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75
  • 책무구조도 도입은 요 근래 금융업권의 주요 화두이다. 과거에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부실 문제가 지적되었다. 금융회사와 임직원들을 어떠한 근거로 어디까지 제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실무상 논란도 있었다. 개정「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책무구조도 도입 의무가 마련된 것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한 것이다. 책무구조도는 영국 금융서비스 및 시장법(Financial Services and Markets Act 2000: FSMA)상 고위 경영자 및 인증제도(Senior Managers and Certification Regime, SM & CR)에 근거하고 있는 고위 경영자 및 거버넌스에 대한 책임지도(responsibilities map)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책무구조도 도입에 따라 금융회사 임원별로 소관 영역에 대한 내부통제 ‘책무’가 명확하게 식별, 배분되어야 한다. 임원은 소관 영역에서 내부통제·위험관리 기준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관리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대표이사는 전사적 내부통제체계를 구축하고 임원들의 내부통제 활동을 감독하는 내부통제 ‘총괄’ 관리 의무를 부담하며, 임원별 내부통제 책무를 배분한 ‘책무구조도’를 작성해서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대표이사와 고위임원들에게 중징계가 부과될 수 있기 때문에 세간에서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법에 따라 책무구조도를 도입해야 하는 기한은 업권별로 다르다. 은행·금융지주회사는 올해 1월 책무구조도 제출을 완료했다. 금융투자업자·보험사는 자산총액·운용재산 규모에 따라 올해 7월 또는 내년 7월까지, 여신전문금융회사·저축은행은 자산총액 규모에 따라 내년 7월 또는 후년 7월까지 책무구조도를 도입해야 한다. 책무구조도 도입을 준비하는 금융회사들은 고충이 많다. 각자의 영업, 내규와 조직 현황을 전반적으로 점검해서 법의 취지에 맞게 내부통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조직 개편, 업무 분장·조정, 인사이동이 수반되는 경우가 생긴다. 내규도 정비해야 하고 전산시스템과 업무 프로세스를 변경해야 한다. 간단한 일이 아니고 전사적인 역량이 투입되어야 하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금융당국도 새로운 제도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책무구조도 시범운영 제도를 시행해서 업권별 책무구조도 도입 기한 전에 참여를 희망하는 금융회사로부터 책무구조도를 조기에 제출받아 사전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시범운영 기간 중에는 내부통제 관리 의무가 완벽하게 이행되지 않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 등 인센티브도 준다. 컨설팅 과정에서 금융회사들에 공통적으로 발견된 실무상 쟁점에 대해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려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당분간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할 것이다. 축적된 실무가 많지 않고 금융회사마다 경영 여건과 조직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제공하는 컨설팅이나 가이드라인에만 의존해서 개별 회사들이 내부통제 시스템을 단기간에 완결적으로 보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금융회사의 적극적인 실행 의지와 금융당국의 적정하면서도 유연한 감독권 행사가 결합되어 책무구조도 도입이 대형 금융사고를 예방하고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한층 고도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책무구조도, 내부통제 고도화를 위한 성장통
    by 유정한
    2025.05.07 12:38:00
  •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해법은 제도와 정책을 넘어, 삶의 기억을 품은 공간과 사람의 회복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올해 4월 현재 대한민국 수도권의 인구는 약 2,600만명으로 이는 전국 총인구의 50%를 차지한다. 도시 집중화로 인한 수도권 인구 밀집과 지방 소멸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 만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잃어버린 일자리와 사람들을 다시 지역으로 불러 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은 과연 가능할까. 고착된 도시 생활과 일상의 안정성을 포기하고, 낯선 지역으로의 귀환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질문의 해답은 멀리 있지 않다. 답은 ‘사람’과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피어나는 ‘상상력’에 있다. 지난달 26일, 농촌유토피아대학원 학생들과 경주 불국사 인근 진현동을 찾았다. 수학여행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세월의 격랑 속에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긴 폐허로 방치되었다. 지역을 강타한 지진과 코로나19 팬데믹, 인구 감소의 삼중고 속에 문화와 역사마저 침묵하게 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최근 지역 주민들과 문화 재생의 뜻을 함께하는 민간인들의 노력으로 ‘불리단길 형성’이라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 변화의 현장을 수업으로 마주했다. 수업이 진행된 ‘주오일장’은 과거의 포장마차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실내 포차 공간이다. 평소에는 저녁에만 문을 여는 곳이, 이날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나의 강의장이 되었다. 지역의 유휴 공간이 ‘교육과 사유(思惟)’의 장소로 탈바꿈된 것이다. 이는 농촌유토피아를 실행하는 학생들의 발표와 토론장으로 ‘로마드대학원(nomad+campus)’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상상력을 창조하라’는 주제로 지역에 방치된 폐 공간을 살려 지역 활성화를 이루고 있는 젬스톤 F&B(주) 이창렬 대표의 강의는 현장이 학문을 도전하게 하고, 이론이 실천으로 검증되었다. ‘도시에서 지역으로’라는 말이 물리적 이동이 아닌, 삶의 방식과 가치관의 이동임을 실감하게 했다 스페인 자치공동체 마리날레다를 이야기한 ‘우리는 이상한 나라에 산다’에 “빵과 장미”라는 구절이 있다. 인간에게는 생존을 위한 빵뿐 아니라, 존엄과 꿈을 위한 장미도 필요하다는 의미다. ‘주오일장’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방치된 공간을 공동체의 가치와 지역 청년들의 소통을 담아낸 ‘장미’와 같은 공간이다. 농촌유토피아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수업에 참여한 대학원생 조윤지씨는 “여러 분야에서 이미 각자의 재능으로 전환을 향해 나아가는 분들을 보며 많이 배웠다”며 “비록 지금은 일개 도시민이지만, 도시와 지역의 모습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데 일조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또 대학원생 박수진씨는 “현장을 통해 우리 젊은 청년들의 조용하지만 힘찬 움직임을 보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며 현장 수업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들의 목소리는 작지만 단단한 의지로 다져졌다. 농촌유토피아대학원이 추구하는 교육은 책상 위의 이론이 아닌, 현장을 교과서로 삼는 실천적 배움이다. 지역 사람들의 삶과 공간, 그리고 역사와 문화 유지를 통해 상상력을 창조하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 이것이 바로 농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실제적 대안인 것이다. 진현동의 불리단길, 주오일장, 그리고 이곳을 찾는 청년들의 발걸음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지역’의 희망을 보여준다. 그것은 공간 활용의 기술을 넘어 가능성에의 도전과 사람을 품는 상상력에서 출발한 변화다. 지역은 누군가의 삶터이며, 기억의 저장소다. 지역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한 인구 감소의 문제가 아닌 삶의 방식과 역사, 공동체의 가치가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농촌유토피아는 농촌을 살리자는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어떤 공동체를 꿈꾸는지를 묻는 질문이며, 동시에 그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유토피아는 멀리 있는 이상향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가능성의 씨앗이 심어진 곳, 그곳이 도시든 농촌이든, 삶이 숨 쉬는 곳이 바로 유토피아다. ‘리쇼어링’의 열쇠는 정책 이전에 사람이고, 공간이며, 상상력이다. 지역이 살아나는 현장에 농촌유토피아는 강한 생명의 꽃을 피울 것이다.
    빵과 장미 그리고 ‘리쇼어링’
    by 조금평
    2025.05.01 13:00:36
  • 433년 전 4월 13일은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서막이 오른 날이다. 1592년 이날,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선봉장으로 하는 왜군 17만여 명은 조선 침략 길에 올랐다. 규슈 남단 가라쓰(唐津)에서 출항한 왜군은 12시간 만에 부산진항에 상륙했다. 왜군은 다시 육로를 따라 한양까지 무인지경으로 내달았다. 무능한 선조는 2주 만에 안방을 내준 채 의주로 도주했고, 분노한 백성들은 도성을 휘저으며 곳곳에 불을 놓았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과 종묘가 불탔고 조선왕조실록을 포함한 수많은 문화유산은 잿더미가 됐다.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왜군이 출진했던 가라쓰에 다녀왔다. 임진왜란 직전 축조한 이곳 히젠(肥前) 나고야(名護屋) 성은 왜군이 출진에 앞서 호흡을 가다듬었던 곳이다. 지금은 텅 빈 성터만 있다. 조선 침략의 전진기지였던 나고야 성터를 돌아보는 내내 눈부신 벚꽃 아래서 착잡했다. 후쿠오카를 빠져나와 규슈 북서부에 위치한 사가(佐賀) 현 가라쓰로 가는 길은 한적하다. 교통체증으로 번잡한 후쿠오카와 달리 해안도로는 여유롭다. 50km, 1시간여를 달려 가라쓰에 접어들면 무지개 솔밭으로 불리는 국가명승 ‘니지노 마쓰바라(虹の松原)’가 눈에 들어온다. 가라쓰 성에 오르자 지나온 솔밭과 바다를 낀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과거 가라쓰는 대륙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살려 조선, 중국과 교역을 통해 흥성했다. 지금은 여느 지방 소도시와 다를 바 없지만 433년 전 가라쓰는 전국에서 몰려든 사무라이들로 북적였다. 나고야 성 주변으로 130여 개에 달하는 진영이 섰다니 엄청난 전쟁특수를 짐작할 수 있다. 나고야 성터와 나고야 성 박물관은 불행한 과거를 돌아보는 한편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히젠’은 규슈 서부를 일컫는 옛 행정 명칭이다. 우리나라 호남, 영남, 호서와 같다. 나고야(名護屋) 성은 혼슈 중부에 위치한 나고야(名古屋) 성과는 발음만 같을 뿐 다른 성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는 조선 침략을 앞두고 이곳에 축성을 지시했다. 전국 통일 후 도요토미는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릴 필요가 있었는데, 조선은 좋은 먹잇감이었다. 도요토미가 궁벽한 가라쓰에 축성을 지시한 건, 조선과 최단 거리(140km)에다 배를 숨기기 용이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쾌속선을 이용하면 부산에서 가라쓰까지 2~3시간이면 충분하다. 왜군은 이곳에 진을 치고 조선 침략을 논했다. 당파로 갈린 조선 정부가 전쟁 가능성을 놓고 대립할 때 도요토미는 대륙 침략에 필요한 전쟁 수행을 마쳤던 것이다. 도요토미는 명나라 정벌을 위해 길을 빌려달라고 했지만 조선침략도 포함돼 있었다. 사무라이의 칼과 기치로 숲을 이뤘을 나고야 성은 이제 쓸쓸한 폐허다. 가라쓰에는 당시 10만여 명이 몰려 오사카에 이은 제2 도시였다. 50만 평, 둘레 6km에 달하는 방대한 성터를 돌다보면 세월이 덧없다는 걸 실감한다. 떠들썩한 함성은 간데없고 거친 바람만 웅성댄다. 왜군이 빠르게 한양을 접수하자 조선정부는 갈팡질팡했다. 시기와 질투에 눈먼 선조는 판단력마저 상실했다. 의병과 이순신에 힘입어 가까스로 나라를 보존했음에도 그는 이순신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역사는 선조를 어리석고 비열한 군주로 기록하고 있다. 조선 500년 역사에서 가장 무능한 왕을 꼽을 때마다 선조는 인조, 고종과 함께 거론된다. 당파 싸움에 매몰된 조선은 언제 무너져도 하등 이상할 게 없었다. 일본 정황을 살피고 돌아온 동인 김성일과 서인 황윤길은 전혀 다른 정세 판단을 내놓았다. 황윤길은 “반드시 왜군이 침입할 것”이라며 경계를 촉구한 반면 김성일은 “사려 깊지 못한 허풍”으로 일축했다. 도요토미에 대한 인물평 역시 “눈빛이 반짝반짝하며 담과 지략이 있다”와 “쥐새끼와 같아 두려워할 위인이 못 된다”며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훗날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당파싸움의 폐해를 경계했지만 진영싸움은 오늘도 여전하다. 나와 내 편만 옳다는 확증편향으로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갈등과 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막대한 사회갈등 비용은 성장 동력을 갉아먹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사대주의는 심화됐다. 사대부들은 명나라에 의해 조선은 다시 태어났다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앞세우며 속국을 자처했다. 자신들의 무능으로 국토가 유린됐음에도 통렬한 반성 대신 중국을 떠받드는 것으로 합리화했다. 무능한 나라에 무능한 기득권층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400여 년 전 임진왜란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주춧돌과 성곽만 남은 나고야 성터에서 자문했지만 “그렇다”고 말하기에 자신 없다. 12.3 계엄 이후 망가진 나라를 바로 세우고 국민을 중심에 두는 정치가 절실하다. 다시 횃불을 든 분노한 시민들이 아른거린다.
