등에 투입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노인 일자리는 88만여 개에서 103만 개로 증가한다. 정부 관계자는 “전체 노인의 10%가량이 노인 일자리를 희망한다”며 “내년 노인 인구가 약 1000만 명인데 원하는 사람은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100만 개 이상으로 늘렸다”고 말했다. 공익형 일자리의 경우 수당이 월 27만 원에서 29만 원으로, 사회 서비스형은 월 59만 4000원에서 63만 4000원으로 오른다.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월 32만 3000원에서 33만 4000원으로 인상된다.

청년 지원책도 눈에 띈다. 대학생에게 1000원으로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천원의 아침밥’ 사업 대상 규모가 연 23만 4000명에서 39만 7000명으로 확대된다. 자립 준비 청년(만 18세가 돼 양육 시설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청년)에게 5년간 지급되는 자립수당은 월 40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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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의 경영 지원을 위해 5000억 원을 투입해 고리 대출을 저리 대출로 대환해주는 사업을 신설한다. 1인당 지원 한도는 5000만 원이며 금리는 소상공인 대상 정책자금의 평균금리인 4%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종=송종호 기자·세종=우영탁 기자·세종=곽윤아 기자·세종=이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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