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기·벤처

[단독]"일감 없고 임금만 뛰어"…영세공장 줄폐업, 4년간 4.3배 늘었다

['제조업 심장' 산단이 멈춘다]

◆수출·생산·고용 '트리플 악화'

문정부 첫해 175곳서 작년 749곳으로

리모델링은 3년간 30여곳도 안돼

정부, 제조업 구조조정 대응 뒷짐

창원·군산 등 '도시 몰락' 가속화

50人 미만 "더이상 못버텨" 절규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시화공단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공장 책임자가 텅빈 공장을 정리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후순위에 밀리면서 국가산단이 성장 동력을 잃고 있다. 이호재기자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시화공단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공장 책임자가 텅빈 공장을 정리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후순위에 밀리면서 국가산단이 성장 동력을 잃고 있다. 이호재기자





경기도 시화국가산업단지에 자리한 열처리 업체 A사의 우편함에는 최근 먼지로 뒤덮인 우편물이 쌓이고 있다. 공장 문이 굳게 닫힌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인근 금형 업체 B사의 상황도 비슷하다. 공장 문은 열려 있지만 내부는 어둡다. 공장 가동이 한창일 오후 3시지만 근로자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계 설비가 돌아가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두 회사 모두 공장을 매물로 내놓았지만 몇 달째 매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장 매물 전문 부동산 중개 업체 C 대표는 “경기 침체로 일감이 줄어든 데다 지난해의 경우 최저임금이 크게 인상되면서 버티지 못한 사장들이 공장 문을 닫고 있어 매물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공장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 자체가 크게 줄었다”고 전했다.

노후 국가산단 소재 중소기업에 대한 신산업 제조업 전환 투자와 공장 스마트화를 위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미흡한 이유로 지난해 문을 닫은 공장은 749곳으로 문재인 정부 기간 최고치를 찍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이유도 있지만 정부가 주요 국가산단에서 인공지능(AI), 로봇, 메타버스 등 신산업 제조 분야에 적극 대응해야 하는 적절한 타이밍을 놓친 채 뒷짐을 진 탓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창원·군산 등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국가산단이 자리한 지역의 경제는 깊은 침체에 빠져 있지만 정부는 폐업한 공장을 수수방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19년부터 산단 내 휴·폐업 공장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지난해까지 30곳도 채 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 내내 정책적 지원이 후순위에 밀리면서 ‘제조업의 심장’인 국가산단이 빠른 속도로 불이 꺼져 가며 성장 동력을 잃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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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산업부와 한국산업단지공단 등에 따르면 지난해 인천 남동, 경기 시화, 구미, 창원, 군산 등 33개 국가산단 내 휴·폐업한 공장은 749곳으로 2017년(175곳)보다 574곳 증가해 4.3배가량 늘었다. 2018년 224곳, 2019년 449곳, 2020년 711곳으로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철강·조선업의 구조 조정과 생산 공장의 해외 이전에 따른 여파로 군산·구미·창원 등 제조업 기반 도시의 몰락이 가속화하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산업단지 공동화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올해 초 공장을 매물로 내놓은 D사 대표는 “코로나19의 직격탄에 따른 경기 침체로 거래처들의 생산량이 반 토막 나는 등 분위기가 좋지 않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공장 문을 닫았다”며 “50인 미만 영세 중소업체는 최악의 상황인데 정부는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중소 제조 업체의 휴·폐업으로 설비 매물도 쏟아지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중고 기계 설비 거래 사이트에 따르면 개인과 기업이 직접 등록한 기계 설비 매물은 지난해 838건에 달한다. 2017년 사이트가 개편된 후 최고치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2020년의 784건을 넘어선 수치다. 한 기계 거래 업체 대표는 “공장이 계속 문을 닫으니 매물이 급증하는 상황”이라며 “수요가 없어 고철 용도로 팔려나가는 설비가 대부분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지금처럼 매물이 많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재창업이나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도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19년부터 산업부가 진행하고 있는 휴·폐업 공장 리모델링 사업에 선정·지원이 이뤄진 곳은 불과 30곳이 채 안 된다. 휴·폐업 공장 리모델링 사업은 산단 내 휴·폐업 공장을 리모델링한 뒤 창업·중소기업에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 공간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이주환 의원은 “매년 증가하는 산단 내 휴·폐업 공장 숫자에 비해 산업부의 실효성 있는 정책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코로나19로 공장의 휴·폐업이 급증하지만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장 문을 닫는 중소업체가 늘어난 여파는 곧바로 국가산단의 성적표로 이어졌다. 가장 먼저 국가산단 내에 근로자가 크게 줄었다. 2017년 102만 3388명에 달했던 고용 인원이 2018년 99만 2646명, 2019년 98만 3006명, 2020년 96만 9712명, 2021년 96만 9797명으로 감소했다. 문재인 정부 기간에 5만 명이 넘는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가동 업체당 고용 인원도 평균 4명 이상 줄어 50인 미만의 영세 중소업체 기준으로 10% 수준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전체 국가산단 내 입주 업체의 절반 이상이 50인 미만의 영세 중소업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가산단 내 중소업체의 휴·폐업 급증으로 국가산단 면적 가운데 축구장 650여 개 규모의 부지가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국가산단 유휴 부지는 2015년 213만 8000㎡에서 2016년 237만 5000㎡로 완만히 증가하다 2017년 444만 6000㎡로 급격히 늘었으며 2018년에는 469만 4000㎡로 확대됐다. 그 이후로는 실태 파악조차 하지 못한 실정이다. 유휴 부지 469만 4000㎡는 축구장(7140㎡) 657개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정우택 의원은 “국가산단 휴·폐업 급등은 기업 유치와 제조업 활성화 정책을 등한시한 정부의 정책 기조 때문”이라며 “제조업의 심장인 국가산단의 붕괴가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업 등 관련 산업 침체로 이어져 결국 인구 감소와 지역 공동화로 지역 경제에 큰 타격을 주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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