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를 위한 사실상 마지막 관문인 영국과 유럽연합(EU) 간 미래 관계 협상이 타결됐다. 이에 따라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이후 이어져 온 47년간의 동거생활에도 마침표를 찍게 됐다. 미래관계 협상을 타결하면서 양측은 내년 1월부터 여러 부문에서 관계에 변화를 맞게 된다. 협상 결렬로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최악의 ‘노딜 브렉시트’ 상황은 막을 수 있게 됐지만,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과 EU는 24일(현지시간) 미래관계 협상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3월 미래관계 협상에 착수한 지 9개월 만이자, 연말까지인 전환(이행)기간 종료를 일주일여 앞둔 시점에서 나왔다.
영국 정부는 이날 내놓은 성명에서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에 약속했던 것을 이번 합의로 완수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국은 다시 재정과 국경, 법, 통상, 수역의 통제권을 회복했다”고 강조했다.
성명은 “이번 합의는 영국 전역의 가정과 기업에 환상적인 뉴스”라며 “우리는 처음으로 EU와 무관세와 무쿼터에 기반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서로에게 있어 가장 큰 양자협정”이라고 설명했다.
2019년 기준 양자 간 교역규모는 6,680억 파운드(약 1,003조원)에 달했다.
성명은 “(이번 합의는) 영국이 2021년 1월 1일부터 완전한 정치적·경제적 독립성을 갖는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브렉시트를 완수했다. 이제 독립된 교역국가로 전 세계의 파트너들과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환상적인 기회를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우리는 유럽의 친구이자 동맹, 지지자, 정말로 최고의 시장이 될 것”이라며 “비록 EU를 떠났지만 영국은 문화적으로, 감정적으로, 역사적으로, 전략적으로,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유럽과 결부돼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합의 뒤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마침내 합의를 이뤄냈다”면서 “길고 구불구불한 길이었지만, 우리는 그 끝에서 좋은 합의를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공정하고, 균형잡힌 합의”라면서 “양측 모두에 적절하고 책임있는 합의”라고 평가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나는 이 합의가 영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믿는다”면서 “이것은 오랜 친구와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단단한 토대를 놓을 것이다. 이는 마침내 우리가 브렉시트를 뒤에 남겨둘 수 있으며, 유럽이 앞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라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영국과 EU가 미래관계 협상을 타결하면서 합의안은 이제 양측 의회 비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영국 의회는 현재 크리스마스 휴회기에 들어갔지만, 정부는 오는 30일 다시 소집해 합의안 승인을 추진할 예정이다.
집권 보수당이 과반 기준을 훨씬 넘는 의석을 확보한데다 제1야당인 노동당 역시 ‘노 딜’ 보다 낫다며 합의안을 지지하기로 해 별다른 어려움 없이 통과가 예상된다.
합의안은 EU 회원국과 유럽의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이들은 즉각 검토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EU 27개 회원국 대사들은 크리스마스 휴일인 25일 회동해 합의안 검토를 시작할 예정이다. 회원국들이 합의안을 분석하고 임시 이행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데는 이삼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영국은 지난 1월 31일 EU를 탈퇴한 후 브렉시트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EU 측과 올해 말까지를 시한으로 정하고 무역협정을 포함한 미래 관계 설정에 대한 협상을 벌여왔다. 그러나 3월 협상을 시작한 후 9개월이 넘도록 공식 협상만 아홉 차례 벌였지만 양측은 어업 등 쟁점 분야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협상 분위기가 바뀐 것은 영국이 이견을 보였던 어업 문제와 관련해 EU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어업과 관련해 영국은 자국 수역 내 EU 어획량 쿼터를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35% 삭감하는 방안을 제안했지만 EU는 여전히 6년간 25%가량 삭감을 주장해왔다. 블룸버그통신은 “영국이 EU의 25% 삭감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비준 절차가 마무리돼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내년 1월부터 유럽에서 90일 이상 체류를 원하는 영국인은 비자를 받아야 한다. 의사나 건축가, 약사 등 전문직 자격 자동 인정이 적용되지 않아 유럽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영국 전문직은 해당국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현재 무료인 휴대전화 로밍 요금이 인상될 수도 있다.
안보 측면에서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영국은 유럽사법협력기구(Eurojust·유로저스트), 유럽경찰청(유로폴·Europol) 회원국이 더이상 아니게 된다.
다만 양측 경찰과 사법 당국 간 협력하에 영국과 이들 기구 사이의 협력은 계속된다. 영국은 실종이나 도난에 대한 경찰 경보를 공유하는 EU 지역의 솅겐정보시스템에 계속 접근할 수 있다.
‘승객 명단 기록’(Passenger Name Records)을 통해 항공기나 여객선으로 이동하는 이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테러 대응, 용의자 지문 및 DNA, 자동차 번호판 등의 데이터베이스를 공동으로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상품과 달리 서비스, 특히 영국이 강점을 가진 금융서비스는 이번 합의안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다뤄지지 않았다. 양측은 그동안 무역협정 협상과 별개로 금융시장에 관한 별도 협정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단 금융서비스와 관련해서 한 국가에서 승인을 받으면 EU 회원국을 상대로 자유롭게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는 ‘금융 패스포트’ 방식은 앞으로 불가능해진다.
전환 기간 종료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양측이 합의에 이르면서 영국의 EU 탈퇴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영국에 미칠 경제적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라는 지적은 여러 차례 제기됐다. 실제 앤드루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BOE) 총재는 지난달 하원 재무위원회에 출석해 무역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데 따른 장기적 영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보다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미래관계 협상 타결이 불확실성을 제거해 단기적으로 영국 경제에 상승효과로 작용하겠지만 영국을 더 가난하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도 나온다..
CNN방송은 영국이 내년부터 EU와 완전히 결별하게 되면 단일시장을 포기함으로써 기업의 각종 비용이 늘게 돼 소비자물가가 올라가고 수출도 주는 데다가 실업문제도 심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CNN은 영국과 EU가 타결한 자유무역협정이 영국이 EU를 상대로 적자를 보이는 상품교역 만을 다룰 뿐, 흑자를 보이는 금융산업 등 서비스 부문은 포함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상품과 달리 서비스, 특히 영국이 강세를 보이는 금융서비스는 이번 합의안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다뤄지지 않았다. 영국과 EU는 그동안 무역협정 협상과 별개로 금융시장에 관한 별도 협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