    조선 침략의 전진기지 ‘나고야 성’
    by 임병식
    2025.04.14 13:33:44
  • 변화의 시기, 미래에 대한 예측에 관심이 더욱 커진 시기에 기업들은 순도가 높은 정보에 대한 욕구는 높으나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의 옥석을 가리는데 많은 애를 먹는다. 요즘은 누구나 카톡으로 지라시를 받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증권가를 중심으로 미확인된 정보를 지라시라는 형태로 소수에게 돌렸는데 유튜브 등이 활성화되면서 누구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생성하고 유통시키면서 우리는 ‘지라시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에는 지라시를 통해 어느 정도 신뢰성 있는 정보를 얻기도 했는데 개인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유튜브 등을 통해 접하는 많은 정보가 진실과는 괴리된 허무맹랑한 것들이 많다. 사업 전략을 세우고 규제에 대응하며 사회와 소통하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자원인 정보를 보다 정제된 형태로 받고자 하는 기업들의 요구는 높지만 현실은 정제된 형태로 제공되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정책 입안자의 발언, 입법 예고안, 이해관계자의 주장, 언론 보도, 여론조사, 소셜미디어 담론 등 수 많은 형태의 정보들이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신호’의 역할을 하기 보다는 ‘소음’에 가깝다. 대니얼 카너먼은 ‘노이즈: 생각의 잡음’에서 인간의 판단이 왜 잘못되는지를 설명하면서 편향(bias)만큼이나 판단의 일관성 없는 변동성, 즉 노이즈(noise)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정부, 의회, 시민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기업이 정책 환경을 해석하고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양보다 정보의 순도를 먼저 따져야 한다. ‘정보를 얼마나 모았는가’보다 ‘무엇을 걸러냈는가’가 사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시대다. 퍼블릭 어페어즈가 필요한 이유이다. 기업이 정책 대응을 둘러싼 의사 결정을 할 때, 내부 논의 과정에서 얼마나 정밀한 정보가 쓰였는지, 이해관계자들과 대화에서 얼마나 전략적으로 정보를 배열했는지가 중요하다. 규제 환경을 바라보는 분석의 정교함, 정보를 전달하는 언어의 균형감, 그리고 침묵할 때와 발언할 때를 구분할 수 있는 전략적 분별력이 퍼블릭 어페어즈의 품질을 결정짓는다. 그 점에서 독일 화학기업 바스프는 탁월한 사례다. 유럽연합이 도입한 화학물질 규제 REACH는 산업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규제였지만, 많은 기업들이 불확실성과 복잡성에 당황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무엇보다 기다려보면 산업의 입장을 반영해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보고서들을 보면 환경에 대한 EU의 의지를 과소평가했다. 반면 바스프는 초기 단계부터 정책 흐름을 정보로 분석했다. 입법 동향, 추진 세력의 의도, 규제 대상의 세부 범위를 면밀히 해석해 자사 제품의 리스크 수준을 계량화했고, 내부적으로는 전사적인 이행 로드맵을 설계했다. 더 나아가 고객사, 공급망과의 정보 연계를 강화해 ‘규제 대응 선도 기업’으로 신뢰를 확보했고, 결국 경쟁사들보다 앞서 REACH에 부합하는 신제품을 출시했다. 이는 단지 규제를 이행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책을 전략화하고 경쟁 우위로 전환한 전형적인 사례다. 반면 규제 문서의 복잡성에 휩싸여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한 기업들은 시장 내 입지를 잃었고, 일부는 생산 중단까지 경험해야 했다. 미국의 존슨앤존슨(J&J)의 오피오이드 남용문제에 대한 전향적이고 진취적 결정은 제대로 된 퍼브릭 어페어즈 전략의 구사로 기업의 위기가 오히려 도약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마약성 진통제였던 오피오이드는 뛰어난 효과에도 불구하고 중독성 때문에 오랜 기간 사회문제가 되고 있었다. 미국 전역에서 오피오이드 남용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제약기업들은 전방위적인 소송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제약회사였던 J&J는 다른 제약사들과 달리 방어적 입장을 취하는 대신 제품 유통 구조, 처방 트렌드, 시장 점유율을 기반으로 자사의 책임 범위를 정확히 분석했고, 이를 바탕으로 뉴욕 주정부와 가장 먼저 합의했다. 제품 판매 중단과 2억3000만 달러의 배상금은 결코 가벼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이 선제적 조치는 존슨앤드존슨을 문제 해결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이 합의에 대해 연방의원들과 전문가를 포함한 사회지도층이 J&J와 뉴욕주의 합의에 지지성명을 내는 등 그 결정을 칭찬했다. J&J는 오랜 기간 유지해 온 명성을 지킬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바스프, J&J는 ‘정보’를 그저 수집하거나 반사적으로 대응한 것이 아니라, 명확히 판단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함을 잘 보여준다. 퍼블릭 어페어즈의 본질은 정책 대응이 아니라 정보를 맥락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에 있다. 정책 변화의 가능성을 정보로 조기에 포착하고, 이해관계자 간의 정합성을 설계하며, 리스크를 전략으로 치환하는 일이야말로 오늘날 기업에게 요구되는 진짜 정보력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트럼프의 관세정책도 마찬가지다. ‘미국도 힘들텐데 설마’하는 기대와 정확한 정보의 부족으로 많은 기업들이 플레이어(player)보다는 관중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사실 이번에 발표된 USTR의 ‘2025 나라별 무역장벽보고서’의 내용은 매년 발표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트럼프 행정부와 만나면서 그 중요도가 높아졌다. 맥락이 변하면 정보의 중요도도 변한다. 때문에 사실만을 파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까지 포괄해서 봐야 소음이 정보가 된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진짜 질문은 단순해진다. 지금 이 정보는 신호인가, 소음인가.
    지라시 그리고 ‘정보 혹은 소음’
    by 이보형
    2025.04.02 14:14:50
  • 우리도 그렇지만 일본 또한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이 있었다. 메이지유신을 즈음해 궁벽한 시골에서는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쏟아졌다.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기 전까지는 시골 출신이라도 신분상승을 꿈 꿀 수 있었다. 이제 ‘개천 용’은 옛말이 됐다. 일본에서 ‘개천 용’이 많이 난 지역은 하나같이 외진 시골이다. 가고시마 가지야초(加治屋町)와 야마구치 하기(萩)가 대표적인데, 모두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깡촌이다. 이곳에서 메이지유신을 전후해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무더기로 나왔는데, 총리대신은 물론이고 해군대장과 육군대장, 교육‧정치 사상가가 줄을 이었다. 남쪽 끝 가지야초에서는 ‘유신 3걸’ 중 오쿠보 도시미치(총리)와 사이고 다카모리(참모 총장)를 비롯해 총리 2명, 육군대장 3명, 해군 대장 6명이 나왔다. 가지야초 ‘유신의 길’에는 이곳 출신 인물 18명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는데 면면이 빼어나다. 모두 반경 500m에서 나고 자랐다. 하기(萩) 또한 마찬가지다. 메이지유신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요시다 쇼인을 정점으로 이토 히로부미(총리)와 야마가타 아리토모(육군 대장), 기도 다카요시(유신 3걸), 다카스키 신사쿠(회천 대업 주역), 가쓰라 다로(육군 대신과 총리), 데라우치 마사다케(총리와 조선 총독)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인구 4만 명에 불과한 곳에서 총리 5명과 대신, 육군대장이 배출됐으니 그야말로 ‘개천 용’의 성지다. 인물 경쟁에서 오이타(大分)현 기쓰키(杵築) 시를 빼놓을 수 없다. 구니사키(國東) 반도에 속한 기쓰키 또한 규슈 북동쪽에 위치한 한적한 바닷가다. 그런데도 일본 근대사를 추동한 숱한 ‘개천 용’이 나왔다. 지난주 구니사키 반도를 일주하면서 그 이유가 궁금했다. 지금은 쇠락했지만 한때 일본 근대사를 쥐락펴락한 인물들이 쏟아졌다는 게 좀처럼 실감나지 않았다. 일본인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인물’ 대부분은 우리와 악연이라서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일관계가 제대로 보인다. 김종필 총리는 “한·일 역사를 넘나들면 영웅이 역도(逆徒)가 되고 역도가 영웅이 된다.”고 했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앞서 소개한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카타 아리토모, 데라우치 마사다케, 가쓰라 다로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들은 모두 조선 침략과 직접 연관돼 있다. 오이타가 배출한 최고 스타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다. 게이오(慶應)대학을 설립하고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후쿠자와는 뛰어난 계몽 사상가이자 교육자였다. 그는 당대 일본 지식인과 근대화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후쿠자와는 700여 년 동안 지속된 막부 정치를 끝내고 서양문물을 수용하자고 역설한 선각자였다. 김옥균을 비롯해 유길준, 박영효, 홍영식, 서재필, 서광범, 윤치호 등 조선의 개화파 사상가들도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후쿠자와는 갑신정변에도 개입했다. 요시다 쇼인과 함께 일본 근대화를 언급할 때마다 나란히 거론되는 후쿠자와는 얼마 전까지 일본 최고액 1만 엔 권을 장식하기도 했다. 정한론과 주변 국가 침략을 부추긴 죄과가 있지만 그에 대한 오이타 시민들의 자긍심은 대단하다. 오이타가 배출한 또 다른 인물은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1887~1957)다. 그는 태평양 전쟁 당시 외무대신을 지냈고 천황을 대신해 항복문서에 날인했다. 10여 년 전 처음 기쓰키 성에서 시게미쓰와 조우했는데 예상치 못했다. 인근 무사마을을 돈 뒤 오른 기쓰키 성에서 전시물 가운데 시게미쓰 유품이 눈에 뜨였다. 윤봉길 의사 사진과 그가 입었다는 혈흔이 묻은 해진 옷, 그리고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사진 등이다. 윤 의사가 왜 이곳에 있을까하는 의문은 사진 설명을 읽고 풀렸다. 그는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기념식장에서 윤 의사가 던진 폭탄에 오른 발을 잃었다. 너덜너덜한 옷은 그때 입었던 것이다. 그는 1945년 8월 15일에는 미주리 전함에서 일본을 대표해 항복문서에 날인했다. 유튜브 영상에서 나레이터는 ‘일본 대표단을 이끄는 시게미츠 외무상은 수년 전 상하이에서 한국인 애국자에 의해 부상을 입었으며, 한쪽 다리는 의족이다.(They are headed by Agent Mamoru Shigemitsu, Foreign Minister of the Japanese surrender Cabinet, who was wounded by a Korean patriot in Shanghai years ago and walks on an artificial leg.)’고 소개한다. 기쓰키 시가 시게미쓰 유품을 전시한 의도는 자랑스러운 출향 인사임을 알리기 위해서였겠지만 한국인 입장에서는 불편한 역사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기쓰키 성에서 ‘상하이 의거’ 관련 유품이나 항복문서 서명 사진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기쓰키를 찾는 한국인들 감정을 배려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뜻인지 알 수 없다. 지난주 방문에서도 시게미쓰가 쓴 휘호와 저서, 가족사진으로 새롭게 꾸민 전시물만 확인했다. 이외 기쓰키 출신으로 조선총독을 지낸 미나미 지로(南次郎, 1874~1955)와 연합함대 사령관을 역임한 해군 대장 도요다 소에무(豊田副武, 1885~ 1957), 호세이(法政)대학 설립자 가네마루 데쓰(金丸鐵)와 이토 오사무(伊藤修), 그리고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1924~) 총리가 있다. 소도시치고는 대단한 인맥이다. 어쩌면 기쓰키 시민들은 이들을 통해 더는 ‘개천 용’을 기대할 수 없는 상실감을 달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구니사키 반도에서 만난  ‘개천 용’
    by 임병식
    2025.03.31 10:54:57
  • ‘3無 3有’대학으로 강의실과 교수와 등록금이 없고, 창조적 상상력과 통섭 융합력, 그리고 지역 리더십을 공부하는 대학이 우리나라에 있다. 3월 새 학기 국내의 모든 학교는 입학식 후 수업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이 대학은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1시, 경남 함양 오도재 정상에서 특별한 입학식을 진행한다. 1, 2, 3학년 전 학생이 1년 동안 공부할 학습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들공(공부에 들다)’을 선포하는 것이다. 농촌 혁신과 그린 르네상스(Green Renaissance)를 선도할 핵심 역량을 키운다는 사명으로 2020년 설립되어 2021년 3월 첫 입학생을 맞은 농촌유토피아 대학원, 그동안 1회 졸업생 배출과 함께 올해 5년째 입학생을 맞이하고 있다. 지속적인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농촌에 우리는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농촌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한 것이 사실이다. 사업 결과 과시를 위한 재정 지원이나 단발성 일자리 창출만으로는 농촌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다. 핵심은 ‘사람’이다. 농촌을 유토피아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농촌을 단순한 거주지가 아닌 삶의 터전이자 창조적 공간으로 인식하는 인재들이 필요하다. 현재의 대학 시스템은 도시 중심적이며, 특정 직업군 취업을 목표로 한 교육이 주를 이룬다. 농촌에서 창조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기존 대학은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농촌유토피아대학원은 기존 대학의 한계를 뛰어넘어, 창조적 상상력과 지역 리더십을 바탕으로 농촌을 혁신적으로 디자인할 인재를 양성한다. 대학은 농촌의 마을과 현장을 학습 공간으로 활용함으로 전국 각지 모든 현장이 캠퍼스이며 강의실이다. 산림청장을 지낸 건국대 산림조경학과 김재현 교수, 전 농업진흥청장을 지낸 민승규 세종대 석좌교수,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등 각계 다양한 분야 최고 전문가 60여명의 멘토 교수도 있다. 농촌과 지역을 살리기 위한 종합적인 문제 해결 역량을 갖춘 인재를 키우기 위해 농업, 환경, 생태, 경제, 문화, 예술, 의료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들이 지식과 경험을 나누어 준다.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관계로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며 인재는 모셔야 한다는 취지에서 등록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장학습비를 지급한다. 이는 ‘미네르바 스쿨’(Minerva School), ‘에콜42’(École 42), ‘몬드라곤 팀 아카데미’(Mondragón Team Academy)등 세계적인 대안대학의 사례를 참고해, 이론과 실천을 결합한 혁신적인 학습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농촌을 무대로 창조적 상상력을 실행하고 도전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배움터가 되고자 하는 농촌유토피아대학원은 단순한 교육 기관이 아닌, 농촌 혁신을 위한 플랫폼이 될 것이다. 이곳에서 배출된 인재들은 농촌에서 새로운 경제 모델을 창출하고, 자립적이며 지속 가능한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데 앞장설 것이다. 이번 들공식을 준비하는 학교에 아름다운 소식이 전해졌다. 자연 친화적 삶을 지향해 수도권의 오랜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귀촌을 위해 지역을 공부하던 중 농촌유토피아대학원에 입학한 최지혜씨(43세, 경남 함양 함양읍). 그녀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실행 과제를 수행하던 우수 학생이었다. 학업을 계속 이을 수 없어 안타까웠던 그녀가 들공식 소식에 맞춰 메모를 전해 온 것이다. “29일(농촌유토피아대학원 들공식 날), 저희집 자유롭게 오픈합니다. USB(Utopia Study Box·농촌유토피아대학원)분들 누구라도 하룻밤 주무실 수 있습니다. 5명이 쓸 수 있는 이불과 침낭 있습니다. 개인 이불 가지고 오시면 더 많은 분들 수용 가능하며, 큰방과 마루 등 최대 10명까지 잘 수 있습니다. USB 다니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고, 많이 배웠음에 작은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잘 곳 필요하신 분들 하룻밤 마음 편히 주무시고 가시면 됩니다. 주소는 함양읍 대실곰실로 ***입니다” 농촌유토피아를 배우고, 농촌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가며, 농촌유토피아를 실행하는 이를 통해 유토피아 씨앗이 뿌려지고 있음을 직면하는 순간이다. 농촌유토피아는 대단한 혁신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농촌유토피아는 먹고 사는 걱정이 없고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한 농촌을 말한다.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문화적 삶을 누리며, 개인의 자아실현을 향한 노력이 공동체의 발전과 함께 자연스럽게 만나는 곳을 말한다. 새로운 농촌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농촌유토피아대학원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혁신적인 교육 모델로, 이를 통해 모두가 꿈꾸는 ‘사람이 사람답게 잘 사는 농촌’을 실현할 수 있는 작은 연장이 될 것임에 부푼 희망으로 들공식을 맞는다.
