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미래로’.
팬클럽 회원들이 플래카드에 새긴 문구를 눈에 담고 최혜진(23·롯데·사진)은 수줍은 미소와 함께 인천공항 출국장으로 향했다. 지난 11일 떠난 최혜진은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PGA 웨스트 골프장에서 샷 감각을 다듬고 있다. 오는 27일 플로리다에서 열릴 게인브리지 대회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신인으로 맞는 첫 대회다.
최혜진에게 LPGA 투어는 낯선 무대가 아니다. 고교 시절에 이미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2승을 올릴 정도였으니 미국 대회 초청 기회도 많았다. “중2 때인 2013년을 시작으로 열 몇 개는 나가본 것 같다”는 설명. 2017년 최고 메이저 대회인 US 여자 오픈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관심을 받으며 준우승했고 2020년 빅 오픈에서는 4차 연장 끝에 역시 준우승했다. 우승자에게 주는 LPGA 직행 티켓은 얻지 못했지만 최혜진은 지난달 수능 격인 Q시리즈를 공동 8위로 통과해 미국행 티켓을 받았다.
출국 전 만난 최혜진은 적응이 빠를 것 같다는 얘기에 “초청 선수로 한 번씩 나갈 때랑은 다를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회 하나 뛰고 들어오고 그런 식이었으니 긴 투어 생활이랑은 많이 다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늘 잘 먹고 잘 자는 편이라 그런 부분은 걱정 없겠지만요.”
8라운드 144홀의 마라톤 시험이 쉽지는 않았다. 대회 직전에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경기 전후로 매일 부상 치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최혜진은 KLPGA 투어 통산 10승의 경험을 살려 무난하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첫 주(1~4라운드)에 생각보다 잘 풀리니 욕심이 생겨서 그런지 2주 차(5~8라운드) 때는 실수가 많이 나왔지만 끝나갈수록 다시 잘 잡고 만족스럽게 마무리했다”는 총평. “힘들다는 느낌보다 ‘정말 잘하고 싶다’는 느낌으로 치렀다”고 했다.
지난해 KLPGA 투어에서 최혜진은 우승 없이 상금 랭킹 11위를 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시즌 1승도 못한 것은 처음이었다. 위기라고 볼 수 있는 시점에 낯설고 더 어려울 수 있는 환경에서 새 출발하는 것이다. 최혜진은 “(2021년은) 솔직히 너무 아쉬웠지만 아무리 잘해도 아쉬움은 항상 남는 거니까 발전의 디딤돌이 될 수 있는 한 해였다고 받아들이려 한다”고 했다.
프로 데뷔 5년 차가 된 데 대해서는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지금까지 해온 게 만족스럽고 잘한 것 같지만 아직은 부족한 게 많다고 느낄 때가 더 많다”며 역시 발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동과 기술에 있어서는 발전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여유를 추구할 생각이다. “한국 투어에 비해 워낙 이동 거리가 길고 스케줄도 빡빡하다 보니 어떻게 될지 걱정은 있죠. 빨리 적응해서 골프로 스트레스 받는 생활을 하기보다는 즐기면서 미국 생활을 잘 해나가고 싶어요.”
미국에서는 가족 없이 한국인 매니저, 외국인 캐디와 투어를 다니기로 했다. 과거 김영, 캔디 쿵(대만)의 골프 백을 멨던 20년 경력의 베테랑 캐디가 최혜진과 함께한다. 가족들과는 새해 첫 해돋이를 함께 보며 추억을 쌓았다. 최혜진은 “가족이 곁에 있으면 의지할 부분이 많아 편하겠지만 혼자 가면 더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 열심히 할 것도 같다. 긍정적인 면이 클 것”이라고 했다.
새로 생길 팬들에게 “이것저것 재기보다 믿고 자신 있게 공략하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보여드리고 싶다”는 최혜진에게 초등학생 때 적었던 메모 얘기를 꺼냈다. 최혜진은 ‘국가대표, LPGA 진출, 세계 랭킹 1위, 올림픽 금메달’의 네 가지 목표를 종이에 적고는 방 곳곳에 붙여두고 꿈을 키웠다. 첫 두 가지는 이뤘고 남은 두 가지인 세계 1위와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큰물에 뛰어들었다. “LPGA 진출로 목표에 더 가까워질 기회를 잡았어요. 어릴 때부터 항상 잊지 않고 가지고 온 목표니까 이룰 때까지 해야죠. 메모요? 고향 김해 집에 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