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관련해 “그것들은 단거리(미사일)이고 나는 전혀 신뢰 위반(breach of trust)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사체를 탄도미사일이 아닌 단거리미사일로 규정하며 의도적으로 북한의 도발을 축소하고 나서면서 식량지원을 통해 북미대화를 재개하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구상에 힘이 실릴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언젠가는 그렇게(신뢰 위반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편한 심기를 밝힌 지 하루 만에 북한의 도발을 수위 조절한 것은 국내 정치적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재선을 정책의 최우선순위에 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 강도가 높아지면서 정적들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상원 외교위 산하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에드 마키(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은 전날 트위터에서 “최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김(정은 위원장)이 자체 부과한 시험 금지에는 위배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하고 한국과 일본을 위협한다”며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유예를 외교적 업적으로 과시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물밑으로 북미 채널을 동원해 북한에 경고할 가능성은 있지만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정치적 부담이 클 것”이라며 “미 의회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해 크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북한을 비난하는 것은 자신의 대북 비핵화 접근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고 진단했다.
수세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을 축소하고 나서면서 발사체를 탄도미사일이 아닌 단거리미사일로 규정하며 대북 식량지원을 추진 중인 문 대통령의 숨통도 트이게 됐다. 적 지상표적에 대한 정밀타격이 가능한 탄도미사일이 아닌 단순 미사일은 유도기능이 없어 위협적인 도발로 인식되지 않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단거리미사일 규정은 의미가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 의회의 반발을 의식해 문 대통령의 식량지원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방관자적 태도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박 교수는 “미국이 대북 식량지원을 추진하면 미 의회 내에서 굉장히 강력한 반발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와 선을 그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다수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이 식량지원만으로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복귀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북한은 문 대통령의 식량지원 검토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북한 대남선전매체 ‘메아리’는 12일 “주변 환경에 얽매여 (남북)선언 이행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뒷전에 밀어놓고 그 무슨 ‘계획’이니 ‘인도주의’니 하며 공허한 말치레와 생색내기나 하는 것은 북남관계의 새 역사를 써나가려는 겨레의 지향과 염원에 대한 우롱”이라고 비난했다. 이는 북한이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재개 등 경협이 아닌 식량지원만으로는 비핵화 조치에 나설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북한 선전매체 ‘조선의 오늘’도 이날 “개성공업지구 재가동 문제는 미국의 승인을 받을 문제가 아니다”라며 “(남측이) 승인이니, 제재의 틀이니 하면서 외세에 협력사업에 대한 간섭의 명분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