     아름다운 ‘들공식’
    by 조금평
    2025.03.25 13:54:14
  • 오늘은 오이타 현 벳부에 있는 ‘리츠메이칸 APU’를 이야기해보자. APU는 개교 25주년에 불과하지만 성공한 지방 대학으로 회자된다. 교토에 있는 리츠메이칸 대학이 국제화를 목표로 2000년 설립한 자매 대학인데 인지도에서 이미 본교를 뛰어넘었다. APU는 개교 수년 만에 일본 내 명문 대학에 올라섰다. 영국 TIME이 발표한 2023년 ‘THE 일본대학 상위 200’를 보자. APU는 개교 이래 매년 20위권 안팎에 랭크됐는데, 2023년 역시 22위를 기록했다. 교육품질 1위, 교육 성취도 3위, 교육성과 20위 등 일부 항목에서는 최상위에 속해 있다. 도쿄나 교토, 오사카, 히로시마 등 대도시권이 아닌 지방에 소재한 대학에서 이런 성과를 냈으니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APU는 한국에서도 벤치마킹 사례로 입줄에 오르내린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지방도시는 소멸 위기에 직면한지 오래고, 지방대학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는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APU는 대학이 지방을 살리고, 지방대학도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음을 보여줬다. APU는 특화된 경쟁 요소를 바탕으로 명문 대학 반열에 올라 지역경제에 선순환을 가져왔다. 2023년 기준 일본 대학은 국립 86개를 포함해 총 813개에 이른다. 우리나라 409개에 비해 두 배쯤 많다. 우리와 일본은 면적(3.3배)과 인구(일본 1억 2,360만 명, 한국 5,180만 명)에서 두세 배 가량 차이 나는데, 대학 숫자도 얼추 들어맞는다. 일본에 대학이 813개라는 것도 놀랍지만 APU가 2%에 속한다는 건 더 놀랍다. 벳부(別府)는 ‘특별한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로부터 벳부가 온천이 풍부한 특별한 곳이라서 비롯된 지명이다. 벳부는 대략 3,000곳에 이르는 온천수원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전체 온천에서 10% 이상을 차지하며 온천 용출량에서 최대다. 벳부 IC에 들어서면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흰 수증기가 연출하는 풍광이 이색적이다. 다양한 온천을 체험할 수 있기에 연간 90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다녀간다. 한국인 관광객은 압도적인데 전체 외국인 가운데 60% 상당을 차지한다. 벳부에 머문 지난주 관광 비수기임에도 적지 않은 한국인 관광객을 만났다. 이들이 골프장과 온천에서 뿌리고 가는 돈이 얼마나 될까 헤아리다 리츠메이칸 APU대학으로 생각이 미쳤다. APU는 도심에서 10여km 떨어진 산속에 있다. 대부분 대학이 도심에 위치한 것과 달리 APU는 위치부터 역발상이다. APU는 산 정상에 있어 학습 환경은 쾌적하다. APU캠퍼스에서 바라보는 벳부 만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학교 주변에 유흥 시설이 전무하고 도심과 격리돼,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다.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유학 보낸 부모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있다. 1학년은 기숙사 생활을 하며 2학년부터는 시내에 집을 얻어 통학한다. 40~50분가량 걸리는 통학은 불편하지만 지역경제 활성화와 맞물려 있다. 대학은 스쿨버스를 운행하지 않는 대신 벳부 시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연간 탑승권을 할인 판매(100만원)한다. 운수회사 입장에서는 고정 승객을 확보한 셈이다. 재학생들이 학비와 생활비로 지출하는 돈은 벳부 지역경제에 효자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학생 1인당 연간 평균 4,000만 원을 쓴다. 전체 학생 수를 고려하면 매년 2,200억 원 이상 돈이 벳부에 뿌려진다. 이 학교는 외국인 학생 비율이 높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체 학부생 5,516명 가운데 일본인 학생 2,981명, 외국인 학생 2,535명으로 대략 1대 1 규모다. 외국인 유학생의 출신 국가는 90개국에 이른다. 외국인 유학생들은 단순 노동력을 제공하며 또 다른 기여를 하고 있다. 영어가 유창하기에 편의점이나 온천장 등 외국인을 응대해야 하는 곳에서 APU 학생들은 인기다. 벳부에 머무는 동안 아르바이트하는 APU 학생을 여럿 만났다. 거리를 걷는 청년 대부분도 APU 학생으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APU와 벳부 시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선순환 상생 모델을 만들었다. APU는 지역이 처한 위기를 타개하려는 벳부 시와 국제화 역량을 확대하려는 리츠메이칸 대학과 이해가 맞아 떨어졌기에 가능했다. 벳부 시는 유치 단계에서 학교 부지와 운영비를 제공하고 행정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APU는 2개 국어(일어와 영어)로 강의를 진행하기에 졸업생들은 취업시장에서 빠르게 팔린다. 100%대 취업률은 APU가 단기간 명문에 오른 비결이다. 학생들은 다국적 문화를 경험함으로써 글로벌 마인드를 익힌다. 좁은 취업문을 뚫어야 하는 우리 학생들을 생각하면 APU가 지나온 길은 부럽다. 유야(湯屋) 에비스 온천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말레이시아 출신 APU 유학생 아흐마드는 “이달 졸업을 앞두고 있으며 도쿄에 소재한 대기업에 취업했다. 지난 4년 동안 APU에서 시간은 행복했다”고 자랑했다. 대학 생활을 행복했다고 추억할 수 있는 리츠메이칸 APU는 ‘특별한 도시’에서 만난 ‘별난’ 대학이다.
    특별한 도시 ‘벳부’에서 만난 ‘리츠메이칸 APU’
    by 임병식
    2025.03.24 16:17:32
  • 박훈 교수가 쓴 ‘위험한 일본책’을 읽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일본인의 친절과 관련해 쓴 대목인데 여러 면에서 공감 갔다. 나 또한 일본을 다니면서 일본인들이 이전 같지 않다고 느끼던 차였다. 박 교수는 ‘불친절해진 일본인’이란 글에서 더 이상 일본인은 친절하지 않다며 경험을 소개했다. 일본 유학 시절 일본인의 친절에 감동했다는 박 교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이 생겼다고 한다. 손님을 대하는 종업원들의 음성 톤과 태도가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감정이 거세된 친절을 ‘사이보그 친절’로 명명하고, 솔직하지 못한 일본의 국민성을 아쉬워했다. 그랬던 일본인들이 반갑게도(?) 많이 불친절해졌다며 반겼다. 박 교수는 이자카야에서 사케 잔을 가득 채워 달라고 했다가 종업원으로부터 레이저 눈빛을 받았다고 했다. 일본에서 손님을 쏘아보는 눈빛은 처음이었다는 그는 불친절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기계적 친절에서 벗어난, 일본 청년세대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선의를 담은 박 교수의 해석에 공감한다. 하지만 눈살을 찌푸릴 만큼 극단적인 불친절을 겪었던 나로서는 마냥 공감하기 어렵다. 근래 일본을 다니면서 ‘이건 아닌데’라고 느꼈던 게 한두 번 아니었다. 우연도 거듭되면 필연이 되고, 실수도 반복되면 악의가 되듯 연이은 불친절과, 무례함은 ‘일본의 친절’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지난해 가을, 도쿄 인근 하코네(箱根)에서 겪은 일은 지금 생각해도 불쾌하다. 유명 온천 관광지인 하코네는 도쿄에서 가까워 연중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하코네 여행은 고라(强羅) 역을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모든 버스와 산악열차가 출발하고 도착하는 곳이 고라 역이다. 나는 종점인 고라 역에서 내려야하기에 벨을 누르지 않았다. 버스가 정차하면 자연스럽게 내릴 생각이었다. 종점에 도착해 내리겠다고 하자 버스 기사는 짜증 섞인 얼굴로 “바가야로(멍청한 놈)”라고 중얼거렸다. 순간 나는 “뭐야? 바가야로?”라고 반문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당황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고 얼버무리며 수습했다. 매일 같은 코스를 운행하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나머지 무심코 내뱉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용납하기 어려웠다. 도쿄 긴자에서 공항버스를 탈 때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버스 타는 줄이 맞느냐는 물음에 중년 여성은 “그렇다”며 차갑게 응대했다. 버스가 출발할 때쯤에서야 그의 불손한 언사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는 출발 시간에 임박해 남편과 딸이 오지 않아 초조했던 것이다. 덮어놓고 친절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불쾌했다. 지난 1월 벳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후쿠오카 공항행 버스 짐칸에 짐을 싣고 탑승하는데 중년 여성은 내가 새치기를 한다며 버스기사에게 격하게 항의했다. 예약석이기에 자신에게 불이익이 없을 뿐더러, 나 또한 새치기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소한 것조차 민감하게 대응하는 그를 보면서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했다. 박훈 교수는 일본 젊은 세대의 불친절을 긍정적인 변화로 받아들였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모두 중년인데다, 불친절과 무례는 정도를 한참 벗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일본의 지방 소도시에서는 감동어린 친절을 수시로 경험한다. 자칫 호들갑스럽다고까지 여겨지지만 ‘친절한 일본’은 긍정적인 자산이다. 이따금 주변에서 일본인의 친절을 ‘본심(혼네)’이 아닌 ‘겉치레(다테마에)’로 폄하하는 이들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러는 당신은 흉내라도 내봤느냐”며 반박한다. 그랬던 일본인들이 변했으니 난감하다. 직접 겪은 사례는 퍽이나 당혹스럽다. 도쿄 등 대도시와 유명 관광지에서 유독 흔하다. ‘사는 게 힘들다보니 각박해졌다.’고 이해하면서도 불쾌한 건 어쩔 수 없다. 무한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속성에서 비롯된 변화가 아닌가싶다. 그들에게 외국인은 더 이상 손님이 아니라 평온한 삶을 깨뜨리는 ‘침입자’일 뿐이다. 나아가 돈 벌이 상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친절에 앞서 짜증부터 나는 것이다. 여기에 동양인을 우습게 보는 국민성도 한 몫했으리라 짐작한다. 우리도 그렇지만 일본 또한 백인 앞에서는 다소곳하지만 동양인은 쉽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한때 식민지였고, 이제는 많은 분야에서 경쟁상대로 떠오른 한국을 얕잡고 경계하는 일본인도 적지 않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지나며 헤매일 때 ‘메이드인 코리아’는 가전제품부터 반도체까지 ‘메이드인 제팬’을 무섭게 대체했다. 그럼에도 일본인의 친절은 여전히 감동적이다. 지난해 가을, 조선 독립운동가 무료 변론에 일생을 바친 후세 다쓰지 변호사와 간토 대지진 와중에 조선인 300여 명을 구한 오카와 쓰네키치 서장을 취재하러 가는 길에 만난 일본인들은 감동적이었다. 그들은 세차를 멈추고, 정원수 손질을 중단한 채 자신들 차로 나를 안내했다. 과도한 친절과 무례한 불친절이 공존하는 일본 사회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친절과 불친절 여부 또한 개인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기에 선입견 역시 경계할 일이다. 다만 나는 가식적일망정 일본인의 친절이 계속되길 소망한다. 습관도 오래되면 태도가 된다. 일본인의 겉치레 친절도 시간과 함께 감동어린 친절로 바뀌었다고 믿는다.
