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현 감독의 영화에는 ‘멋’이 있다. 어딘지 모르게 세련되고 힙하고 독특하다. ‘스타일리시’는 그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이자 작품을 보게 만드는 매력이기도 하다. 3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도 스타일리시한 킬러 액션을 선보인 작품이다. 여기에 전도연의 연기까지 더해지니 금상첨화다.
‘길복순’을 재밌게 봤다면 추천하고 싶은 또 다른 작품이 있다. 변성현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이다. ‘불한당’은 범죄 조직 일인자를 노리는 이인자 한재호(설경구)와 그의 조직에 언더커버로 들어가게 된 경찰 조현수(임시완) 사이의 믿음과 배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하는 서사 구조와 적절한 교차 편집으로 지루함이 없고, 영화 전체에 강렬하고 감각적인 색감을 사용하여 화려한 미장센을 보여주는 등 변성현 감독만의 스타일리시함이 역시 돋보이는 영화다.
변성현 감독의 작품 세계에서 스타일리시한 연출만큼이나 눈에 띄는 건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영화 ‘킹메이커’에서 각기 다른 신념을 가진 김운범(설경구)과 서창대(이선균)의 관계를, ‘길복순’에서는 킬러와 엄마 사이에서 내면의 갈등을 겪는 길복순(전도연)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불한당’에서는 재호와 현수 사이의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포착했다. 사실 ‘불한당’은 누아르보다 로맨스에 가깝다.
재호는 사람을 죽일 때 무조건 눈을 마주치고 난 후에 처리할 만큼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런 그는 현수에게만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항상 ‘자기’라는 호칭으로 현수를 부르고, 조직 안에서의 부하 관계가 아닌 친한 친구처럼 대한다. 또한 조직원과 경찰 사이에서 언더커버 역할을 하게 된 현수를 끊임없이 의심하는데, 이 모습이 마치 연인의 사랑을 계속해서 의심하고 확인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로맨스 작품의 클리셰인 삼각관계도 등장한다. 재호의 오랜 친구이자 조직원인 병갑(김희원)은 재호를 향해 순애보 같은 사랑을 보여준다. 재호를 두고 현수에게 끊임없는 견제를 보내는 모습은 마치 둘의 사이를 질투하는 듯하다. 자신이 아닌 현수를 믿기로 결심한 재호에게 끝까지 매달리며 “너 지금 뭐에 씐 거야”라는 대사를 말하는 장면은 사랑싸움에 가까워 보인다. 이러한 연출 때문인지 작품을 보다 보면 언더커버 이야기보다는 인물들 간의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재호와 현수 사이의 멜로 코드는 전형적인 언더커버 물이라는 상투성을 상쇄한다.
‘불한당’은 본질적으로는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 인물의 감정선이 중요하다. 특히나 조직원 재호와 경찰 현수, 양극단에 있는 두 사람이 어쩌다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잘 설명해야 한다. 영화는 재호와 현수 사이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이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데 성공한다. 그래서 재호와 현수의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고 두 사람의 사랑이 애절하다고까지 느껴진다.
천인숙(전혜진)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길복순’에 냉철한 킬러 길복순이 있었다면 ‘불한당’에는 천인숙이 있다. 인숙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정하고 잔인한 경찰이다. 기존 누아르 물에서 여성 캐릭터가 기능적으로 소비되었던 반면, 그는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목적 달성을 위해 움직인다. 재호와 더불어 모든 판을 설계하고 움직이는 핵심적인 인물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불한당’은 2017년 개봉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후 입소문을 타 ‘불한당원’이라는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섬세하게 표현한 인물의 감정, 오묘한 멜로 코드, 스타일리시한 연출 등 ‘불한당’만이 가진 매력 덕분이다. 이미 불한당원이라면 다시 한번, 영화를 처음 접했다면 지금부터 ‘불한당’의 매력에 감겨 보자.
◆시식평: 사실, 저도 불한당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