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내년 104조 원리금 상환 폭탄까지..."분식회계라도 하고픈 심정"

[中企 신용강등 쓰나미 온다]

車부품 이익-24.3%·통신장비-40.2% 등 줄줄이↓

신용하락 현실화 땐 채권 발행 힘들고 비용 부담 커져

공공입찰제 보완·회사채 공공 인수 등도 검토해야

코로나19로 일감이 급격히 줄어든 경남 양산 어곡일반산업단지의 한 섬유 제조업체가 공장설비를 25%만 가동 중인 가운데 16일 한 직원이 혼자 출근해 작업을 하고 있다.  /이재명기자코로나19로 일감이 급격히 줄어든 경남 양산 어곡일반산업단지의 한 섬유 제조업체가 공장설비를 25%만 가동 중인 가운데 16일 한 직원이 혼자 출근해 작업을 하고 있다. /이재명기자



연 매출 120억원 정도의 이동 급식업체 이모 사장은 요즘 밤잠을 설친다. 회계연도 결산이 한 달 보름여 남은 시점인데 올해 실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고작 지난해의 20~30% 수준에 그치는 탓이다. 문제는 내년이다. 이 사장은 16일 “현재 신용등급이 BB-인데 (내년 4월 새로 신용등급 평가를 받으면) C등급 이하로 떨어져 손쓸 수가 없을 것”이라며 “보유 중인 대출은 다 회수되고 추가 대출은 당연히 안 될 테고 그나마 회복 디딤돌이 될 수 있는 공공입찰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푸념했다. 그는 “코로나19 영향 업종은 다른 기준으로 신용등급을 매기든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고 읍소했다.

내년이 두렵기는 전자 부품업체 김모 사장도 마찬가지다. 남은 기간 최대한 매출을 늘려도 적자가 예상돼 신용등급 하락이 불가피하다. 이미 내년 회사 운영비에 충당할 요량으로 현 신용등급으로 가능한 부채를 최대치로 끌어모은 데 이어 살던 집도 처분했다. 그래도 걱정은 가시지 않는다. 김 사장은 “내년 4월부터는 원리금 상환 유예가 끝나 30억원도 갚아야 한다”며 “자금 융통을 위해 분식회계라도 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연말을 코앞에 둔 실적 악화 중소·중견기업이 연쇄적인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고 있다. 올해 최악의 기업 실적이 신용등급 하락을 불러 가뜩이나 자금난에 신음하는 기업을 유동성 위기로 내몰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채권 발행이 어려워지고 용케 발행해도 고금리에 비용부담이 커져 기업 체질개선이 어렵다”며 “정부로서는 생존 가능성이 큰 기업에 대한 금리 우대, 또 회사채 물량 일부를 공공에서 어느 정도 소화할지 등 세부 지원안을 잘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용등급 강등에 104조원 원리금 상환 폭탄 겹쳐

중소·중견업체의 실적 부진은 상장사 업종별 올해 이익 전망치를 보면 확연해진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8개 업종 중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축소된 업종은 14개(29.1%)에 이른다. 디스플레이부품 등 적자 업종 4개를 합치면 총 18개(37.5%)가 요주의 업종이다. 10개 중 4개에 육박하는 업종의 내년도 유동성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의미다.


특히 자동차부품의 경우 지난해 대비 24.3% 이익이 감소한 것을 비롯해 섬유(-28.4%), 도소매(-39.7%), 통신장비(-40.2%) 등 중소업체가 포진한 업종은 실적이 더 나쁘다. 상대적으로 견실한 상장사가 이 정도니 비상장사 실정은 악화일로에 다름없다. 실제 사업해서 번 돈으로 채무의 이자조차 못 갚는 이자보상비율이 3년 연속 100% 미만인 한계기업 수는 올해 5,033곳(한국은행 기준)으로 전년보다 1,558곳이나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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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실적 악화는 내년 4월 신용등급 평가에서 등급 강등→자금난 심화로 이어진다. 기업들은 이미 유동성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빚을 줄이기 위해 부동산 처분에 나서는 곳이 있는가 하면 실적 방어를 위해 연말 수주 총력전에 돌입한 곳도 수두룩하다. 한 반도체 장비 업체 대표는 “최근 인천 남동공단 공장을 60억원에 매각했다”며 “매출이 지난해보다 20%가량 줄었지만 그래도 빚을 일부 갚아 신용등급 유지는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업체마다 실적 ‘마사지’를 위해 연내 수주를 최대한 잡아놓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지만 코로나19 재확산에 원화 강세마저 겹쳐 이도 쉽지 않다”고 전했다.

내년 4월 104조원에 이르는 금융권의 원리금 상환 폭탄도 그로기 상태의 기업에 강펀치가 될 수 있다. 공교롭게 신용등급 평가가 이뤄지는 시기와 겹쳐 어려움이 배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금속 업체 임원은 “지방 산단에 공장 매물이 쌓이는 데서 보듯 부동산 처분도 녹록하지 않다”며 “적지 않은 기업들이 분식회계 유혹에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공입찰제 보완, 회사채 공공 인수도 검토해야

중소기업계는 ‘금융기관의 신용등급 평가기준을 한시적으로 완화해달라’는 요구까지 들고 나왔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중소기업이라도 주주구성이나 실적 등이 글로벌화돼 있는 마당에 평가기준에 손을 대면 자칫 ‘돈맥경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며 “이보다는 거시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갈 경우 신용등급이 떨어져도 어느 선까지는 지원을 계속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정교한 플랜을 마련하는 게 낫다”고 당부했다.

공공입찰제 보완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본부장은 “공공입찰 신청요건 중 신용등급 제한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사실상 0.1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만큼 일시적 실적 하락으로 신용등급이 내려간 기업에는 불이익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는 “좀비 기업 처리 방향부터 정해야 한다”며 “원리금 상환 방식, 회사채 인수 방안 등에 대한 전략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훈·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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