    예전 같지 않은 ‘불친절한 일본인’
    by 임병식
    2025.03.13 10:07:02
  • 잘 차려진 음식도 그릇이 부실하면 맛과 멋을 살릴 수 없다. 기업이나 정부가 공들여 만든 정책·시스템·매뉴얼은 훌륭한 요리 레시피나 다름없지만, 결국 이를 담아내고 완성하는 것은 사람이다. 정책과 시스템은 내용이고, 사람은 그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릇이 기울어져 있거나 금이 가 있으면 아무리 좋은 음식도 흘러내리기 마련이다. 조직이 높은 비용을 들여 완벽에 가까운 매뉴얼을 만들어도, 이를 운영하는 사람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기 힘들고, 심지어 위기 상황까지 초래할 수 있다. 2018년과 2019년에 발생한 보잉 737 MAX 추락 사고는 시스템과 매뉴얼이 아무리 완벽해 보여도 이를 운영하는 사람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잉은 기체의 기수를 자동으로 낮추도록 설계한 조정특성보강시스템(MCAS)을 도입해, 새로운 엔진 설계에 따른 비행 특성을 보완하려 했으나, 내부 보고 체계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았고, 비용 절감에 매달린 나머지 조종사 교육 역시 최소화되었다. 결국 MCAS의 작동 방식과 문제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두 차례 추락 사고가 일어나 수백 명이 희생되고 말았다. 사고 원인 조사 보고서와 이후 드러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만약 보잉 내부에서 위험 신호가 제대로 공유되고 조종사들이 새로운 시스템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받았더라면, 그토록 참혹한 결과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2003년 440만명 수준의 비정규직이 2007년 570만명까지 늘어나자 정치권은 불안정한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009년 2년 이상 초과근무시 정규직으로 전환을 강제하는 비정규직 입법에 나섰다.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지만 국회는 결국 이를 통과시켰다. 그러나 2024년 비정규직 근로자수는 845만명을 넘어서면서 실질적인 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당시의 논란을 되짚어 보면,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에 있다는 의견이 많았고, 단순히 기간 기준으로만 입법하는 것은 한계가 크다는 점을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했었다. 그럼에도 당시 입법을 추진하던 그룹이 표결을 강행하면서 결과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고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길도 한층 좁아졌다. 이처럼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목표와 수단을 정확히 일치시키는 사람들의 지혜, 제도를 본래 취지에 맞게 운용하려는 사람들의 합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도 자체가 오히려 독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반면 준비된 사람들이 제도와 시스템을 잘 활용하면 어떤 결과를 보여줄 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경우도 있다. 2020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각국 보건 당국은 감염병 대응 매뉴얼을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를 제대로 실행한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과학적 권고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앞서고, 현장에 있는 의료진이나 공무원들이 충분히 훈련받지 못한 상황에서 시스템이 아무리 정교해도 소용이 없었다. 반면 한국·일본·대만 등은 달랐다. 전염병 대응 시스템이라는 내용물을 잘 담아낼 만한 그릇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이들은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사태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잇따라 발생한 감염병들을 겪으며, 일련의 방역 지침과 시민들의 행동 요령을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보완해 왔다. 매뉴얼과 숙련된 현장인원은 전세계 치명율이 1%일 때 10분의 1 수준으로 사망률을 억제하여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냈다. 매뉴얼과 시스템이라는 내용물에, 사람이라는 그릇이 견고하게 맞물릴 때만이 훌륭한 결과를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기업과 정부가 정책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제도·시스템·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려면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위험 신호를 누구든 눈치 보지 않고 공유하고 논의할 수 있어야 하고, 담당자들이 반복적인 시뮬레이션과 교육으로 실제 상황을 예측하고 이슈가 발생했을 때 즉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의 제도나 훌륭한 시스템이 마련되어도 올바르게 활용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반대로 아무리 유능한 인재가 있어도 체계적인 매뉴얼 없이 즉흥적으로만 대처한다면 지속가능한 성과는 요원해 진다.
    사람인가 시스템인가
    by 이보형
    2025.03.08 09:00:00
  • 프레임의 시대다.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뉴스가 소비되는 환경은 프레임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게 된다. 정부나 정치권이 이슈를 주도하려면 한 방에 꽂히는 메시지가 필수 요소처럼 여겨진다. 프레임은 복잡한 현안을 쉽게 전달해 대중적 인지와 지지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정책 과정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으로 유명한 프레임 전문가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프레임을 ‘사고 체계를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로 정의하면서 특정 이슈가 강력한 프레임 속에 자리 잡으면, 이를 부정하려 할수록 그 프레임이 더욱 강화되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결국 프레임에 갇힌 대중이나 기업은 대안적 관점이나 다양한 가능성을 배제하고 사안을 바라볼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곧 실질적인 ‘정책 합의’보다 ‘찬반 양극화’를 부추기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쉽다. 단편적인 프레임이 야기하는 부작용은 다양하다. 첫째, 본질 왜곡이다. 프레임을 통해 이슈를 단순화하면 구조적 원인이나 다양한 이해관계가 생략되기 쉽다. 예컨대 코로나19 초기, 방역 실패의 책임을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돌리는 프레임이 확산되면서, 방역체계 자체의 한계나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는 논의가 뒷전으로 밀려났다. 대중의 감정적 반응만 남았을 때, 정작 필요한 방역 대책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둘째, 프레임 경쟁이 조장하는 사회적 갈등이다. 기후변화 정책을 두고 ‘탄소 중립은 불가피하다’와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는 식의 극단적 구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하나의 프레임에 반대 측이 정반대 프레임으로 대응할수록, 정책 전반은 정파적 대립으로 흐르고 대중은 극단화된다. 언론과 소셜 미디어가 이 대립을 부추길수록 건설적인 논의는 점차 사라진다. 셋째, 정책 일관성과 신뢰의 훼손도 큰 문제다. 정치권이 단기적 이익을 노려 프레임을 수시로 바꾸면, 대중은 ‘정책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초기에는 ‘국민 모두를 위한 필수 안전망’이라던 복지 정책이 재정 문제가 대두되자 ‘과도한 국가 개입’이라는 프레임으로 전환된다면, 신뢰는 손상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지나친 정치화로 인한 합의 어려움이 있다. 정책 논의가 본래의 문제 해결 목적에서 벗어나 정당 간 포지션 싸움으로 치닫는 경우, 건설적 토론과 합의 도출은 힘들어진다. 공공 의료 개혁을 ‘사회주의적 의료 시스템’과 ‘시장 자유 침해’라는 이념 논쟁으로만 몰아가면 의료 인프라 개선과 같은 실질적 고민은 뒷전이 되기 쉽다. 이처럼 단편적인 프레임이 초래하는 부작용이 적지 않은 만큼, 이제는 아젠다 세팅을 통해 다층적 논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하나의 정책 과제를 ‘경제·사회·환경·제도’ 등 여러 층위로 나누어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이슈 트리(issue tree) 방식을 활용하면, 극단적 찬반 구도를 벗어나 합리적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 친화'와 '노동자 보호’ 같은 이분법적인 노동정책을 ‘고용 안정성’ ‘노동시장의 유연성’ ‘재정의 지속 가능성’ ‘산업 구조 변화’ 등 세부 이슈를 체계적으로 살펴보는 식이다. 유연한 프레임 설정도 중요하다. ‘사회적 안전망 확충’처럼 단정적인 표현 대신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복지 개혁’이라는 포괄적·개방적 프레임을 제시하면 협상의 여지가 커진다. 여기에 정책 내러티브(Policy Narrative)를 적극 활용해 ‘문제 정의-해결책-기대 효과’의 구조를 갖춘 이야기로 풀어내면 대중이 문제의 맥락과 해결책, 그리고 그 영향까지 연쇄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다. 실행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다층적 협상 구조를 설계해나가는 것이다. 각 단계별로 합의 가능한 부분을 도출해 나가는 점진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 전문가, 기업, 미디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갈등 조정과 중재를 담당할 수 있는 기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결국, 프레임은 한순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도구일지언정, 정책이 교착 상태에 빠지거나 사회적 갈등이 심화하는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기에 ‘프레임 전쟁’이 아니라 ‘아젠다 세팅을 통한 다층적 논의’가 정책실행을 위해 필수적인 프로세스로 자리잡아야 한다. 메시지와 이야기는 늘 강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정책이 실현되려면 프레임을 뛰어넘어 사회적 아젠다를 정책화하는 정교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이 없으면 프레임이 주는 장점은 사라지고 단점만이 남아서 지속가능하고 예측가능한 정책을 만드는 걸 방해만 할 것이다. 결국 좋은 정책은 좋은 프레임에서가 아니라, 충분한 토론과 합의를 통해 탄생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좋은 ‘프레임'이 좋은 정책을 만드는가
    by 이보형
    2025.02.26 13:41:39
  • 겉과 속이 다른 일본인을 이해하는 게 어렵다고 한다. 또 과도한 친절과 모호한 언어습관에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흔히 회자되는 일본인을 규정하는 국민성이다. 부정적인 뉘앙스로 언급하지만 일본인만의 특성은 아니다. 일본인에게서 유달리 이런 정서가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를 배려한 듯싶지만 애매모호하기까지 한 언어습관과 국민성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우리는 그렇지 않을까. 본심과 겉치레 정도로 쓰이는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는 일본인의 특징을 설명할 때 쉽게 인용한다. 권력자나 공권력에 순종적인 일본인과 달리 한국인은 저항 기질이 강하다. 경제대국 중국과 일본을 ‘뙤놈’, ‘쪽바리’로 부르는 나라는 한국인이 유일하다. 또 왕조시대 숱한 민란부터 현대사회 대규모 집회까지 한국인은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국가권력과도 기꺼이 맞섰다. 숨죽이며 순응하는 일본인과 크게 구분되는 지점이다. 일본 전문가들은 혼네(본심)와 다테마에(겉마음), 그리고 과도한 친절을 이해하는 코드로 ‘사무라이 문화’와 ‘와(和) 문화’에서 찾는다. 일본은 1185년 수립된 가마쿠라 막부부터 1868년 붕괴된 에도 막부까지 무려 700년 동안 사무라이가 지배한 칼의 나라였다. 사무라이 집단은 칼을 상시 휴대하고 걸핏하면 사람을 죽였다. 살벌한 사회에서 목숨을 부지하려면 본심을 감춰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하고 싶은 말도하고 장수까지 누리는 사회는 흔치 않다.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따돌림 당한다. 하물며 목숨이 오가는 사무라이 시대, 공동체를 깨뜨리는 튀는 언행은 죽음을 의미했다. 공동체에 순응하는 ‘와(和) 문화’ 또한 겉치레에 능한 다테마에로 이어졌다. 촌락 공동체에서 마을의 질서를 어길 경우 가해지는 집단 따돌림을 뜻하는 ‘무라하치부(村八分)’는 가혹했다. 유령인간으로 취급하는 이지메를 피하려면 싫어도 좋은 척, 과장된 친절을 통해 공동체에 자신을 맞추는 수밖에 없었다. 혼네와 다테마에는 이런 문화적 산물이다.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사무라이 정권, 공동체와 조화를 꾀해야 하는 와 문화는 일본 국민성의 원형질이다. 과도하다 싶은 친절 또한 여기에서 비롯됐다. 칼 든 사무라이 앞에서 살아남는 길은 면종복배와 위장된 친절, 웃음이었다. 본심은 감추고 비위를 맞춰야 생존 확률은 높았다. 일본인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쓰미마센(미안합니다)”은 정말 미안해서가 아니라 무의식적인 언어습관에 불과하다. 일본인들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일에도 “쓰미마센”이라고 한다. 40년 전 처음 일본에 갔을 때는 “쓰미마센”을 진심으로 여겨 주변에 ‘일본은 친절한 나라’라고 했다. 