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S리포트-비극의 공장 난개발]20년간 규제 풀리자 공장 우후죽순...지자체별 총량제 도입해야

■난개발 부추긴 원인과 대책은

영세공장 땅값 비싼 산단 대신 싼 계획관리지역 몰려

증설 허용하되 신규입주 막아 공장 확산 차단에 초점을

비도심 황폐화시키는 대도시 중심 개발계획도 바꿔야

경남 김해시 산동면 매리의 산골짜기를 수많은 공장들이 중턱까지 점령했다. 싼 부지를 찾아 영세 소기업들이 대거 진입하면서 숲보다 건물이 더 많은 ‘공장 숲’이 돼버렸다./김해=송영규 선임기자경남 김해시 산동면 매리의 산골짜기를 수많은 공장들이 중턱까지 점령했다. 싼 부지를 찾아 영세 소기업들이 대거 진입하면서 숲보다 건물이 더 많은 ‘공장 숲’이 돼버렸다./김해=송영규 선임기자




네이버 항공뷰를 통해 본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의 모습. 파랑 또는 오렌지색의 지붕을 한 공장들이 농지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사진제공=네이버네이버 항공뷰를 통해 본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의 모습. 파랑 또는 오렌지색의 지붕을 한 공장들이 농지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사진제공=네이버


경남 김해시 산동면 매리는 입구에서 보면 그저 평범한 산골 마을에 불과하다. 처음에는 공장들이 드문드문 보이지만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면서 급격히 늘어나 급기야는 산 중턱까지 점령했다. 동네 입구부터 본 것까지 합하면 족히 300~400개는 넘어 보였다. 위성사진을 보니 마치 뱀이 산을 파고들어간 형세였다. 매리 소감부락에 사는 강숙자(78)씨는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이 동네는 산 깊고 물 맑기로 유명한 청정지역이었다”며 “하지만 어느 순간 야금야금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나무보다 공장이 차지하는 면적이 많은 지역이 됐다”고 말했다.

이곳이 공장 난개발 지역으로 변한 것은 개발이 가능한 지역임에도 땅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이다. 최근 매물로 나온 창고 부지의 가격은 3.3㎡당 50만~70만원 선. 차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신천일반산업단지의 분양가가 ㎡당 163만~165만원인 것과 비교할 때 절반에도 못 미친다. 상대적으로 비싼 입주비용 탓에 산단에 들어가지 못하는 소기업 또는 영세기업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입지다. 국책연구원 관계자가 “계획관리지역 내 저렴한 땅들이 난개발을 부추기고 있다”며 “철저한 자본의 논리가 부작용을 초래하는 현장”이라고 평가한 이유다.


산 대신 논이나 밭을 파고들어간 공장도 있다.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의 Y금속은 지금은 폐쇄명령을 받았지만 얼마 전까지 논 한가운데서 주물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계획관리지역 내 개별입지에 위치한 이러한 공장 대부분은 영세사업장이다. 실제로 국내 3대 공장 난개발 지역으로 꼽히는 화성과 김해·김포의 경우 종업원 5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의 70%를 넘는고 10인 미만은 10곳 중 9곳에 달한다. 자본 여력이 없으니 오염물질 정화장치 같은 환경오염 방지시설을 설치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김포시 송마리의 한 주물공장 대표는 “집진기·폐수정화조 설치 등 법에 있는 것을 모두 지키려면 산업단지에 들어가는 것이 낫지 누가 힘들게 산 깎고 논을 메워 공장을 조성하려 하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녹지 개발 확대, 환경규제·경사도 완화 등 지난 20여년간 진행된 규제 완화는 난개발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정부는 1993년 준농림지역 내 소규모 공장 및 음식점 설립을 허용한 후 난개발 문제가 발생하자 체계적인 관리를 하겠다며 관리지역으로 명칭을 바꾸고 계획·생산·보전관리 3개 지역으로 나눴다. 여기에는 지방자치단체가 환경문제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이후 지역 산업 활성화에 무게중심이 실리며 등록 기준, 특정대기유해물질 규제 완화 등의 조치가 잇따라 취해지면서 이러한 전제가 기초부터 흔들렸다. 규제를 피해 대도시를 떠난 소기업들이 계획관리지역으로 몰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이영재 환경정책평가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법에서는 규제를 완화하면서 지자체가 조례를 통해 환경문제를 통제할 수 있는 입지가 좁아졌다”며 “계획관리는 철저히 실패한 정책”이라고 단언했다.


물론 지자체와 정부가 난개발에 대해 아예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정 지역에 계획관리지역 내 개별공장들이 입주할 경우 용적률을 높여주는 ‘준산업단지’ 제도나 일부 지역에 대한 기반시설과 건축물 배치, 환경규제 등의 권고를 받아들일 경우 건폐율을 완화하거나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생략하는 등의 혜택을 부여하는 ‘성장관리방안’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강제력이 없고 기업들에 돌아가는 혜택도 별로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실효성이 낮은 것으로 판명되면서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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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난개발을 막기 위해 공장들을 모두 없애는 것은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지역소비 위축과 일자리 감소 등의 부작용만 커질 수 있다. 그보다는 난개발이 더 이상 확산하지 못하도록 방지책을 세우는 게 우선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강호제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난개발은 공장을 퇴출한다거나 무조건 규제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전제하고 “지금은 주거지역에 공장이 더 들어서지 못하도록 하는 등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며 이를 위해 지자체별 공장총량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주거와 공장의 혼재로 초래되는 주민 피해를 줄이는 방안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영재 부연구위원은 “주거·공장 혼재 지역을 대상으로 주거만 할 수 있는 ‘자연취락지구’를 설정하고 해당 지역에서 사업체의 증설은 허용하되 신규 입주나 용도변경은 금지하는 것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필요하다면 주민들에게 환경감시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장기적으로는 대도시 중심의 도시개발계획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도심을 도시 낙후 산업의 배출구로 볼 게 아니라 국토의 건강한 균형발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준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현재의 비도심 개발계획은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고도성장 시기에나 가능한 방법”이라며 “제도만 찔끔찔끔 바꿔서 해결하려 할 게 아니라 토지를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기본 철학을 분명하게 선언한 후 계획관리지역에 들어올 수 없는 기업을 분명히 적시하고 대도시처럼 지구단위계획을 세밀하게 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탐사기획팀

송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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