언제부터인지 일본에서 듣는 “쓰미마센”은 공허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는 혼네와 다테마에가 다른 일본인을 쉽게 믿지 말라는 편견으로 확장됐는데, 일본인조차 “쓰미마센”을 정말로 미안하다는 뜻으로 여기는 이가 있을까 싶다. 혼네와 다테마에를 떠올릴 때마다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30여 년 전 가나자와(金澤) 시 초청으로 이시카와(石川) 현을 공식 방문했을 때다. 다다미가 깔린 전통 요정에서 만찬이 있었고, 가나자와 시장은 10분정도 늦었다. 그는 만찬장에 도착하기 무섭게 여닫이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수차례 허리를 굽혀 “쓰미마센”이라며 사과했다. 그는 6선 시장으로서 머리 희끗한 70대 초반이었다. 누구도 그가 예의를 저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 정도는 늦을 수 있다고 여겼기에 우리 일행은 다소 당황했다. 당시 ‘일본인들은 예의가 바르다’고 탄복했는데, 훗날 그때 행동은 보여주기 위한 다테마에는 아니었는지 혼동됐다. 정치인으로서 사무라이 관습대로 사과한 것은 아닌지 싶었다. 아마 사무라이 시대였다면 그는 영주가 주관하는 회의에 늦었다는 이유로 죽음을 피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좀처럼 속내는 보이지 않는 국민성 때문인지 일본인을 친구로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중국인은 첫 만남에서도 “따거(형님)”라며 쉽게 마음은 여는 반면 일본인은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다. 가깝게 지내는 일본인 가운데 주한 일본대사관 소속 외교관들이 있었다. 그들과 나는 매월 돌아가며 식사비용을 부담하며 1년 넘게 만남을 이어갔다. 허물없는 관계라고 여길법했건만 그들과 끝내 호형호제를 못한 채 헤어졌다. 그들은 내 호칭을 “임상”으로 부르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한국을 떠났다. 이따금 SNS를 통해 안부를 주고받지만 끈끈한 인관관계를 중요시하는 한국인으로서는 왠지 허전했다. 대학 시절 연수 때도 느꼈지만 선을 넘지 않는 평행선을 유지는 일본의 국민성을 거듭 확인한 계기였다. 그들이 나를 다테마에로 대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전 주한 일본대사 또한 기억에 남는 관료다. 그가 대사로 있을 때 정세균 전 총리와 오찬을 주선했다. 아이보시 대사는 리모델링한 일본대사관도 소개할 겸 솜씨 좋은 일본 요리사가 만드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 측은 일본대사관에서 오찬이 불러올 구설을 우려한 나머지 다른 장소를 제안하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이후 다시 잡자고 했으나 본국으로 귀국하는 바람에 지키지 못한 약속으로 남았다. 한국 근무만 세 차례, 우리말이 유창한 아이보시 대사는 외교가에 이름난 친한파다. 여러 자리에서 한국에 대한 그의 진심을 숱하게 접했기에 나는 한국에 대한 그의 혼네를 의심치 않는다. 오히려 반일정서를 의식해 오찬 장소마저 흔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 우리가 다테마에는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한국인의 저항정신과 겉치레 또한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쓰미마센'의 뿌리 '다테마에'
    by 임병식
    2025.02.23 08:07:38
  • 대선 때만 되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대선 캠프이다. 대통령의 꿈을 갖고 있는 정치인들은 선거 즈음하여 정책 공약의 개발과 선거전략의 수립을 위해 캠프를 차린다. 캠프라 부르는 이유는 임시로 마련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고산 정복을 위해 등반가가 꾸리는 베이스캠프와 같다. 이런 캠프에 대선 후보가 직접 관여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무실 운영에 소요되는 비용을 조달하고 사람 관리하는 것이 번거로워 후보가 할 일이 아니다. 불나방처럼 자원자가 많이 몰려들어 구성이 잡다한 캠프에 후보가 깊이 개입하면 불필요한 잡음이나 구설에 휘말릴 수도 있다. 어차피 대선 한 철에만 생겼다가 없어지는 소모품인 캠프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낙선하면 소용이 없고, 당선되면 부담이 되는 조직이다. 그러니 후보로서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측근을 통해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상 한 후보가 여러 캠프를 거느린다. 유력한 후보일수록 캠프가 많이 만들어진다. 주로 국회의원, 장·차관, 교수 출신의 친위계 인사가 좌장 노릇을 하며 하나씩 캠프를 맡아 세력 확대에 기여한다. 대선은 입신양명을 노리는 기회주의자들에게 큰 장이 열리는 ‘대목’이다. 대선 후보와 연분을 쌓아 고속출세할 수 있는 지름길이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것이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보의 캠프에 이름을 걸어 놓으면 논공행상에 끼어 한자리 받을 수 있다. 로또보다 당첨 확률이 높다. 당연히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의 캠프가 늘어나고 문전성시를 이룬다. 유명 브랜드의 인기 아파트 분양 현장에 떴다방이 난립하고 대박을 노리는 투기꾼들이 몰려들 듯이 말이다. 문제는 떴다방과 같은 캠프에서 만들어지는 공약이 날림으로 급조된다는 것이다. 대선 공약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국가를 어떻게 이끌고 나가겠다는 정책에 관한 약속이다. 당선자의 대선 공약은 차기 정부의 국정과제로 채택돼 우선적으로 추진된다. 부동산, 세금, 노동, 환경, 에너지 등에 관한 공약은 경제정책으로 전환되어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부 부처와 공공 기관은 대선 공약 과제에 예산과 인력을 집중해 달성도를 높이고자 노력한다. 국민들은 이런 공약과제가 탐색되고 수립되는 과정이 매우 체계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몇십 년 동안 여러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과 해외 사례를 치밀하게 살펴보고 치열한 토론을 거쳐 정교한 공약이 개발될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 후보를 둘러싼 캠프 간에 연계나 협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협력보다 경쟁 관계가 두드러진다. 캠프의 인력 구성이나 운영 방침은 좌장에 따라 다르며 좌장들은 후보의 주목을 받아 실세로 떠오르기 위해 경합한다. 대권을 노리는 후보의 주변 캠프들 사이에서도 작은 권력 투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조율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캠프 안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공약을 논의할 때 각자 자기가 내세운 정책 과제가 부각되도록 애쓴다. 다른 사람이 새롭고 신선한 정책을 발표하면 마치 논문 심사하듯이 조목조목 비판하며 흠집을 내려 한다. 사실 대선 공약을 개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이미 알려졌거나 이전 정부에서 이행한 정책은 신선도가 떨어진다. 다른 후보의 공약과 유사하면 차별성이 약하다. 과거와도 다르고 남과도 다르면서 유권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공약을 개발하려면 골머리가 아프다. 이미 다 파먹은 금광을 더 깊게 파서 금맥을 찾는 것과 같다. 그래서 캠프마다 정책의 연관성이나 실효성보다 차별성을 더 중요시하며 무엇인가 톡톡 튀는 공약과제를 발굴하는 데 주력한다. 그러다 보니 현실과 동떨어진 공약이 나오기도 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한 후보가 서로 상충하는 공약을 주장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요즘 대선 주자 선호도 1위인 원내 제1당의 대표가 ‘기본소득’에서 ‘기업성장’으로 서로 대립되는 정책을 주장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원래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 원을 주는 민생회복지원금을 강조하다 갑자기 첨단기술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 6개를 만들어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주52시간 근무 예외’를 포함한 ‘반도체특별법’도 통과시키지 못하면서 삼성전자급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구호는 코미디라는 취급을 받았다. 지지층의 확장을 위해 새롭고 다양한 메시지를 제시하는 것은 이해된다. 그래도 상충된 공약을 쏟아내 갈팡지팡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상하다. 아마 기본소득파와 신성장파 등 각기 다른 캠프에서 제안한 공약을 한꺼번에 던지다 보니 충돌이 난 꼴이 아닌가 싶다. 이전 정부에서도 엇나가는 정책들을 동시에 추진해 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많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가 혼재되는 양상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둘 다 추구하려다 어느 것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도 의료, 교육, 노동, 연구개발, 부동산 등의 정책에서 오락가락하다 국민의 지지를 잃고 총선에서 패배해 자멸했다. 결국, 한 정당이 계속 집권하지 못하는 근본적 원인은 어설픈 정책의 실패에 있다. 대통령은 한번 하고 물러나면 그만이다. 정당이야 서로 번갈아 정권을 잡으면 된다. 그러나 그 시행착오의 대가로 경제가 망가져 민생고에 시달리는 국민만 불쌍하다. 한 나라의 명운을 좌지우지하는 대선 공약이 졸속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니 한숨만 나올 따름이다.
    떴다방 대선 캠프의 '급조 공약'
    by 임채운
    2025.02.22 08:00:00
  • 살기 좋은 정주 공간과 쾌적하고 여유로운 농촌다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공간정비사업이 몇 년째 진행 중이다. 이달초 2025년도 1차 신규 지원 대상 지구 12곳이 선정돼 새롭게 변모할 농촌 공간 조성지역에 대한 기대가 크다. 악취·소음 발생, 오염물질 배출 등 주민 삶의 질을 저해하는 난개발 시설을 정비·이전해 주민들을 위한 쉼터나 생활시설을 조성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이러한 변화들로 ‘농촌다움’이 보존되고 경관의 시각적 효과와 환경의 쾌적성, 농업의 다양한 가치 부각과 경제적 부활로 생활 서비스는 높아지고, 삶의 질은 향상될 것이다. 이와는 다르게 전남 영광군 묘량면은 또 다른 현재 농촌 모습을 대변한다. 2007년부터 17년간 지역의 고령 농민들과 공동 영농을 통해 소득 분배를 해 온 사회적 농장 ‘여민동락공동체’가 작년 12월 휴경을 결정했다. 설립 당시 평균 연령 72세의 농민들이 2023년 평균 연령 78.5세로 고령화가 주된 원인이었다. 청년층의 유입이 없는 정주민의 고령화는 ‘마을의 절멸’로 이어진다. 농촌 관련 정책 설계에 대한 주도권이 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와 현장으로 옮겨지면서 ‘농촌 지역 공동체’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지역의 문제를 논의하며 그에 필요한 일을 실행할 귀농·귀촌에 가치 지향적인 젊은 일꾼의 필요성은 절실하고, 이들의 정착에 필요한 안정적인 주거 공간 확보는 큰 숙제이다. 시골에서 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로 정부의 빈집 개보수 정비사업이 시행되고 있지만, 현장 실정은 녹록치 않다. 농촌 공간 정비사업을 통해 기능을 상실한 채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농촌 지역의 각종 시설 공간들을 다양한 규모의 주거 공간으로 재구조화해 부족한 주거 공간 해소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 일에 마을 공간 계획을 성공시킨 독일의 비트브르크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트브르크는 농림산업이 주축인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50년간 농민 90%가 감소했지만, 주민과 정보 교류를 통한 마을 공간계획의 효과로 12년 동안 약 10% 인구가 늘어나는 대반전을 이루었다. 234개 마을 중 180여 개 마을은 인구 500명 이하이고, 전체 마을의 절반은 주민 200명을 넘지 않는다. 이들은 다시 돌아오게 하는 농촌을 만들고 마을을 재생시키기 위해 주민들과 논의하며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하나씩 개선해 나갔다. 문화재로 지정된 주택의 전통을 살리면서 시설 이용이 편리하도록 기능 개선에 초점을 맞춰 정비된 도로 등은 쾌적함으로 찾는 이들을 환경에 매료시켰다. 농촌 마을 공간계획 실행으로 뛰어난 정주환경과, 영유아 보육에서부터 양로원 등 노인 돌봄의 사회적 공동체가 활발한 비트부르크 프룀 지역의 사례가 이번 농촌 공간 정비사업의 신규 지원 대상 지구에 선정된 12곳에 선기능(先機能) 요소로 적용되기 바란다. 또한 농업 현장에 AI 신기술이 도입된 상황 속의 농촌다움의 모습과 미래세대가 생각하는 농촌다움의 모습들이 주민의 공감을 통해 반영된 설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물성매력(Experienceing the Physical: the Appeal of Materiality)의 물성(物性·Materiality)은 사전적으로 '물질이 가지고 있는 성질'을 뜻한다. AI로 인해 힘들이지 않고 쉽게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간편한 세상, 디지털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실제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물성에서 감성적 매력을 느낀다. 농촌 마을 공간 재생에 지역 특산 건축 재료들이 활용되고, 건물과 자연환경이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 친화적 설계를 적용하여 전통과 현대 기술의 융합으로 마을의 전통과 문화가 이어지고, 생활의 편리함이 증가하는 주거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다양한 자연의 재료들을 통해 촉각적, 시각적 경험을 제공함으로 물리적 감각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공간조성으로 농촌에서 거주의 기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매력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지역 특성과 창조적 상상력이 융합된 농촌다움의 환경 조성은, 봄이면 우리 대한민국 농촌에 살구꽃 복숭아꽃이 만발한 물성매력의 성지가 될 것이다.
    복숭아꽃 살구꽃 피는 '물성매력' 농촌
    by 조금평
    2025.02.19 16:56:34
  • 지난주 미일 정상회담 직후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의 ‘아부 외교’가 화제가 됐다. 뉴욕타임스는 “이시바 총리는 트럼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저항’ 대신 ‘아부’를 택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에 대한 첫인상을 묻는 질문에 이시바 총리는 “TV에서 본 유명인을 직접 만나게 돼 기뻤다”면서 “무섭고 강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생각했는데 매우 진지하고 강력하며 미국과 전 세계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며 한껏 치켜세웠다. 외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은 귀에 걸렸고, 회담 내내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아부’라는 단어를 중립적 의미로 사용했다. 국제무대에서 듣기 좋은 말로 환심을 사는 이유는 국익을 위해서다. 칭찬을 마다할 정치인은 없기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유효한 외교 수단이다. “일본에 전할 메시지는 무엇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을 사랑해요”라고 했다니 아부 외교는 남는 장사였다. 외신과 달리 국내언론은 이시바 총리의 외교적 수사를 다소 부정적 뉘앙스로 전했다. 동일한 사안을 전하면서도 일본 이슈라면 무조건 비판부터 하고보는, 국내 정서를 뛰어넘지 못한 관성에서 비롯된 보도였다. 정도를 넘어선 외교적 수사는 자칫 굴종으로 비춰질 수 있기에 신중해야 하지만 국익을 위한 것이라면 어느 정도 용인할 수밖에 없다. 이시바 총리의 ‘아부’는 치밀한 준비를 바탕으로 한 실리외교라는 점에서 많은 걸 시사한다. 일본 외무성은 아베 전 총리의 부인을 지난해 12월 마러라고에 보내 트럼프와 대화 물꼬를 열었다. 이어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을 통해 1,000억 달러(약 145조원) 투자 선물 보따리를 제공함으로써 장사꾼 트럼프를 효율적으로 공략했다. 사소한 것 같지만 황금 투구 선물 또한 면밀하게 계산된 결과물이다. 투구를 제작한 곳은 이시바 총리의 고향 돗토리 현이고, 주문 시기는 지난해 11월이니 트럼프 당선 직후부터 준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정상 외교가 멈춘 한국 상황에서 일본이 대미 관계를 선점한 건 아픈 대목이다.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 일본의 실리외교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시바 총리는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 달 전부터 공부 모임을 갖는 등 치밀하게 준비했다. 외무상을 지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물론 외무성·경제산업성 간부들과 함께 ‘트럼프 식 맞춤형’ 문답을 만들고, 또 지난 30년 동안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가 감소하고 있음을 표로 정리해 제시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나 설득됐는지는 몰라도 향후 미일관계를 예상할 수 있다. 자세를 낮추는 일본 외교는 일본인 특유의 치밀함을 반영한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할복도 마다하지 않는 사무라이 문화를 미덕으로 삼는 일본에서 아부는 계산된 행동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부하로 있다가 권력을 손에 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화가 상징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겨울날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의 신발을 품고 있다가 따뜻한 신발을 준비했다는 이야기는 일본사회에서 아부가 아닌 미담으로 회자된다. 히데요시의 행동은 주군을 위한 충성이며, 훗날 히데요시가 권력을 잡은 이유마저 여기에서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러니 진영을 떠나 이시바 총리의 언행을 시비할 일본인은 없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자존심마저 내려놓는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패전 이후 빛을 발했다. 미군정하에서 시게미쓰 마모루 외무상은 맥아더 극동사령관의 비위를 맞춰 미군 직접통치에서 간접통치로 전환시켰다. 이로써 일본은 경제 부흥에 집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 일본은 미국과 코드를 맞춰 정상국가로 이행이라는 실리를 취했다.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1951년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한 뒤 안전보장은 미국에 맡기고 경제부흥에 집중하는 ‘요시다 노선’을 1980년대 초까지 견지했다. 이런 기조 아래서 이케다 수상 재임 당시 일본 경제는 9~10%대 고도성장을 달성하며 GATT와 IMF, OECD에 가입하며 사실상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패전 19년 만인 1964년, 도쿄 올림픽까지 치른 배경에는 스스로를 낮춘 외교가 있었다. 일본이 록펠러센터와 콜롬비아 영화사를 매입하고 대규모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면서 미국이 일본 때리기에 나서자 일본은 다시 엎드렸다. 일본은 ‘플라자 합의’에 이어 1985년 ‘마에다 리포트’를 토대로 10년 간 430조 엔에 달하는 재정지출과 미국 내수 시장 확대를 뒷받침했다. 또 경제구조를 바꾸고 시장을 개방하라는 미국의 압박을 따랐다. 당시 협상 항목만 200개에 달해 굴욕적이라는 비판이 없지 않았지만 일본은 힘의 역학 관계를 인정하면서 보통국가로 보폭을 넓혔다. 이 결과 일본은 미국에 의존하던 국가안보에서 벗어나 자국이 공격 받거나 동맹국이 요구하면 군대를 파견하고 전쟁에 참여하는 보통국가로서 지위를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일본 외교는 철저하게 실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시바 총리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과 협력이 미국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 트럼프를 추켜세울 것,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준비했다. 나아가 정적이었던 아베 전 총리의 외교 방식까지 수용했다. 일본을 따라할 필요는 없지만 아부라고 폄하할 일도 아니다. 자신을 한껏 낮추는 일본 외교는 그런 기회조차 갖지 못한 한국 정치를 돌아보게 한다. 과시용 허세를 내려놓고 국익을 위해 아부를 자처하는 일본 정치를 주목한다. /서경IN
    이시바 총리의 계산된 '아부외교'
    by 임병식
    2025.02.15 11:33:28
  • 정경유착(政經癒着)이라 하면 어둡고 음침한 냄새를 풍긴다. 사전적 정의로 정경유착은 정치와 경제가 밀착된 현상을 의미한다. 현실에서는 정치인과 기업인의 이해가 얽혀 야합하는 부도덕한 밀착관계를 지칭한다. 정경유착의 장면을 연상하면 밀실에서 권력자와 재력가가 은밀히 만나 돈 봉투를 주고받거나 지하주차장에서 차 트렁크에 돈다발이 든 사과박스를 옮기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과거 개발독재 시대에 정치인은 기업인에게 경제적 이권을 부여하고 그 반대급부로 정치자금을 제공받았다. 지금은 정치인과 기업인의 은밀한 금전 거래는 불법이다. 정치인이 직접 기업인에게서 돈을 수수하면 부정부패로 형사처벌된다. 심지어 본인이 아니고 가까운 지인이 금품을 받거나 이득을 취해도 경제공동체라는 죄목으로 처벌 대상이 된다. 당연히 정경유착은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낙후된 관행이라 여겨진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전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아니다. 우리보다 더 노골적이다. 미국의 기업인들은 대선 후보 캠프에 엄청난 금액의 정치자금을 기부한다. 경제잡지 ‘포브스’(Forbes)는 지난 미국 제47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후보에 기부한 억만장자(순자산 10억 달러 이상)가 각각 81명, 52명이라고 조사했다. 블룸버그 기준 세계 부호 1위인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 캠프에 1억3000만 달러(약 1800억원)를 기부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대표적 억만장자인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해리스 캠프에 5000만달러(약 700억원)를 후원했다. 일론 머스크는 정치자금 지원을 넘어 러닝메이트처럼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머스크는 트럼프와 함께 미국 전역에 유세를 다니며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경합주의 보수 유권자 등록을 장려하기 위해 100만 달러의 ‘복권 행사’까지 주최해 법적 소송에 휘말리기도 하였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축하행사에서 춤까지 추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지명되어 실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대기업 회장이 일론 머스크처럼 특정 후보를 전폭 지원하며 대통령 선거판에 뛰어들었다가는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정당의 비난 성명, 국회 청문회 소환, 언론의 비판. 시민단체의 반대시위가 폭풍처럼 몰아쳤을 것이다. 다른 대선 후보의 지지자들이 불매운동을 벌이고 노조도 파업을 선언해 기업이 거덜 났을 것이 분명하다. 기업인이 살짝 정치에 관한 의견만 표명해도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SNS 활동을 활발히 하여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렸던 어느 젊은 재벌 경영자는 정치적 성향의 글을 올렸다가 거센 비난 공세에 시달려 SNS를 끊었다. 국가 대표급의 유명 원로 가수는 작년 12월 은퇴 공연에서 오른팔과 왼팔에 비유하며 이념적 대립을 비판하는 발언을 한 것이 시대정신에 어긋난 양비론으로 맹공격을 받아 곤욕을 치렀다. 기업인이나 연예인은 사회적 공인으로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는 정서가 강하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일론 머스크의 정치 참여에 관해 별 반응이 없다. 머스크 때문에 가장 피해를 본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카멀라 헤리스가 공개적으로 머스크의 트럼프 지지를 비난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공화당은 머스크가 불법으로 선거에 개입했다고 검찰에 고발하지도 않았다. 테슬라 본사 앞은 조용하고 테슬라의 전기차는 거부감없이 잘만 팔린다. 머스크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 기사는 대선 개입보다 극우적 발언과 행동에 초점을 둔다.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식 축하 집회에서 무대에 올라온 머스크는 연설 도중에 팔을 곧게 뻗어 ‘파시스트 경례’를 연상시키는 손동작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독일에서는 한 달 내로 다가온 독일 총선에서 머스크가 극우 독일대안당(AID)에 대한 지지성명을 공개한 것에 반발해 테슬라 전기차를 구매하지 않겠다는 소비자들이 등장했다. 미국에서도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해 X(엑스)로 사명을 변경할 때 트위터 충성파들이 테슬라 전기차 불매운동을 벌였다. 일론 머스크는 워낙 돌출적으로 행동해 여론을 몰고 다닌다. 남의 이목이나 사회 통념을 무시하는 개인적 성향 때문에 욕을 먹지만 대통령 선거 참여로 비난받지는 않는다. 빌 게이츠가 머스크는 똑똑한 사람이지만 정치 개입은 비정상이라고 쓴소리한 정도가 두드러진 비판이다. 일론 머스크는 원래 민주당 지지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 아들이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것에 충격을 받고 성적 자유를 주장하는 민주당을 버리고 공화당으로 돌아서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일론 머스크는 이념, 권력, 이권 모두를 다 챙겼다. 기업인이 이렇게 정치에 올인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러고서도 기업이 잘 돌아가는지 의문이다.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면 보복당하지 않을까 불안하지도 않은지 궁금하다. 미국인들은 기업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개인적 선택이며 권리라고 인정해 주는 것 같다. 기업인의 정치 참여와 경영 활동을 분리해 접근한다. 기업인도 다른 유권자처럼 게임의 규칙을 지키며 선거에 참여하면 별 문제없다고 간주한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국보다 더한 미국식 정경유착
    by 임채운
    2025.02.01 06:05:00
  • 다음 달 16일이면 윤동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80년이 된다. 영정 속 학사모를 쓴 시인의 모습은 흔들림 없는 청춘이다. 윤동주가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운데 한 명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우리 세대 모두는 ‘서시’를 읽으며 젊은 날을 지나왔다.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고뇌로 점철된 고백이다. 일본 규슈 후쿠오카(福岡)는 윤동주가 마지막 생을 보낸 곳이다. 윤동주는 고종사촌 송몽규와 함께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1943년 7월 체포됐다. 2년형을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된 둘은 이곳에서 마지막 1년 7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육첩방(六疊房) 남의 나라’에서 2월 16일, 3월 7일 차례로 숨졌다. 아직 냉기가 채 가시지 않은, 광복을 반년 남겨 놓은 때였다. 두 사람은 태어난 곳도, 자란 곳도, 죽음을 맞은 곳도, 묻힌 곳도 같다. 중국 길림성 용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함께 했고 서울 연희전문을 다녔다. 또 일본에서 유학을 했고 중국 용정에 나란히 묻혔다. ‘시인 윤동주 지묘’와 ‘청년문사 송몽규 지묘’는 100m 떨어진 지척에 있다. 윤동주는 그해 3월 6일 장례를 치렀다. 송우혜는 ‘윤동주 평전’에서 “그날따라 봄을 시샘하는 눈보라가 몹시 날려서 동주의 유골을 땅에 묻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춥게했다”며 시린 그날을 묘사했다. 후쿠오카에 갈 때마다 이따금 구치소에 들리는데, 매번 뭉클한 감상에 젖는다. 아들 또래 청년들이 한창 나이에 죽음을 맞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지금은 구치소로 바뀌었지만 후쿠오카 형무소는 악명 높았다. 구치소 건물은 전혀 생각지 못한, 주택가와 인접해 있다. 우리 같으면 혐오시설이라며 이전 요구가 빗발쳤을 게 분명한데 그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싶었다. 국가에서 하는 일에 웬만해서 반기를 들지 않는 일본인 특유의 순종주의가 묻어 있다. 두 사람의 공식 사인은 병사(뇌출혈)지만 생체실험 사망설도 꽤 설득력 있다. 가장 먼저 생체실험 사망설을 제기한 이는 일본인 고노 에이치(鴻農映二)다. 한국에서 문학을 전공한 문학평론가 고노는 1980년 ‘현대문학’ 10월호 ‘윤동주, 그 죽음의 수수께끼’에서 생체실험 도중 숨졌을 가능성을 맨 처음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전쟁 말기, 일제는 모자란 피를 충당하기 위해 혈장을 대신해 생리식염수를 주사하는 실험을 했는데, 실험 도중 사망했다는 것이다. 두 가지 근거를 들었다. 첫째 ‘규슈제국대학에 해부용으로 제공함’이라는 전보, 둘째 면회 자리에서 송몽규가 했다는 말이다. 해부용 운운은 실험 도중 숨졌음을 추정케 하며 “매일 이름 모를 주사를 맞고 있다”라는 송몽규의 말 또한 정황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이후 생체실험 사망설은 음모론을 넘어 어느 정도 구체화됐다. 미국 정부기록보존소(NATRA) 자료도 그중 하나다. 전후 연합군은 규슈제국대학 의대교수 5명을 전범 재판에 기소했는데, 미군 전투기 조종사 8명을 생체 해부한 혐의였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미군 포로의 장기를 적출하고 ‘바닷물 주사’를 꽂았다. SBS방송(2009년 8월15일)도 미국 국립도서관 기밀문서를 확인해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규슈제국대학이 후쿠오카 형무소 재소자를 상대로 바닷물 수혈 생체실험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조선일보 또한 2015년 4월 6일자 ‘이 끔찍한 짓을 우리가 했습니다, 미군 생체실험 규슈의대의 반성’이란 기사에서 미군 포로 생체 해부에 참여했던 일본인이 마이니치신문에 털어놓은 증언을 실었다. 19살 의대생 신분으로 실험에 참여했던 노인(2015년 89세)은 “당시 대학은 군을 거역하지 못했다. 산 채로 미군 장기를 적출했다. 또 혈관에 바닷물을 주입했다. 전쟁이 만든 광기였다”고 증언했다. 규슈대학 또한 2015년 4월 교내에 의학역사관을 개관해 미군 포로 생체 해부 사건을 기록한 전시물을 비치하고 추모 공간을 설치함으로써 생체 실험설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생체 실험 사망 의혹은 후쿠오카 형무소 사망자 추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옥중 사망자는 1943년 64명에서 1944년 131명, 1945년 259명으로 급증했다. 종전에 임박해 대규모 생체 실험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단기간 급증한 옥중 사망자를 설명할 도리가 없다. 일본 정부는 80년 넘게 불편한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전후 일본 지식인과 시민들은 윤동주 시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참회하는 일에 적극적이다.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은 1994년 이후 30년 넘게 윤동주 시를 낭송하며 그를 기리고 있다. 이들은 매년 2월 16일 후쿠오카 구치소 옆 뜰에서 윤동주의 시를 읽으며 속죄한다. 니시오카 겐지(西岡健治)·80) 후쿠오카현립대 명예교수는 오랫동안 윤동주 시비 건립을 추진했다. 비록 좌절됐지만 그는 10년 가까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혼신을 다했다. 윤동주 묘를 처음 세상에 알린 이 또한 일본인 오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 전 와세다대학 명예교수다. 그는 1985년 5월 용정 동산교회 묘지에서 윤동주 묘를 발견했다. 그가 없었다면 윤동주가 우리 곁에 오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을지 모른다. 마스오 교수는 2023년 90세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윤동주와 한국문학’, ‘조선의 혼을 찾아서’를 통해 한국과 일본사회에 윤동주를 알렸다. 아부라야마 강과 무로미 강은 후쿠오카 구치소에 이르러 합류한다. 이곳 두물머리에서 동해까지는 1km 남짓이다. 지난 가을, 그곳 소나무 숲에서 윤동주와 송몽규를 떠올렸다. 그들도 차가운 감방에서 파도 소리를 들었을까,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 조선 청년의 죽음을 애도하며 일본 정부의 무심함을 탓했다. 다시 윤동주 서거 80주년을 맞아 군국주의 어두운 그림자와 양심적인 일본 시민 사이에서 일본 정부의 자세를 묻는다.
    윤동주 서거 80주년과 일본의 자세
    by 임병식
    2025.01.25 00:05:00
  • 올해는 한국과 일본 양국에게 뜻깊은 해이다. 1945년 광복(일본은 종전)으로부터 80년,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60년 되는 해이다. 그동안 양국에는 숱한 일이 있었다. 맑은 날과 흐린 날이 교차하듯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지금도 양국 관계는 언제 깨져도 조금도 이상할 것 없는 유리그릇이다. 말끔히 정리되지 못한 과거사를 머리에 둔 까닭이다. 특히 피해자로서 한국인에게 과거사는 인화성 높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우리 인식의 기저에는 일본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깊게 깔려 있다. 광복 80년이 흘렀지만 수도 한복판에서 10년째 위안부 소녀상 철야 농성이 이어지고 ‘토착왜구’라는 말이 상대를 제압하는 유용한 기제로 통용되는 게 그렇다. 2023년 1인당 GNI(국내외에서 벌어들인 평균 소득)에서 한국은 처음으로 일본을 제쳤다. 가구당 순자산과 수출액도 일본을 앞질렀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은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18계단 앞섰다고 발표했다. 문화 분야에서도 K팝을 비롯한 K콘텐츠는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양국을 오가는 연간 방문객은 1000만 명을 넘어선지 오래됐다. 지구상에 이런 두 나라는 없다. 일본을 찾는 외국인 가운데 한국인은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2024년의 경우 11월까지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3338만 명 가운데 한국은 795만 명으로 23.8%를 차지했다. 네 명 가운데 한 명꼴로 한국사람인 것이다. 도쿄와 교토, 오사카, 후쿠오카는 물론이고 일본 소도시까지 우리 젊은이들로 북적일 정도다. 2030세대의 70%는 일본에 호감을 갖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경제와 문화에서 성과에 바탕을 둔 자신감으로 이해한다. 대한민국은 80년 전, 일제에서 해방된 나약한 한국이 아니다. 예전에 일본이 알던 한국이 아니라는 말이다. 광복 80년은 변화한 위상에 걸맞은, 자신감에 바탕을 둔 대일관계를 세우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과잉 민족주의가 넘치고, 일본 이슈에는 쉽게 흥분하고 분노한다. 개인 관계에서도 그렇듯 먼저 화내고 목소리를 높이는 쪽에 허점이 많다. 분노는 냉정해야할 때 눈을 가린다. 한일 양국에는 한일관계를 악용하는 편협한 세력이 있다. 이들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동을 멈추지 않는다. 그 끝에는 끝없는 불신과 적대감이 있다. 청년세대는 당당한데 끝없이 피해의식만 자극한다면 무책임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5년 일본 방문에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하며 “한국과 일본 사이에 불행한 역사는 짧고 좋았던 때가 훨씬 길었다”며 전향적인 한일관계를 당부했다. 이후 한류는 일본 열도를 뒤덮었다. 앞서 조선통신사는 200여 년 동안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BTS와 블랙핑클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린 문화사절단이었다. 하지만 한일관계는 여전히 불안하고 삐걱댄다. 광복 80년, 국교 정상화 60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30년을 맞는 2025년은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기 좋은 해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두 나라는 어쩌면 가장 서로를 모른다. 불행한 과거는 용서하되 잊지 않는 자세를 견지할 때 미래 지향적인 한일관계도 열리리라 믿는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선진 7개국만 가입하는 ‘5030클럽’ 회원 국가이다. 이 중 제국주의를 경영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은 여러 지표에서 일본에 앞서 있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 우위도 확보하고 있다. 청년세대는 도덕적 우위와 경제, 문화에서 우위를 토대로 일본과 함께 동아시아 경제와 민주주의를 리드할 주인공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에 따라 동아시아 질서는 급격한 재편을 예고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우리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불행한 과거에 대해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라는 모습을 보일 때 한국은 국제사회의 성숙한 일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 박철희 주일 대사는 서울대 교수 재임시절 한 토론회에서 “일본 문제는 가만히 있으면서 여론에 편승해 비판만 하는 게 가장 편하다”는 말로 한국 사회의 곤혹스러움을 토로한 바 있다. 비판과 비난이 두려워 침묵하는 사회는 희망도 기대도 없다. 성숙한 토론이 실종된 사회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자각증세 없이 서서히 죽음을 맞는 당뇨병 환자와 같은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미셀 오바마는 “그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했는데 한일관계에도 적용해볼 만하다. 일본을 도덕적으로 굴복시키는 품위와 관용을 떠올려본다. 일본을 찾는 외국인 4명 가운데 1명은 한국사람인 시대, 일본은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는 나라이다. 그렇다면 흥분과 분노를 내려놓고 긴 호흡에서 미래에 시선을 둬야 한다. 지난 40여 년 동안 100차례 넘게 일본을 다녔고, 최근 2년 동안은 과거사와 관련된 현장을 집중적으로 다녔다. 최남단 가고시마(鹿兒島) 이부스키(指宿)에서 최북단 홋카이도(北海道) 왓카나이(稚內)까지 일본 열도를 종으로 횡으로 오가며 불행한 과거를 직시하는 한편 전후 일본세대가 보여주는 진솔한 움직임을 살폈다. 대학생 자격으로 처음 일본에 발을 디딘 뒤 언론인, 정치인, 대학 교수로 신분이 바뀌었다. 제 시선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뒤따랐다. ‘임병식의 일본, 일본인 이야기’는 한계에 갇힌 양국 정치인들의 정치언어를 뛰어넘어 균형을 이야기한다. 참회와 반성의 토대 위에서 군국주의 망령과 싸우고 있는 시민모임은 원천이다. 일본은 종단거리만 2895km(도쿄 경유), 2700km(가나자와 경유)에 달하며 남한 면적 네 배에 달한다. 매주 저와 함께 ‘섬나라 왜놈’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일본과 일본인을 만나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모색하길 기대한다.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의 조건
    by 임병식
    2025.01.07 14:32:05
  • 후진국 중 가장 빠르게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나라, 그 대한민국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작금의 현실과 사태로 볼 때 디스토피아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이니 말이다. 특히 농촌은 더욱 그러하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에다 기존 인구의 도시 유출까지, 거기에 문화와 교육과 의료와 복지의 사각지대가 너무 많아 생활의 불편 요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원래 농촌은 자연친화적 환경과 더불어 상생의 공동체가 살아있는 우리네 삶의 현장이었다. 농촌은 단순히 도시의 배후지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적 삶의 구현공간, 도농상생의 융합공간 그리고 기후위기 대응의 대안공간이 될 수 있는 곳이다. 농촌은 항상 우리 곁에 있었으나 우리가 잊고 있던 ‘유토피아’가 될 수 있는 곳이다. 농촌유토피아란 먹고 사는 걱정이 없고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한 농촌을 말한다.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문화적 삶을 누릴 수 있는 곳이며, 개인의 자아실현을 향한 노력이 공동체의 발전과 자연스레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농촌이 이런 유토피아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일자리, 주거, 의료, 복지, 교육, 문화 등의 융복합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물론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도시에서 이런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농촌에서는 가능할 수 있다. 충남 홍성의 홍동면이나 경남 함양의 서하면이 유토피아 성공사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런 유토피아를 만드는데 있어 관(官)이 아니라 민(民)이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소위 관제 유토피아는 성공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깨어있는 민이 창조적 상상력으로 기획하고 지역주민이 공동체로 함께 할 때 유토피아는 성공할 수 있다. 물론 민이 먼저 씨앗을 심고 발아를 시키면 관이 도와주어야 한다. 이른바 선민후관(先民後官)이다. 이것이야말로 민관협치의 정석이고 또 지속가능한 모델이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스코틀랜드의 핀드혼 공동체나 호주의 크리스탈 워터스 그리고 인도의 오로빌 공동체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가까이는 일본의 가미야마 마을이 있다. 모두 민이 중심이 되어 만들고 성공한 곳이다. 그러면 유토피아(Utopia)와 유토피아(有土彼我)는 무엇이 다를까? 토머스 모어의 ‘Utopia’는 ‘어디에도 이루어질 수 없는 곳’, 즉 이상향이다. 반면 ‘有土彼我’는 ‘당신과 나 사이에 흙(자연)이 있는 곳’, 바로 농촌이다. 농촌이되 그냥 농촌이 아니라 ‘사람이 살만한 유토피아적 요소를 갖고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런 농촌형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2020년에 농촌유토피아연구소가 만들어지고 이어 2021년에 농촌유토피아대학원이 만들어졌다. 시대정신에 맞는 창조적 상상력으로 농촌을 혁신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 중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2022년부터는 농촌유토피아 선도마을을 곳곳에 만들고 있다. 이런 농촌형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공동체 마을이 스페인에 있는, 인구 2700명의 ‘마리날레다’라는 곳이다. 이곳을 소개한 ‘우리는 이상한 마을에 산다’라는 책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우리는 우리가 미래에 원하는 것을 지금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내일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오늘 시작하면 그것이 가능해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본보기가 됩니다. 정치를 하는 다른 방법, 경제를 하는 다른 방법, 함께 사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 다른 사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본보기 말입니다.” 또한 “유토피아는 근거 없는 환상이 아닙니다. 유토피아는 사람들이 가진 가장 고귀한 꿈입니다. 투쟁을 통해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습니다. 평화의 꿈, 즉 공동묘지의 평화가 아니라 현실에서의 평등과 평화를 이뤄내는 꿈입니다. 간디가 말했듯이 평화는 단순히 폭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생산하는 자원과 부를 소수가 빼앗아 가지 않고 그것이 다시 노동자에게로 오는 꿈입니다.” 온갖 어려움에도 타율과 경쟁이 아닌 자율과 협동의 가치로 마리날레다는 유토피아를 완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원하는 것을 내일까지 기다리지 않고 지금 바로 여기에서 실현해 낸다는 것이다. 저명한 미국의 교수이며 작가이자 활동가인 벨 훅스는 “만일 우리가 닫힌 시스템에서 열린 공간을 발견하고도, 거기에 들어갈 노력을 즉시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감옥에 가두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라고 얘기했다. 아무리 디스토피아 세상이라 하더라도 틈은 있게 마련이다. 그 틈을 비집고 새로운 공생공락의 유토피아 세상을 지금 여기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농촌을 유토피아로 만들기 위한 민간 차원의 움직임이 다양한 형태로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마을공화국을 만드는 운동가들도 있고, 융복합 농촌마을을 계획하는 전문가들도 있고, 귀농귀촌 생태마을을 건설하는 도시농부들도 있으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마을을 꿈꾸고 있는 청년들도 있다. ‘어디에도 없는 곳’ 유토피아(Utopia)는 이상향에 불과하지만, ‘당신과 나 사이에 있는 곳’, 유토피아(有土彼我)는 바로 우리 사이에 있다.
    유토피아(Utopia)? 유토피아(有土彼我)!
    by 조금평
    2024.12.31 15:53:37
  •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가장 먼저 나이부터 재본다. 나이순에 따라 연배와 연장자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장유유서라는 오랜 유교적 전통의 잔재다.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시대는 오래 살아 나이가 많으면 지혜가 쌓인다고 존경을 받던 세상이었다. 50에 지천명(知天命)이요 60에 이순(耳順)이라는 공자의 말씀이 나이가 들며 성숙하고 현명해져 가는 인생의 단계를 묘사한다. 그런데 현대 기업의 세계에서는 전혀 다르다. 기업의 인사관리에서도 나이를 따진다. 다만 나이가 많으면 대접을 받는 게 아니라 홀대를 받는다. 생물학적 나이와 회사 기여도는 반비례의 관계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의 임금 형태는 연공서열형 호봉제로 근속 연수를 기준으로 임금이 결정된다. 오래 근무하면 자동으로 임금이 인상된다. 나이든 직원을 우대하는 임금제도로 도입됐다. 그런데 이 호봉제 때문에 나이든 직원이 기업의 부담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임금이 인상된 만큼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고 새로운 기술이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걸림돌로 치부된다.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이런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네이버, 카카오, 삼성SDS, LG CNS에서 50대 팀장급 관리자가 늘어나며 공무원 조직처럼 관료화됐다고 한다. 20~30대 직원들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려 할 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50대 관리자가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 기술적 선도기회를 놓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이든 직원을 직장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해 정년 제도를 운용한다. 연령을 기준으로 정년을 정하며 현재 근로자의 법정 정년은 만60세이다. 흥미롭게도 선진국에서는 법률로 제정한 의무적 정년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경찰, 소방관 등의 특정 직종을 제외하면 연령에 따른 강제적 퇴직은 불법이다. 최근에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정년을 65세로 연장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정년은 별 의미가 없다. 정년까지 근무하는 직장인은 드물다. 대부분은 정년 전에 여러 이유로 회사를 떠난다. 임원으로 승진해 나가면 다행이다. 보통은 임원이 되지 못하고 중간에 밀려난다. 경기는 주기적으로 부침을 겪는데 침체기에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돌입하고 인원을 감축한다. 희망퇴직 또는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감원도 몇 년생까지 적용하다는 식으로 나이를 정해 실시한다.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실상은 세대교체를 추진하는 것이다. 요즘이 딱 그런 시기이다. 팬데믹과 고금리로 침체된 국내 경기가 계속 악화되는 가운데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국내 탄핵정국의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내수와 수출 기업 모두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올 하반기에 삼성전자, 포스코, SK텔레콤, LG디스플레이, 롯데온, 신세계면세점, G마켓 등의 대기업들이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KT는 전체 인력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기업들은 주로 50대 임직원을 희망퇴직의 형태로 내보냈는데 그 여파로 50대 고용률이 지난 4월부터 8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에 30대와 40대의 고용률은 늘어났는데 50대의 고용률만 감소했으니 50대가 감원에 가장 취약하게 노출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임원 인사에서는 더 혹독한 세대교체가 나타났다. 롯데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임원 인사를 단행하며 60대 이상 임원의 80%를 퇴진시켰다. 우리은행은 부행장의 절반가량을 물갈이하며 1970년대생 부서장들을 부행장과 임원으로 발탁하여 승진시켰다. 구조조정이라는 태풍에 50~60대 임직원이 쓸려가는 와중에서도 무풍지대가 존재한다. 대기업의 지배주주 경영자들은 모두 안전하게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승진잔치를 벌였다. 실적 부진을 이유로 대거 임직원을 퇴직시킨 식품 및 유통업계의 내수기업에서는 3~4세 경영자들이 회장, 사장, 부사장 등으로 승진하였다. 세대교체의 흐름에 편승해 1986년생 3세가 입사한 지 5년밖에 안 돼 부사장으로 승진한 사례도 있다. 나이에 영향을 받지 않는 철밥통 경영진은 은행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이사가 70세를 넘어도 임기를 보장받도록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개정했는데 이는 연임에 성공할 경우 3년 임기를 채울 수 있게 해주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다. KB금융그룹과 우리금융그룹도 이사가 70세를 넘어도 임기를 보장받도록 하고 있다. 70세가 넘어도 이사를 할 수 있는 직위는 회장밖에 없다. 지배주주가 없는 금융그룹에서 회장이 주인 노릇 하며 70세 넘어서도 계속 하려는 욕심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금융그룹의 70세 임기 연장을 두고 ‘나이는 걸림돌이 아니다’라는 신문논평도 나왔다. 정말 맞는 말이다. 나이는 ‘벼슬’도 ‘걸림돌’도 아니어야 한다. 획일적으로 나이로 끊기 보다는 개인별로 성과를 평가해 정당하게 일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혈연과 경영권의 특혜가 없어도 누구나 나이에 상관없이 오래 능력을 발휘하며 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 나이가 어때서 일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라는 노랫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
    by 임채운
    2024.12.22 08:13:31
  • 농촌지역 소멸 위기를 대변하는 것 중 하나는 초등학교의 폐교 소식이다. 농촌유토피아연구소 본사가 있는 경상남도에도 2024년 12월 기준 미활용 폐교가 65개나 있는데 빠른 시간 내에 많이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농촌지역 초등학교는 역사적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를 공유한 지역공동체의 구심 역할로서,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농촌학교의 급격한 감소는 여러 분야에서 지역의 쇠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농촌유토피아연구소는 그간 함양 서하초등학교를 비롯해 전국의 많은 지역에서 농촌학교살리기와 마을공동체살리기를 해왔다. 이는 학교가 살아야 마을이 산다는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된 일이다. 최근 장수군에서 ‘지역소멸에 대응하는 교육의 역할과 방향’이라는 국제포럼이 개최됐다. 인구 2만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는 지방소멸 대표지역 장수군에서, 이런 규모와 주제의 포럼이 열린다 해서 만사를 제치고 행사장으로 달려갔다. 인구감소 사회의 미래를 논한 일본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교육자인 우치다 타츠루 선생을 초빙하여 지역소멸 관련 대담도 갖는다니 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작은학교살리기를 통한 마을공동체 활성화’라는 주제는 주관심 분야이기도 해서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1박 2일간 열리는 행사에는 마을과 학교의 존립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전국의 다양한 공교육과 풀뿌리교육 관계자 150여명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학령인구 감소로 폐교 위기에 놓인 학교교사들을 비롯해 지역 학부모가 중심이 된 마을교사들, 그리고 교육 바로세우기에 진정인 지역 활동가들이 모인 것이다. 췌장암 항암치료 중으로 온라인으로 참여한 우치다 타츠루 선생의 과소지역(過疏地域)에서 과밀지역(過密地域)으로의 자본 이동 재해석은 자본주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국가존속을 위한 자급자족 방안 중 교육자립을 위한 모국어 정책 제언은 교육의 중요성을 재인식시켜 주었다. 소멸위기에 놓인 지역에 있어 교육공동체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배운 바가 많았다. 한 참석자는 “아이들을 마을과 지역에서 환대하는 일의 중요성과 지역의 문화를 다시 발굴하고 다양함을 연결시킬 필요성을 느낀다”고 했으며, 또 다른 참석자는 “지금 지역에서 학교와 교사의 역할과 모습이 한계에 도달한 만큼, 미래 교육 방향의 과제를 함께 해결해 나갈 대화의 플랫폼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역이 소멸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민과 관의 협치가 꼭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마을교육공동체의 활성화 없이는 학교도 살아남을 수 없고, 학교가 살지 않으면 마을도 존속할 수 없다는데 많은 참석자들이 동의했다. 이런 것들이 결국은 농촌을 유토피아로 만드는 일인 것이다. 농촌유토피아란 농촌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개선하여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만는 것이다. 각 지역과 특색에 맞는 실현가능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2023년 3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소멸위기에 놓인 일곱 개 지방자치단체가 모여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 ‘농촌유토피아 선도마을’을 만들기로 협약했다. 탄소중립과 자립자족 그리고 기본소득을 핵심으로 하는 ‘농촌유토피아 선도마을’은 현재 전북 곡성군과 충북 괴산군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주거와 일자리, 경제, 의료, 복지 등이 가능한 50~100호 내외의 마을을 만드는 과업인 것이다. 결국 이번 포럼은 농촌을 농촌답게 만드는 다양한 의견 표출의 장이었다. 농촌유토피아의 계획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고 볼 수 있다. 지역에서 개최되는 이런 행사가 농촌공동체를 활성화 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귀한 뜻들이 모여 농촌유토피아는 싹을 틔우고 종래는 큰 나무로 자라날 것을 희망해 본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소멸지역에 새싹 틔우는 농촌유토피아 공동체
    by 조금평
    2024.12.17 13: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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